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의 시선으로 본 제4차산업혁명-‘문제는 공감이다’(9-5)

박경만 교수(한서대학교 문예창작학부).
박경만 교수(한서대학교 문예창작학부).

“당신 말에 십분 공감한다”-. 과연 그럴까. 흔히 말은 그렇게 하면서 정작 머릿속으론 다른 계산을 하거나, 건성으로 고개만 끄덕이는 페인팅 모션에 그치는 경우가 많다. 좀 어려운 말로 진정한 공감이란 ‘상대방의 세계로 침잠해 들어가는 것’이다. 타인의 말과 생각을 스펀지처럼 빨아들이고, 그것을 방해하는 ‘나’의 온갖 생각들이 내는 시끄러운 소음이나 산란함부터 제거해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공감은 쉽지 않다. 심리학자 하인즈 코허트는 아예 “자신이 타인의 ‘내적 삶 속’에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라고 했다. 좀 복잡한 표현으로 이를 ‘대리적 내성’이라고도 했다. 

어쩌면 공감이란 언어 밖의 언어로 화합하는 고도의 화용론적 처세인지도 모른다. 이를 기업과 비즈니스로 환원해보면 M.H 데이비스의 사회적 순기능 몇 가지를 떠올릴 만하다. 타인 혹은 기업 밖의 세상이나 시장, 그 감정과 입장을 잘 인식하면 어떤 갈등이든 잘 조절하고, 분쟁을 신속히 해결해낸다. 시장 혹은 소비자와 더 원활하고 정확하며 생산적인 소통이 가능하다. 기업 내부나 조직 또한 상호 협조적이며, 밖의 세상과 잘 조화를 이룬다. 특히 공감과 감정의 공유에 능한 기업인과 기업은 타인들과 최대한의 것을 주고 받는다. 마침내는 사회가 잘 돌아가게 하고, 가정 생활, 비즈니스, 모든 의사결정과 문제 해결에도 문제가 없다. 그래서 공감의 달인은 가장 유능한 관리자, 탁월한 협상가, 능력이 출중한 판매원, 통찰력있는 지도자도 된다.

공감은 달리 말해 감정과 인지를 주고 받는 쌍방의 문제다. 양자가 각자의 경험의 표상을 함께 구축해나가는 과정이다. 만약 기업과 소비자라면, 소비자가 기업과 상품에 대한 자신의 내적 경험에 기초한 공감적 반응이 표출되고, 다시 그것에 의해 경제와 재화행위를 결정하게 하는 것이다. 그래서 공감에 주력하는 기업이라면 소비자가 느끼는게 뭔지 알아야 하는 ‘인식’의 단계, 그들의 경험을 기업 자신의 것처럼 느끼는 ‘체내화’의 단계, 그리고 소비자의 경험을 기업 자신의 경험으로 치환해보는 ‘반사’의 단계를 거친다. 마지막으로 다시 이성에 기초한 객관적인 (소비자) 분석, 즉 ‘분리’ 단계를 통해 생산과 마케팅 등 기업행위의 갈래를 결정하는 것이다.

많은 경제 주체, 특히 기업들은 흔히 위기에 처하면 이노베이션을 추구한다. 그러나 자칫 ‘무늬만’의 혁신에 그치기 십상이다. 실상은 자신들의 감정과 욕구에 충실할 뿐, 자신들이 확신하는 제품만 개발하고 상품화한다. 시장 조사나 소비자 욕구를 조사한다고 해도 그저 피상적으로 이해할 뿐이다. 그들 자신조차 별로 사고픈 생각이 없는 물건을 만들어내곤 “이거야말로 고객들이 원했던 것”이라고 나르시시즘에 취하곤 한다. 그리곤 망한다. 바깥 세상을 이해한다고 하지만, 여전히 바깥 세상을 자신과 다른 사람들로 가득 찬 별개의 장소로 인식한 탓이다. 불행하게도 대부분의 실패한 기업들이 빠진 함정이다. 

그러자면 자신의 틀을 벗어나야 한다. 타인과 자신의 경계를 해체해야 한다. ‘우리와 그들’, 생산자와 소비자, 안쪽과 바깥쪽을 구분하는 기준이 모호해져야 한다. 기업과 세상을 구분짓는 경계가 흐려져야만 성공하는 것이다. 그러면 소비자는 오히려 그 기업의 브랜드를 자발적으로 선전하고, 새로운 아이디어도 제공한다. 경쟁업체들도 서로가 적이 아니라, 자신들의 산업 자체를 키우는 동맹자가 된다. 그렇지 않고 여전히 바깥세계와 담을 쌓고 조직 내에 고립되면 ‘너죽고 나죽자’ 식의 공멸, 아니면 피튀기는 제로섬 게임의 연속일 뿐이다. 20세기가 그랬고, 3차산업혁명이 대체로 그러했다. 

다시 할리 데이비슨 얘기다. 미국 경제가 극도의 부진을 면치 못하던 1980년대 초, 이 회사는 그런 경계를 허물었다. 기업 조직 아닌 오토바이족의 편에서 그 욕구를 채워주기 위해 진심을 다했고, 단순한 제조사가 아니라 수많은 오토바이족들이 꿈꾸는 로망, 그것을 이루는데 총력을 기울였다. 그래서 할리 데이비슨은 다시 화려하게 부활했고, 오늘도 여전히 건재하다. 고립이 아닌, 공감이 바탕된 친구가 많을수록 사람은 오래 산다. 호주 의학자들의 실험 결과가 그렇다. 기업도 마찬가지다. 공감은 그 어떤 가시적 경쟁력보다 강하다. 이는 4차산업혁명, 그리고 야만의 20세기를 극복할 21세기 인류가 공감해야 할 진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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