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의 시선으로 본 제4차산업혁명-‘자본의 재탄생?’(5-2)

21세기 ‘악한 자본’에 대한 불안

자연, 노동, 자본에 대한 20세기 형 자본가의 지배력이 쇠퇴하는 대신, 아이디어, 신종 디지털 솔루션으로 억만금의 돈을 버는 ‘슈퍼스타’의 행렬. 그게 4차산업혁명의 옆모습에 대한 또 하나의 예측이다. 그렇다면 정말 자본의 종말이라도 올까. 두고봐야 알겠지만 현재로선 그 ‘가보지 않은 길’을 섣불리 확언하기 어렵다. 경우의 수에 따라선 오히려 그 정반대의 자본 세상이 펼쳐질지도 모른다. 새롭게 변이하며, 더욱 강력한 스탠스로 부활하는 21세기형 자본가의 행렬 말이다. 그럴 경우 기계나 화폐, 원료, 상품과 같은 물질적 자본에 대한 ‘소유’는 종말을 선언할지언정, ‘공유’와 ‘접속’이란 새로운 형태의 네트워크 자본은 전성기를 구가할 수도 있다.

그러면 반세기, 아니 10~20년 후쯤엔 ‘슈퍼스타’를 중심으로 한 막강 신흥자본의 먹잇감이 새롭게 펼쳐질 것이다. 이른바 ‘비물질적 부가가치’다. 다시 말해 너와 나의 삶의 체험, 사회적으로 공유할 유무형의 기억들이나 결과물, 사회적 삶 전체가 자본의 타깃이 된다. 이에 견주어 캘리포니아대 허버트 실러 교수는 태고적 이래의 추억을 되새겼다. 그에 따르면 본래 웅변, 연극, 의식, 음악, 시각예술, 조형예술 등은 인간 경험의 원천적적이며 필수 불가결한 요소였다. 그런데 ‘인간이 가진 창조성’을 표현하는 이런 기본적 요소를 공동체 기원으로부터 분리하여, 돈 받고 팔아먹은지 오래다. 그것이 다시 변형된 모습으로 미래에도 반복되는 것이다. 그래서다. 미래엔 ‘선한 자본’이 강림할 것이란 기대보단, 더욱 사납고 몰인정한 자본이 공유경제의 운명을 좌우할 것 같은 불안감이 더 크다.

한층 스마트하게 탐욕스러워진 자본은 이제 기계나 상품과 같은 과거의 물질적 부가가치 수단엔 심드렁하다. 대신에 전통, 가족과 친족의 유대, 민족, 종교, 성, 사회적 관행 같은 인간 본딧말의 요소를 공유경제의 상업적 광장에서 통용하며 소비되게 할 것이다. 언어 생태나 문화적 특성, 정보, 감성 등도 네트워크 경제에서 파편화된 유료 경험으로 쪼개지고 상품화된다. 이들은 본래 공공의 것도 사유(私有)의 것도 아닌, 인간 공통의 것이어야 했다. 안토니오 네그리가 말한 ‘공통체’(Commonwealth)의 공통적 형태소인 것이다. 그러나 새로운 자본은 이를 상업화하고 잉여가치를 뽑아먹으며, 4차산업혁명기의 빅브라더, ‘리틀 피플’로 군림할 지도 모른다.

이런 신자본주의적 통제력은 특히 ‘노동’에 대해 배반적이다. 노동력을 제공받지만, 정작 노동의 가치는 위축시키고, 노동자인 4차산업혁명기 시민들을 소외시킬 가능성이 크다. 디지털 기술의 시대엔 특히 ‘노동의 유연화’가 또 하나의 세련된 자본의 무기로 등장한다. 자본은 모든 노동형태를 ‘유연성’에 맞춰 재조직할 가능성이 크다. 잡일, 임시직, 케이스 바이 케이스의 불안정 노동으로 살아가는 ‘긱경제’를 정상적인 것으로 둔갑시킨다. 절대 다수의 사람들이 항상 일거리를 기다리며 일할 태세를 갖추고 있을 뿐, 정작 일을 하지 못하는 희한한 풍경이 펼쳐지는 것이다.

사람들은 쉬는 것도 아니요, 일하는 것도 아닌 어정쩡한 시간의 노예가 된다. 노동시간과 비노동시간의 구분이 없어진다는 건, 곧 사유와 창조를 위한 자신만의 시간을 박탈당한 ‘시간의 빈곤’이며, 창조성을 옥죄는 족쇄다. 그 시간을 통제하는 건 오롯이 자본의 몫이다. 국경을 오가는 이주노동자나 인종에 대한 차별, 배제와 같은 ‘공간의 빈곤’까지 더해지면, 그야말로 21세기 자본은 공동체적 빈곤과 창조의 박멸을 대가로 한 ‘재난 자본주의’((Disaster Capitalism) 자체일 것이다.

바라건대, 미래의 자본이 그렇게 변질되어선 안 될 것이다. 기존의 인간 공통체의 것, 즉 과학지식, 인간 이성, 정보, 아이디어 등등이 더 나은 공통적인 것을 낳고, 다시 확대된 공통적인 것을 재생산하는 선순환의 주역이 되어야 한다. 그것이야말로 선한 자본의 길이다. 그러나 안심할 수 없고, 확신할 수도 없다. 오히려 공통적인 것을 구획짓고, 수탈하며 선순환을 파괴하는 악한 자본이 기승을 떨 수도 있다. 최악의 경우 그것이 새롭게 변형된 21세기형 자본의 보편적 스타일이 될지 모른다. 물론 예측일 뿐, 어느 쪽일지는 닥쳐봐야 안다. 그래서 더 불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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