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의 시선으로 본 제4차산업혁명-‘자본의 재탄생?’(5-5)

▲ 박경만 한서대학교 문예창작학부 교수

4차산업혁명, ‘계몽자본주의’를 꿈꾸다

디지털혁명 이후 자본은 이에 걸맞은 모습으로 거듭날 수 있을까. 혹자가 예견하듯, 혹여 자본주의적 생산의 약화나 ‘자본의 종말’이 현실화할 것인가. 이들은 4차산업혁명을 예측하는 와중에 궁극적으로 던져봄직한 질문이다. 그러기 위해선 공유경제의 자본행위를 통해 이뤄야 할 ‘가치’가 대체 어떤 것이어야 하느냐가 규명되어야 한다. 어떤 ‘경제적 가치’를 위해 자본이 그토록 애를 쓸 것이냐, 거기에 답이 있는 것이다. 디지털 자본과 자본주의가 재탄생하기 위해서라도 그런 노력은 필수다.

우선 디지털혁명기의 ‘경제적 가치’는 20세기풍 기계․기술자본주의의 그것과는 달라야 한다. 자동화기능, 인공지능, 합성생물학 등이 제 아무리 빼어난 재주로 ‘인간’을 재구성한다 해도 그건 어디까지나 ‘도구’다. 소유의 대상일 뿐이다. 대신에 진정한 경제적 가치는 지적, 육체적 소통과 정서적 공감과 협력 등 인간의 주체적 본딧말에 기원을 둔 것이라야 한다. 다시 말해 사유(私有)도 공유도 아닌, 인간 공동체 본질인 ‘공통체’에 속한 ‘공통적인 것’에 의한 생산이 그것이다. 네트워크를 좌우하는 슈퍼스타나 디지털 엘리뜨들의 아이디어나 디지털기술도 마찬가지다. 그것이 공통적인 것을 얼마나 윤택하게 하느냐에 따라 경제적 가치가 매겨져야 한다. 미래의 자본도 이런 달라진 가치에 눈을 떠야 한다.

그렇다면 AI나 디지털기술에 의한 인간소외에 대한 걱정보다 더 절실한 관심사가 있다. 기계보다 ‘공통체적인 도구’들이 주도하는 경제적 가치의 창출이 가능할 것인가다. 즉 언어적 도구, 관계 구축의 정서적 도구, 사유(思惟)의 도구 등이 자본과 생산의 원천이 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문제다. 이를 위해선 공유 네트워크와 코드, 프로토콜이 자유롭게 개방되고, 문화적, 지적, 과학적 작업과 정보망에 누구든 손쉽게 접속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서 다중은 우매한 대중이 아닌, 집단지성의 주체가 되어야 한다. 그야말로 수 백 년을 격한 제2의 계몽시대인 셈이다. 자본도 이를 인정하고, 이에 걸맞은 계몽적 패러다임으로 바뀌어야 한다.

디지털 다중을 위한 ‘시간의 자유’도 자본 재탄생의 관건이다. 아직도 많은 사람들은 살아가면서 원치않는 많은 시간을 노동에 쏟는다. ‘일하지 않는 자, 먹지도 말라’는 훈육 앞에서 무력할 뿐이다. 그러나 이는 언어와 사유, 주체적인 사회관계에 기초한 신개념의 경제적 가치를 떨어뜨리기 십상이다. 그래서다. 미래의 자본은 경제적 가치를 위해서라도 다중에게 노동과 시간에 대한 자율권을 획기적으로 부여해야 한다.

이 대목에서 다시 기본소득, 혹은 보장소득의 필요성이 제기된다. 디지털 다중에게 시간의 자유를 부여하기 위해선 노동을 하든 안하든 보장소득이 주어져야 한다. 이로 인한 모랄 해저드 여부를 이 대목에서 다툴 생각은 없다. 다만 분명한 점은 있다. 노동과 분리된 소득은 최소한의 인간다운 삶 뿐만 아니라, 자기 시간을 스스로 조정하고 실존적 삶을 자율하는, 위대한 자유를 보장한다. 자본 또한 그렇게 주체적 생산성을 높이는 다중을 존중해야 할 것이다.

마침내는 신(神)이라도 되고 싶을까. 작금의 기술자본주의는 무한의 탈인본적 질서를 추구하는 디지털혁명에 들떠있다. 그럴수록 문제는 ‘인간’이다. 새로운 자본은 ‘인간’을 교의로 삼아 거듭나야 하고, 경제학을 삭막한 수학 공식으로 변질시킨 지난 세기 자본의 오류를 벗어나야 할 것이다. 덕분에 다중은 개개인의 인간적인 복리가 살찌는 경제적 가치, 곧 오이코노미아(oikonomia)의 실현에 기뻐할 수 있다. 그런 누이좋고 매부좋은 ‘계몽자본주의’야말로 4차산업혁명기에 거듭날 만한 자본의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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