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의 시선으로 본 제4차산업혁명-‘그 서사적 조건을 묻다’(10-1)

박경만 교수(한서대학교 문예창작학부).
박경만 교수(한서대학교 문예창작학부).

좀 생뚱맞다 싶지만 산업혁명은 한편의 대서사다. 4차산업혁명에 이르기까지의 역대 산업혁명은 기술과 자본 그 너머 새롭게 발견되곤 했던 일련의 문명 텍스트였다. 마치 잘 짜여진 섬유(textile)처럼 씨줄과 날줄, 즉 ‘기술 문명’이 엮어낸 미시서사의 결집이었고, 마침내는 풍요와 행복을 갈구하는 인간 본연의 존재론적 서사담화(narrative discourse)였다. 다가오고 있는 디지털혁명 역시 예외가 아니다. 만인의 스토리가 연속되며 서로 연관지어지는 대하 서사인 것이다. 그 서사적 조건을 해부하는 작업은 그래서 중요하다. 혁명기를 살아갈 인간조건을 결판지을 절대 변수이며 조건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혁명의 서사’란 무엇인가. 쉽게 말해 그건 일종의 사고의 전복이며, 과거의 혁명을 뒤엎는 새로운 거사인 것이다. 서사학자 마리 로르 라이언의 말을 빌리면, 서사 자체에 대한 ‘약속’이 계속해서 만들어졌다가 다시 철회되기를 반복하면, 동시대인들은 그것을 새로운 종류의 서사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 보단 근본적으로 기존의 서사에 반하는 ‘반서사적인 태도를 표현’하는 것으로 이해하게 되는 것이다. 마치 대다수 현대인들이 다가올 혁명적 변화를 기존 문명서사와는 다른, ‘반서사적인 태도의 표현’으로 보고 불안해하는 것과도 같다. 하긴 그런 과정에서 반혁명적 기류와 맞부딪치며, 모순된 불화를 겪는 것이 지금 4차산업혁명 전야의 표정이다.
 
4차산업혁명이 기왕의 1,2,3차 산업혁명과 크게 다른 점은 또 있다. 이른바 하이퍼텍스트 기능이다. 20세기 전자적 산업혁명과는 달리, 이는 하이퍼 링크를 통해 공상과 가상을 현실로 바꿔놓을 수 있다. 심하게는 무에서 유를 창조하듯, 무엇이든 발견하고 만들어낼 수 있다. 좀 어려운 표현으로 서사적 선형성(linearity)을 파괴하는 것이다. 앞서 일어난 어떤 사건이나 법칙이 그 다음 사건의 전 단계가 되고, 또 하나 법칙의 밑돌이 되어온 게 만사 이치였다. 그러나 디지털혁명은 인류사 최초로 그런 이치와 고리를 깨버린 듯 보인다. 무한한 상상력을 빌미로 원하는대로 문명 서사 단편들을 밑도 끝도 없이 순서를 조작하려 한다. 발칙하게도 자연법칙의 생성과 소멸, 인간과 생명체의 그것까지도 넘보는 지경이 되었다.

그러나 문명의 원류를 따져보면 인간의 그런 호기는 처음이 아니다. 인간성 자체가 본래 비선형성의 연속이었다. 인류사의 스토리텔링이 시작될 때부터 문화와 문명을 틀지운 서사들은 진보와 퇴보, 이성과 야만, 경험과 본질로 뒤범벅되곤 했다. 그런 의미에선 하이퍼텍스트 역시 갑작스런게 아니다. 오래 전부터 물려받은 인류의 서사적 조건을 새롭게 뒤틀어 변형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래서 ‘하이퍼’한 도치와 전복이 반복된다고 해서, 스토리의 선형성을 부정한다고 해서, 마냥 이단으로 머물진 않았다. 오히려 ‘혁명’으로 네이밍되며 문명 진화의 페달이 되곤 했다. 목전의 디지털혁명 역시 이단 아닌 전복된 서사담화일 뿐이다. 

다시 말해 4차산업혁명의 서사적 조건 역시 과거 세 차례의 산업혁명, 그리고 그 이전 인류적 경험의 총체로부터 구성되고 유전된 것이다. 그렇다면 과거 되풀이되어온 문명의 ‘비선형’들이 남긴 궤적을 다시 반복할 것인가? 그게 문제다. 다시 말해 더 나은 세상은 ‘5차산업혁명’으로 또 미뤄둘 것인가? 아니면 새로운 ‘미래의 현재’를 연출할 것인가? 물론 답은 후자가 되어야겠다. 그러기 위해선 디지털기술로만 포장된 혁명의 겉포장, 즉 곁텍스트(paratext)보다 중요한게 있다. 본래적 텍스트의 견실한 구성이 그것이다. 또 서사를 읽고 써내려가는 내포(內包)저자 즉 인간 정신과 태도가 혁명의 중심이 되어야 한다. 곁텍스트의 작은 정보, 작은 매뉴얼 하나가, 혁명의 서사적 조건을 엉뚱한 것으로 바꿔놓도록 내버려둬선 안 되는 것이다. 그럴 경우 대다수 공동체 구성원들은 배신감에 반혁명의 기치를 들것이며, 4차산업혁명 서사는 비극적일 수 밖에 없다. 혁명의 서사적 조건을 새삼 묻는 이유가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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