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의 시선으로 본 제4차산업혁명-‘화폐의 대전환’(6-5)

▲ 박경만교수(한서대학교 문예창작학부).

돈은 그것에 상응하는 재화․용역의 가치를 대리하지 못하면 권위를 상실한다. 화폐경제의 폐해는 ‘화폐=실물’의 등식이 성립하지 않은데서 연유한다. 특히 불공정 거래, 독점, 투기, 폭리, 착취, 횡령, 뇌물 등 가치 생산의 불성실한 과정에서 화폐의 모순은 극대화된다.

유한(有閑)행위자들의 주머니에 돈이 더 많이 고이며, 돌고 돌아야 할 돈이 어떠한 가치도 유발하지 못한채 썩어가는 것이다. 이처럼 경제, 사회의 실물을 반영하지 못할 때 과연 그것을 돌고 도는 ‘돈’이라고 할 수 있을까? 4차산업혁명의 화폐 담론, 혹은 ‘화폐없는 세상’에 대한 상상은 이런 의구심에서 비롯된다.

현행 자본주의에서 상품 가격은 그것이 지닌 실질적인 ‘사회적 가치’와는 때로 무관하다. 화폐에 대한 확증편향 혹은 인지부조화라고 할까. 한낱 돌덩어리인 한 톨의 금알갱이가 한줌 쌀의 몇 수 백, 수 천배나 값이 나간다. 그처럼 실물 가치는 실생활의 효용으로 매겨지지 않고, 오로지 그것이 갖는 경제 사회적 확증에 의해 편향된 가치로 평가된다.

마약 등 범죄적 대상처럼 사회적 손실이 큰 악성 재화가 정작 사회적 가치가 큰 실용재화보다 가격이 높게 매겨지는 것과 같은 이치다. 이처럼 사회적 가치를 제대로 대변하지 못하는게 자본주의 화폐의 치명적 인지부조화다.

다른 말로 이는 ‘화폐의 질병’이다. 작금의 현실에선 화폐의 원형을 비튼, 아노미적 도치나 착시가 넘쳐나는 것이다. 그 최소한의 실재성마저 자본주의 시티즌 저마다의 ‘시선’에 따라 다르고, 각자 공상하는 탐욕의 좌표에 따라 달리 매겨지는게 오늘의 화폐 현실이다.

그래서 나온 것이 현존 법화(法貨) 시스템의 종언이다. 그리곤 다양한 미래의 화폐담론이 만개한다. 그 중엔 이른바 ‘가치화폐’도 있다. 눈에 보이는 실물 화폐가 아니라, 실제로 창출된 재화나 서비스의 가치를 그대로 반영한 것을 말한다.

포스트 자본주의의 씨앗이라고 할까. 가치화폐의 모태는 ‘가치주의’다. 땀흘려 만들고 노력한 결과물이 정량화된 가치로 표현되며, 이를 소비하고 거래하면서 ‘가치’가 만들어진다. 그 ‘가치’는 다시 땀흘린 이들의 ‘계좌’에 들어오고, 이것이 화폐처럼 사용되는 방식이다.

그런 가치화폐가 웹기반 플랫폼에 안착한다면 어떻게 될까. 그러면 ‘화폐의 대전환’이 마침내 도래할 것이라는게 가치화폐론자들의 희망사항인즉, 이를 그들만의 ‘희망사항’이라고 웃어넘기기엔 그 매트릭스가 너무나 정교하다. 

실상 ‘가치’를 소스코드로 치환해 분산된 개인끼리 널리 유통할 법한 웹기반 화폐는 미래의 상상이 아닌 상식이 될 수도 있다. 이미 공유네트워크, 블록체인이 만개하면서 우린 그런 단초를 목격하고 있다. 허나 가치화폐든 대안화폐든, 화폐 아닌 화폐는 기존 재화 용역의 행동양식과 충돌할 것이다.

그럴수록 더 큰 사회적 가치나 삶의 효용을 선사해줄 수 있다는 점을 대중에게 알리고 설득해야 한다. 나아가선 화폐 소비 대중의 구매결정이나 생활방식을 바꿀 수 있어야 한다.

또한 현존 SNS가 그렇듯이 미래 화폐 네트워크는 가입과 접속의 장벽이 없어야 하고, 네트워크 참여가 각자에게 현명한 행위로 인식되게 해야 한다. 이미 일상의 실용적 도구가 된 블록체인, 사이버 네트워크는 그런 가능성을 낙관케하는 살아있는 교과서다.

화폐없는 세상. 그것은 화폐의 종말이라기보단, 우리네 삶에 합당한 교환과 생산의 질서를  다시 꿈꾸는 언어다. 정작 화폐가 없어질 것인가, 혹은 대안의 화폐가 등장할 것인가는 중요치 않다. 그 보단 한 세기 동안의 수정자본주의를 다시 수정하는 데에 방점이 찍힌다. 수 백 년 이어져온 화폐에 대한 왜곡된 숭배를 거부하고, 20세기 버전 네안데르탈인의 ‘동굴 자본주의’를 해체하는 것이다.

마침 4차산업혁명이 그 적절한 타이밍이다. 내친 김에 화폐경제의 근본을 다시 캐묻고, 디지털시대 이전의 고전적 삶의 방식을 바꿔보면 어떨까. 그것이야말로 ‘화폐없는 세상’의 화폐에 깃든 간절한 함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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