접속의 시대'4차산업혁명'너머 '인문'의 길 "소유와 공유" 3-1

▲ 박경만 한서대학교 미디어문예창작학과 교수.

 

4차산업혁명의 전조(前兆)로 여겨지는 휴먼 클라우드는 우리에게 이미 낯이 익다. 우버, 이베이, 리프티, 태스크래빗, 에어비엔비, 알리바바, 파킹판다, 독배케이 등등. 택시잡기나 집안 청소, 하룻밤 묵을 방이나 들어가 살 집, 주차 공간, 하다 못해 귀찮은 심부름이나 반려견 뒤치닥꺼리도 인터넷 클릭 한방이면 끝난다. 누구나 일자리도 얻을 수 있고, 필요한 전문인력도 실시간으로 구할 수 있다.

이런 앱의 세계에선 ‘인간’이 배제된다. 대면의 인간적 관계가 아닌, 네트워크로 모든 것이 연결되고 해결된다. 굳이 정색하며 시장을 헤집거나, 애써 수급 대상자와 흥정하지 않아도 된다. 필요한 의식주의 것들을 나의 곳간에 꾸역꾸역 채우기보단, 연결과 접속만으로 물질과 비물질의 체험을 빌려쓰고 공유해도 부족함이 없다.

바야흐로 접속의 시대가 열리고 있다. 접속된 세상에선 내 재산목록을 늘리려는 그간의 처절한 노력들이 네트워크상의 무심한 접속으로 바뀐다. 사이버와 가상공간이 현재적 삶의 무대가 되는 세상에서 시장은 네트워크에게 자리를 내주며, 소유는 접속으로 바뀐다. 태고적 이래 인류적 생존 가치였던 소유권은 점차 주변적 지위로 밀려나며, 필요한 모든 것들을 공유하고 빌리고자 하는 네트워크가 삶의 생태계를 지배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 세계에선 개개인의 삶과 체험이 곧 하나의 시장이다. 물질적 소산뿐 아니라 살아가는 모든 방식과 순간, 희로애락의 노하우와 삶의 체험이 곧 상품이며, 공유재이며 경제적 객체다. 이름하여 체험경제다.

그럴수록 접속의 시대는 매우 심란한 인문적 과제를 우리에게 던진다. 연결과 접속은 인간의 경험을 어떻게 조직하고 구성할 것인가. 그것으로 인해 인간과 인간, 인간과 자연이 어떤 모습의 유기적 피드백을 구사할 것인가 하는 것들이다.

먼저 접속 시장에서 ‘체험’을 누가 더 많이 갖고, 지배할 것인가가 문제다. 다니엘 벨은 진작에 “통신에 대한 (원만한) 접속이 자유의 조건이 된다”고 예언했다. 현재도 인터넷에 원활하게 접근할 수 있는 ‘자유로운’ 사람들은 지구촌 인구의 5분의 1에 불과하다. 그렇듯이 체험과의 거리와 차별은 곧 비접속에 의한 부자유로 작동할 것이다. 이처럼 접속은 기왕의 세계관을 전복하는 혁명인 동시에, 탈근대의 빛과 그늘을 함께 지닌 수구적 메타포인 것이다.

바람직하기론 ‘접속으로부터 배제당하지 않을 권리’를 누구나 소유해야 한다. 애초 ‘타인을 배제하는 권리’가 근대적 재산소유의 개념이었다면, 접속에 의한 공유경제의 테마는 필시 그것과는 달라야 하는 것이다. 그러자면 종래 시장경제와 같은 전투적 단절이 아닌, 상호의존적이며 공존 지향의 네트워크로 연결되어야 한다. 경쟁보다는 협조, 시스템에 입각한 효용의 공유가 미덕일 것이다.

그렇지 않고 만약 ‘고삐 풀린 망아지’ 마냥 비정한 네트워크 게임에만 방치된다면? 그 결과는 다시 배제와 소외로 이어진다. 접속의 열매를 한껏 만끽하는 소수와 그렇지 못한 소외 대중간의 격차는 극명해질 것이다. 그들만의 축복받은 땅 엘리시움의 시민과, 나머지 지구촌 인구의 절대 다수를 차지하는 디지털 빈민 사이의 골은 커질 것이다. 재래의 소유 중심의 시장경제가 부른 정치, 사회적 갈등과 경제적 분쟁이 다시금 재연될 게 분명하다.

또 한 가지는 접속과 인간 실존의 문제다. 돌이켜보면 지금까지는 소유와 시장이 일상의 조건과, 인간을 판가름하는 결정적 잣대로 기능해왔고, 인간 존재의 형이상학을 설명하는 포괄적 틀을 제공했다. 인간의 본질과 생리를 정의하는데 과연 소유가 어떤 역할을 수행하고 있나 묻는데서 숱한 철학과 사변도 태생했다. 그러나 이제 그 영원할 것 같은 교범은 폐기당할 지경에 처했다. 대신 그 자리를 접속이 대신하려는 순간이다.

접속이 지배하는 세상에선 사는 방식이나 체험도 돈을 내야만 한다. 자율성을 가진 ‘나’는 해체되고 네트워크상의 숱한 ‘우리’로 존재하는 인격만이 난무한다. 각 개인의 삶과 실존적 경험이 현실과 가상 공간에서 수많은 대본으로 번역되어 만유의 것으로 유통된다. 결국 21세기의 인간은 극히 개인적인 관심과 체험도 ‘돈’으로 치환되는 공유의 판옵티콘을 맴돌 것이다.

그래서 접속된 인간의 함의를 캐묻지 않을 수 없다. 접속이 인간과 인간의 삶을 판가름하는 어떤 잣대가 될 것인가. 접속된 인간과 자연의 궁극적 지형은 어떤 모습이 되어야 할 것인가 등이다. 안타깝지만 아직 명확히 알 수는 없다. 그저 인간 본성과 인간형에 대한 우리의 생각을 크게 바꿀 것으로 예상할 뿐이다. 또한 통신 기술에 의한 네트워크 자체가 접속이 추구하는 목표지점은 아니란 점은 분명하다. 새로운 시대, 새로운 인간의 행로를 상상할 수 있는 도구일 뿐이란 것도 자명한 사실이다.

그렇다면 이런 물음이 가능하다. 일상을 가로지르는 수많은 앱들의 세포분열이 과연 우리네 삶의 유전자를 어떻게 바꿀 것인가? 접속은 과연 자원의 효율적 배분과, 진취적 인간의지에 보상하는 문명의 나침반이 될 것인가? 어떤 유형의 체험과 세계가 과연 접속할 만한 가치가 있는가? 접속의 완성된 미래를 파악하기 위해서도 우린 그렇게 끊임없는 질문에 접속해야 할 것이다. 이는 질문이라기보단, 기대와 의구심이 섞인 주문(呪文)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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