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의 시선으로 본 제4차산업혁명-‘화폐의 대전환’(6-1)

▲ 박경만교수(한서대학 문예창작학부)

화폐, 새롭게 창조되다

비트코인이 화폐인가, 아닌가. 투기판의 도구라면 없애야 하나 말아야 하나. 언제까지 존속 가능할 것이며, 소멸할 수도 있는가? 암호화폐를 두고 이런 류의 Q&A가 있는가 하면, 전혀 결이 다른 접근법도 있다. 이들에겐 화폐 여부는 부차적이며, 한탕주의니 투기니 하는 도덕적 비판도 본론은 아니다. 그 보다 암호화폐를 내포한 블록체인 혁명이 미래의 화폐와 교환기능을 어떤 모습으로 진화시킬 것인가 그게 관심사다. 전자가 ‘유시민’과 정부 일각의 시선이라면, 후자는 ‘정재승’ 내지 블록체인 사상가들의 스탠스다. 마치 정문과 후문처럼, 암호화폐에 접근하는 양자의 통로가 다른 셈이다. 결론이 날 수 없는, 서로 다른 방향을 향해 외쳐대는 독백인 것이다.

오프라인 주식시장에 비유해보자. 투자자와 개미군단은 나날의 상한가, 하한가에 일희일비하며, 찰나적 마진에 목숨을 건다. 그 와중에 기업공개와 자본시장이 가동해야 할 가치나, 자본의 기업가적 당위 등은 별개의 팩트로 주변을 맴돈다. 최근의 암호화폐 구설수의 진행 과정도 이와 흡사하다. 현상과 본질이 따로 논다고 할까. 대부분 논의 참가자들이 암호화폐와 블록체인 행간의 핵심을 사유하는데 실패했다. 물물교환과 금태환, 법정화폐로 이어진 인류 교환경제사를 송두리째 뒤엎을, ‘화폐의 대전환’이란 충격적 복선을 가벼이 보아 넘긴 것이다. 굳이 따지면 ‘정재승’ 진영의 접근법이 그나마 논의의 본질에 가깝다.

새롭게 전환될 화폐 혹은 그 비슷한 교환매체는 분명 법화(法貨)나 달러 같은 기축통화와도 다를 것이다. 물론 어떤 모양의 화폐가 등장할 것인가를 당장 예측하긴 어렵다. 다만 블록체인, 공유경제의 작동원리, 이미 등장한 디지털화폐의 거래방식, 가치의 저장 메커니즘 등으로 유추해볼 수는 있다. 우선 손쉽게 상상할 수 있는 미래 화폐의 요건은 교환가치와 저장성, 집중이 아닌 분산, 투명성과 신뢰다. 다름 아닌 지금 암호화폐를 둘러싸고 문제가 된 ‘화폐의 조건’과 흡사하다.

화폐다운 조건의 첫번째는 무엇보다 교환가치다. 알다시피 블록체인은 중개자를 생략하고, 한층 원활하게 실시간에 가까운 거래를 하는게 목적이다. 금전거래나 송금, 증명서, 의료 등 모든 인간사의 거래 내역이 만천하(블록체인 참여자 개개인)에 분산된 거래원장(Ledger)에서 이뤄진다. 비트코인 네트워크의 경우 10분마다 새롭게 심장이 박동한다. 그때마다 수백, 수천만의 거래와 교환과 변동을 새롭게 기록하고, 원장 변조를 방지하는 ‘고쳐쓰기’가 이뤄진다. 오픈소스를 무제한으로 내려받은 참여자들은 그 모든 유무형의 효용과 편의를 향유한다. 그 과정에서 참여자들은 새로운 온라인거래 ‘툴’을 반복해서 만들고, 모든 이가 승인하고 구축한 암호체계로 가치를 매기며, 공유와 교환의 매개로 삼는다. 그런 암호체계, 그게 바로 화폐가 아닐까.

종이돈과 달리 전자화폐는 어떤 파일에 ‘저장’되지 않는다. 블록체인이 기록하는 거래로 ‘표시’될 뿐이다. 참여자들은 방대한 P2P 네트워크 자원을 활용해 개별적인 거래를 확인하고 승인한다. 인터넷이 ‘www’(world wide web)이라면, 블록체인은 ‘wwl’(world wide ledger)이다. 지구촌 개개인의 컴퓨터마다 거래원장을 분산, 저장하고 있는 것이다. 분산된 원장은 또한 블록체인에 참여한 만인이 실시간으로 들여다보고 있어, 속일 수도 없고 해킹도 불가능하다. 더 이상 투명할 수가 없다. 송금 거래라면 이를 작동케 하는 암호는 그 거래 자체를 담보함으로써 부의 이전과 저장 기능을 발휘한다. 그것이 코인이든 토큰이든, 화폐의 또다른 요건인 ‘저장성’을 충족하는 셈이다.

적지 않은 이들이 예측하는 ‘개인자본주의’, 역시 화폐의 혁명적 전환을 가늠하게 한다. 상업, 산업자본주의를 뛰어넘는 개인자본주의는 지능혁명에 의한 초인적 능력의 ‘증강 개인’(augmented individual)이 주도한다. 굳이 산업이나 상업 시스템이 필요없이 개인 한 사람 한 사람이 기업이 되고, 자본 그 자체가 된다. ‘기업이자 개인’들이 교환, 저장, 거래의 수단으로 네트워크상의 자율적인 승인으로 개인이 화폐를 만들어낼 수도 있다. 무슨 꿈같은 소리냐고 할 법 하다. 하지만 장 마리 게노가 20여 년 전에 그랬다. “시민이 국가 바깥에 세우는 무한히 많은 연합체들과 경쟁해야 한다”고-. 정녕 20년쯤 후엔 20세기 질서 바깥에서 화폐가 새롭게 창조되는 꿈같은 현실이 다가올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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