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의 시선으로 본 제4차산업혁명-‘문제는 공감이다’(9-4)

지피지기(知彼知己)면 백전백승(百戰百勝)-. 그 평범한 고어야말로 공감이 바탕된 공유경제와 디지털혁명기의 잠언으로 되살릴 만하다. 물건 하나를 만들고, 필요한 것들을 서로 주고받으려면 피차 상대를 ‘아는 것’이 중요하다. 생산자가 소비자들을 모른채 생산한 제품은 애초 성공할 가능성이 적다. 특히 물리적 대면의 가능성이 거의 없는 사이버 네트워크에선 더욱 그러하다. 마치 ‘늙어간다’는 것이 어떤건지, 그 농밀한 황혼기의 삶이 어떤 것인지 모르는 개발자가 은퇴자나 실버 세대를 위한 프로그램이나 제품을 개발하는 것과 같다. 제 아무리 기발한 두뇌의 소유자라 해도  그저 자기 만족일뿐, 성공할 가능성은 높지 않다

세계적인 아웃도어 기업 K2는 한때 미국 버몬트 설상화(雪上靴) 공장을 1년 내내 눈구경이라곤 할 수 없는 중국 광조우로 옮겼다. 물론 근면한 노동자들은 버몬트 공장 못지않은 제품을 생산할 수는 있었다. 그러나 딱 그 지점까지였다. 광조우 직원들은 더 이상 새롭고 창의적인 물건을 만들지 못했다. 생전 눈구경이라곤 할 수 없는 광조우 노동자들로선 눈이 선사하는 로망의 기원이나 촉감을 느껴볼 턱이 없었다. 새로운 설상화에 대한 본능적 직감도 생겨날리 만무였다. 정작 설상화를 신어야 할 소비자들은 그곳에서 머나먼 추운 지방에 대부분 살고 있었다. 반면에 설상화를 만드는 노동자들은 딴 세상에서 기계적인 반복 작업에만 몰두할 뿐이었다.

이젠 언제 어디서든 데이터베이스에 연결할 수 있는 세상이다. 그러나 되돌아보면 산업사회 이래 나와 타인, 기업과 고객과의 관계는 날로 멀어지기만 했다. 역지사지(易地思之)의 공감도는 희박해져 왔다. 이는 개인과 개인 간의 관계를 화석화하고, 나아가선 기업의 생존마저 위태롭게 한다. 본디 소비자들은 자신에게 필요한 것을 가장 잘 알고 있는 제품이나 재화를 갖고 싶어한다. 그래서 상호 이타주의에 바탕을 둔 정신화(Mentalization)가 새삼 미래 사회의 키워드로 주목받는다. 즉 나의 행동이 상대의 생각과 감정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상대의 행동이 나의 생각과 감정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를 이해하는 것이다. 곧 나와 타인 간의 전인격적 피드백이다.

그래서 소통이며, 공감이다. 이를 생산과 소비, 공유와 교환의 버전으로 다시 치환해보면, 작업자의 내면 세계가 고객의 내면 세계가 연결되는게 중요하다. 곧 ‘공감의 공정(工程)’이 작동해야 한다. 재화의 흐름이나 공유경제 라인의 참여자들이 각자의 ‘자각적 삶’을 활발히 공유해야 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나’의 사고와 감정, 타인의 사고와 감정 모두를 함께 자각하고 공유해야 하는 것이다. 이는 디지털 세상의 새로운 엘리뜨 출현도 예고한다.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이 타인들의 삶에 어떠한 긍정적인 역할을 하는지 알고 있는 사람들은 디지털 세상의 주인이 될 공산이 크다. 기업 차원으로 환원하면, 사업 현장에서 다채로운 공감 능력을 갖춘 기업가는 긍정적인 사회 변화는 물론, 수익을 보장받을 수 있다.

산업혁명 이후엔 생전 얼굴 한번 볼 기회없는 지구촌 반대편의 생산자와 소비자가 ‘파트너’가 되는 아이러니가 반복되어 왔다. 그렇다면 양자 간의 장벽을 없애는 것, 그것이야말로 디지털 혁명의 성공을 가늠할 조건이다. 역설적으로 사이버 소통과 네트워크는 그런 성공을 담보할 유리한 환경이 될 수도 있다. 온라인 대면과 네트워크 상의 실시간 스킨십은 공유경제 참여자 모두의 속내를 투명하게 들여다보게 한다. 인간소외와 안면몰수의 20세기형 산업사회, 그 비호감의 문명은 이제 공감의 문명으로 바뀌어야 한다. 이런저런 걱정을 미리 하게 하는 사이버 네트워크 세상이 거꾸로 그 기회가 될지도 모른다. 비인간적 산업사회를 인간의 얼굴을 한 문명사회로 바꿀 수 있는 모처럼의 호기가 될 수도 있다. 그렇다면 디지털혁명이 그런 희망섞인 문명의 기호가 될 지도 모른다.
 

저작권자 © 애플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