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의 시선으로 본 제4차산업혁명-‘효용보다 효율’(8-3)

박경만 교수(한서대 문예창작학부).
박경만 교수(한서대 문예창작학부).

시선의 폭력, 시각중심주의(ocularcentrism)의 욕망은 효용만을 좇는 현대 자본주의의 본능이다. 이는 합리성, 이원론, 표준화, 단순화, 동시화, 집중화에 대한 숭배로 나타났고, 이성중심주의, 도구적 합리성을 무기로 감성과 육체, 비합리, 야만, 비이성을 억압하고 통제하는데 이르렀다. 다른 말로 이는 서구 현대성에 의한 ‘문명화된 폭력’이고 ‘합리화의 비합리화’다. 그러나 앞으로는 이런 고답적인 스키마는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 ‘디지털 혁명’을 앞둔 시기라면 그것과는 판이한, 넉넉한 여백의 ‘효율’이 무기다.

하긴 단절 아닌 단절의 단속(斷續), 고독하지 않은 고독의 투명함이 난무하는 디지털 시대엔 일도양단격의 효용이 삶의 방식이 되어버렸다. 이는 인류사 네 번째 산업혁명을 앞두기까지 수 천년 재활용되어온 인간의 관성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장차 만개할 디지털 혁명기에 이는 치명적이다. 효용만능주의는 무엇보다 인간 경험의 복잡성, 복합성을 단순화, 일반화하는게 그 특기다. 타협과 겸손한 양허에 바탕한 기술적, 인문적 포용을 배제하고, 당장의 효용을 생산하지 않는 의견이나 기술, 또는 새롭고 이질적인 아이디어와 발상, 사유를 경계한다. 마침내는 인간을 철저히 따돌린, 로봇과 나노, 유전자 합성, 인공지능만으로 된 효용만능의 ‘천국’을 지향한다. 그건 천국이 아니라 창백한 지옥이라 할 것이다. 

4차산업혁명이 인본적인 행복의 도구가 되려면 건강한 ‘디지털 영혼’이 필수다. 인간스러운 복잡계의 다차원적 결합이 비즈니스 모델이 되어야 하고, 기왕의 인본적인 실물자산이 디지털 자산과 결합하고, 인문과 디지털 플랫폼이 융합하면서 새로운 지평을 창출해야 한다. 그 과정에서 이질적인 것들의 폭넓은 교합과, 장대한 원근법에 의한 미래 예측은 필수다. 당장의 조바심에서 우러난 외곬의 전문화와 근시안적 성과는 이제 금물이다. 그 보단 전통적인 칸막이 문화와 가치사슬을 혁명적으로 해체시키고, 관용과 섞임으로 된 ‘효율주의’가 작동해야만 진정한 ‘인간혁명’이 가능한 것이다. 그래서 곡선도 아니요 직선도 아닌 카오스적 비선형이야말로 4차산업혁명의 진정한 소스코드가 돼야 하는 까닭이다.

디지털혁명기엔 또한 리처드 세넷의 말처럼 인간성 본질의 파괴가 문제다. 모든 게 급속한 변화의 격랑 속에 휘말리므로, 안정적이고 연속적인 인간성의 회복이 어렵다. 신뢰를 바탕으로 한 지속적 인간관계가 사라지고, 눈앞의 단기적 돈벌이에 전전긍긍하며, 장기적이고 예측 가능한 전망과 삶은 실종되기 십상이다. 특히 4차산업혁명의 미래엔 산업자본주의보다 불평등은 더 심할 수도 있다. 노마드적 삶의 유연사회에 적응하거나 살아가기 힘든 디지털 대중과, 변화를 능동적으로 주도하며 자유롭게 살아가는 슈퍼스타로 단절되고 양분될 가능성이 매우 크다. 21세기판 귀족과 평민으로 나눠지는 것이다.

그래서 필요한 것이 호혜적 관용과 여백의 마인드다. 자크 이탈리아는 창의력이나 혁신성의 상위가치로서 ‘박애’를 역설했다. 또 신기술을 타인에게 공여할 수 있는 사회적 증여의식과 연대의식, 세계를 수평적 네트워크로 재구성함으로써 새로운 권리 체계와 관행을 뿌리내리게 하는 지혜를 말했다. 제러미 리프킨 역시 ‘물재(物材)의 소유보다 정신적 소속의식’과 같은 포용력을 강조했다. 다름 아닌 ‘효율주의’의 각론을 말한 것이다. 효율주의는 곧 ‘인간주의’다. 주객이 제대로 된 문명 철학으로서, 인간성의 효율 극대화를 통해 빛과 그늘로 점철된 효용만능사회를 극복하는 비결이다. 그래서 효율주의는 미래 디지털세상의 영혼이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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