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의 시선으로 본 제4차산업혁명-‘순수냐 융합이냐’(7-2)

▲ 박경만 교수(한서대 문예창작학부)

왜 ‘융합’인가

디지털 문명은 말 그대로 ‘digit’, 즉 0과 1의 교접과 순환이다. 애초 라이프니쯔의 이진법에서 발원했고, 더 거슬러 올라가선 그가 충격 속에 벤치마킹했던 주역의 음양오행론에까지 맥이 닿는다. 그 하위의 ‘태극’은 음양이 ‘밀고 당기며’ 길항(拮抗․conflict)하는 역동적 조합이며, 생성의 원리를 함축한 변증법적 다이어그램이자, 디지털 문명의 철학적 시원이라 할 만하다.

이는 이질적인 데이터들을 음양, 곧 0과 1이라는 서로 다른 단위체계로 변환하고, 그 ‘다름’의 모순을 새롭게 조합하는 논리의 원형이다. 그래서 데이터의 효율적 소통과 이동으로 ‘순수한 것’ 너머의 변증법적 결정체를 생성하는 원리의 근본이 된다. 곧 디지털 혁명의 접두어가 된 ‘융합’의 본딧말이다.

디지털화된 삶의 방식과 온-오프 컴퓨터 논리연산방식엔 이미 융합의 언어가 함뿍 스며있다. 바이오 메카트로닉스, 바이오 인포매틱스, 사이보그 등의 현실이 그렇고, 에듀테인먼트, 유니섹스, 팩션 등 사회․문화적으로 모순된 조화 또한 그러하다. 언필칭 나누고 갈라치며 차이짓기에 골몰했던 근대적 분화의 시대는 갔다. 대신 흩뿌리는 원심력보다는 모으고 구성하는 구심력에 의한 융합사회가 펼쳐지고 있다.

각종 구획과 영역, 경계, 제도 등의 칸막이가 와해되고 해체되는 포스트모던한 시대가 온 것이다. 장 보드리야르가 칭송한 ‘내파’의 지평이며, 지그문트 바우만의 예측에 들어맞는, 가볍고 가변적인 ‘유동성’의 세상이 된 것이다.

실제로 그렇다. 뒷골목의 불량한 춤꾼 ‘비보이’와, 고상한 발레리나의 만남을 그린 뮤지컬 <비보이를 사랑한 발레리나>에서도 그런 ‘유동적’ 삽화를 본다. 예의 섬세하고 아름다운 마돈나가 아니라, 근육질의 남자 백조 발레리나를 내세운 <매튜 본의 백조의 호수>도 마찬가지다.

이들은 곧 정통과 사이비, 주류와 비주류가 서로 피드백하고 유동하는 ‘융합’의 풍경이다. 나아가선 옳고 그름, 합리와 비합리, 흑과 백의 경직된 구조를 해체한 이항대립(binary opposition) 프로세스의 확장이다. ‘차이’, ‘다름’의 대립 구조를 변증적으로 순화할 때, 비로소 의미있는 가치가 생성됨을 보여주는 사례도 된다.

이처럼 디지털혁명은 융합적으로 해체된 상상력의 세계를 우리에게 요구하고 있다. 이미 4차산업혁명은 그런 정언명령을 웅변하는 인류사적 표준이라 해야 할까. ‘NBIC’, 즉 N(나노기술), B(생명기술), I(정보기술), C(인지기술)는 인간과 사물을 유기적으로 결합하는 전면적 융합의 표상으로 등극했다. 조직, 산업, 제도, 문화, 의식 등 기술 외적 영역으로 파급되며, 사회구성 원리의 기축이 되고 있다.

그야말로 ‘호모퓨저니쿠스(homofusionicus)’를 향한 새로운 판짜기의 도구로 자리잡은 것이다. 하긴 인간의 좌 ․ 우뇌(腦)는 애초 그런 융합 능력을 타고났다. 좌뇌와 우뇌에 비친 두 가지 대립적 조작을 포착해내고, 이를 변증법적으로 재조직해내는 천부적 재질을 갖고 있다.

인간은 그래서 모순된 긴장 관계, 혹은 창조적 부딪힘을 통해 또 다른 창세를 시도하는데 능한 존재다. 서로 합쳐지지 않는 모순인자들을 합쳐서, 원래 것보다 높은 차원의 새로운 것으로 변환시키는 관념적 조작의 초인들이다. 그럴진대 이런 ‘호모퓨저니쿠스’의 초월적인 유전자를 우린 얼마나 재생하고 활용할 것인가.

이 즈음 ‘노하우(know-how)보단 노훼어(know-where)’란 시쳇말에 주목해보자. ‘무엇을 어떻게 하는 방법’이 아니라, 누가 어떤 분야에서 어떤 성과물을 올렸고, 그 파급효과는 어떠한가, 그 다양한 가치는 어떤가를 찾아내는 것이다. 이분법적 우월한 가치로서 그 ‘무엇’이 아니라, 모든 유동적인 것들을 너그럽게 포섭해내는 것이다.

곧 전후좌우의 모든 가치를 두루 발견하는 ‘만유소통’의 능력이며, 다양한 의미체계를 잘라 이어붙이고 변형시키며 재구성하는 태도다. 바로 ‘융합’이며, 홍익적 4차산업혁명을 위한 본원적 가치다. 그래서 융합은 이제 숙명이다. 온갖 혁명적 담론으로 소란스러운 이 시대, 우리가 꼭 건져야할 미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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