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의 시선으로 본 제4차산업혁명-‘문제는 공감이다’(9-3)

공감이 아닌 타자화는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 앞에서 적나라하게 펼쳐지고 있다. 제주도 예멘 난민에 대한 찬반 대립은 우리 사회가 감추고 싶어했던 딜레마를 밑바닥에서부터 들춰낸 사건이다. 언필칭 ‘글로벌’이니 국경 해체의 사이버 세상이니 하는, ‘미래 지향적’ 언설들의 진위를 판가름하고, 4차산업혁명 어쩌구하는 포스트모던적 수사들의 진심을 가려볼 계기가 된 셈이다. 그래서 이 문제는 단순한 해프닝이 아닌, 이 땅에서 앞으로 펼쳐질 디지털 혁명기의 정신적 지형을 결판지을 세기적 사건이다. 

물론 피켓시위에 나도는 주장의 옳고 그름은 따져봐야 할 것이다. 한국은 유럽처럼 수많은 난민을 받아본 경험이 없다. 100명 중 3명꼴로 난민으로 인정할 만큼 난민에게 인색한 나라다. 그래서 일각에서 주장하듯, 실제 ‘막대한’ 예산을 난민에게 퍼주는지, 피도 살도 안섞인 사람들의 최소한의 인간다운 생활을 위한 생계비 지원이 정녕 부당한 처사인지, 과연 부가가치가 있는 내국인 ‘전용’의 일자리를 대거 빼앗길 것인지, 그 주장들의 온당함은 가려볼 필요가 있다. 정히 필요하다면 잠재된 강간범의 사회적 DNA도 갖고 있는지도 해부해봐야 할 것이다. 반대로 전쟁과 폭력의 희생자들을 휴머니즘으로 끌어안아야 한다는 주장은 옳은지, 난민으로 지구촌을 떠돌았던 우리 근대사의 아픔을 망각해선 안 된다는 역지사지의 일깨움이 타당한지도 헤아려봐야 할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그런 팩트를 논하고자 하는 건 아니다. 그 보단 ‘타인’을 통한 우리 내면의 집단의식에 주목하고자 한다. 어느 사회나 구성원 일각에선 늘 “이것만이 옳다”고 여기는 가치나 영역을 갖기 마련이다. 이에 어떤 이질적 집단이 교접하거나, 틈입할 경우 과학적 논증없이 바로 직관적인 반응과 감정이 발효된다. ‘혐오’가 그 중 하나다. 이것저것 따지기에 앞서 이성과 인지로 포장된, 사실상의 오감(五感)에 의한 공격적 의지가 혐오이며, 그것의 합리화가 곧 레온 카스가 말한 ‘혐오의 지혜’로까지 승격된다. 이는 자칫 정교한 사회공학으로 조직화되어, 공동체 집단 행태의 엔진이 되기도 한다. 유대인, 여성, 이슬람, 동성애자에 대한 유럽 사회의 혐오와 박해가 그것이다. 아렌트가 말한 ‘악의 평범성’의 극단적 결과도 그런 것이다.

사회심리학적으로 혐오는 ‘동물적인 오염에서 벗어나려는 인간의 두려움이 투영된 것’이다. 다시 말해 배설물, 토사물, 징그럽고 흉악한 물체가 행여 ‘나 자신’의 일부가 될까 거부하는 몸짓이다. 그래서 혐오는 실체적인 위험보다는 ‘내가 행여 오염될 수 있다’는 신비적 사고에 바탕한다. 식사 시간에 배설물 얘기를 금기시하듯, 거부 대상을 연상케 하는 모든 이미지를  거부한다. 그래서 대상의 원본과 유사하기만 하면, 만의 하나 ‘전염’이 될 것 같기만 하면 배척한다. 심리학자 폴 로진이 말한 ‘교감적 마법의 원칙’과도 같다. 또한 혐오는 사회적 위계와도 밀접하다. 사람이나 대상을 서열화해서 특정한 대상을 저열하고 천한 것으로 간주하는 것이다. 자칫 타인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사람들을 그 대상으로 지목하기도 한다. 단일민족, 순혈주의, 단일국가의 환상까지 겹쳐지면 더욱 가공할 제노포비아로 이어진다. 

물론 이를 목전의 난민 사태와 등치시키는 건 무리일 수도 있다. 허나 혐오와 사회적 공감지수, 나아가선 ‘문명’의 의미를 돌이켜볼 모티브가 된 건 분명하다. 마하트마 간디는 기꺼이 변소를 청소하곤 했다. ‘배설과 같은 천한 (동물적) 기능’ 정도로는 결코 인간 존엄성이 오염되지 않음을 표현하기 위해서였다. D.H 로렌스의 <채털리 부인>에서 채털리의 연애 상대인 산지기 멜러즈는 “똥도 오줌도 싸지 않는 여성은 결코 사랑하지 않을 것”이라고 한다. 간디는 정작 야만적인 카스트 제도를 그렇게 나무랐고, 로렌스는 인간의 자기 초월에 대한 환상, ‘전염’과 ‘유사성’에 대한 혐오를 공박한 것이다. 그렇다면 진정한 문명화란 무엇인가. 밀러는 “혐오를 그 사회로부터 ‘분리시키는’ 정도, 혹은 정상과 비정상 사이에 쌓은 장벽의 높이에 달려있다”고 했다. 십분 동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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