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ㆍ칼럼니스트.
시인ㆍ칼럼니스트.

망향(望鄕)의 일상에서, 어떤 날은 그리운 고향의 정취가 낯익은 춤사위로 향수를 자극할 때가 있다. 그럴 때면, 이메일의 창을 닫은 다음 연필을 정갈하게 깎아, 빛바랜 편지지라도 꺼내 소식 뜸한 고향 친구에게 황토빛 안부를 전하고 싶다. 어떤 날엔 스마트폰의 전원도 일찌감치 끄고 인터넷 접속을 쉬고 싶은 충동도 느낀다. ‘소리’와 ‘문자’의 소통이 아닌 마음에서 빚어진 침묵의 ’언어’와 ‘이미지’를 곱게 날려 진부한 텔레파시의 존재 논란에 종지부를 찍고 싶은 것이다. 

밋밋한 생수를 대신할 구수한 보리차를 끓이고, 습관성 커피를 대신할 그윽한 녹차 향도 우려내고 싶을 때가 있다. 디지털 문명의 소용돌이 속에서 ‘서울’이라는 거대한 회색빛 도시에 갇혀 사는 나는, 날마다 아날로그 세상으로의 회귀를 꿈꾸며 작은 몸부림을 치고 있다.

21세기는 디지털 시대임에 틀림이 없다. 하지만 디지털 시대가 되기 이전에 우리는 분명 아날로그 시대에 살았다. 아날로그는 인간적인 여유로움, 궁극적인 행복과 인간성, 정통성, 그리고 정(情)이 있다. 우리는 오랜 세월 그 속에서 살아 왔기에 지금도 어떤 날은 휴대전화 없이 훌쩍 여행을 떠나고 싶고, 이메일이 아닌 손으로 쓴 편지를 받고 싶은 것이다. 때론 지나치게 빠른 스마트 세상에 멀미를 느끼기도 한다. 

어떤 사람들은 아파트가 가로막은 길과 차가 꽉 막힌 도로를 벗어나 한적한 주택가 골목을 여행하고 싶어 한다. 디지털 카메라를 즐겨 쓰던 일부 젊은이들이 수동 카메라를 들고 삼청동, 인사동, 북촌길 등 서울의 옛 정취가 물씬 배어 있는 골목길을 찾기 시작했다. 현상소에 필름을 맡기고 그것이 인화될 때까지 마음 설레며 기다린다. 전자책이 야심찬 도전장을 냈다지만 종이책과 종이신문은 아직 건재하다. 서점은 여전히 사람들로 북적인다. 그들은 직접 손으로 책장을 넘기며 종이 냄새를 맡고 부드러운 감촉을 느끼며 아날로그의 고유한 매력을 발견한다.

하지만 이러한 일부의 사람들을 제외한 대부분의 현대인들은 디지털 기기의 편리함에만 의존하며 살아가고 있다. 그러다 보니 종종 황당한 경우에 직면하기도 한다. 예컨대 단순한 전화번호나 각종 비밀번호마저도 빨리 기억해내지 못하는 현상이 그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현상이 잦아지면 문제는 심각해진다. 이른바 ‘디지털 치매’로 접어들기 때문이다.

치매(dementia)라는 말은 라틴어의 ‘de(아래로)’와 ‘mens(정신)’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정신이 추락하는 것 즉, ‘정신이 없어진 것’이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치매는 정상적으로 생활해 오던 사람이 다양한 원인으로 뇌기능이 손상되면서 일상생활에 상당한 지장을 초래하는 상태를 일컫는다.

국립언어원은 ‘디지털 치매증후군’을, ‘다양한 디지털 기기의 발달에 힘입어 스스로의 뇌를 사용하지 않고 무의식적으로 디지털 기기에 의존하게 된 현대인들의 기억력 감퇴현상’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예컨대 절친한 사람의 전화번호를 기억하지 못한다든지, 노래방 반주화면의 가사 자막 없이 부를 줄 아는 곡이 거의 없다든지, 손글씨보다 키보드나 휴대폰 문자판이 편하다든지 하는 여러 가지 현상이 있다. 최근 들어 이러한 경험이 하나라도 있다면 디지털 치매증후군을 의심해 봐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진단한다. 특히 이 증상이 장기간 이어질 경우 기억이 사라지는 치매로 진전될 가능성은 언제든지 있다고 한다. 디지털 치매증후군이 생명을 위협할 만큼의 위험한 증상은 아니라 할지라도 스트레스를 유발시키고 삶의 질을 떨어뜨리는 원인 가운데 하나라는 점에서는 그대로 방치할 수 없다.

최첨단 디지털 시대에 살면서 아날로그 문화를 동경하는 삶이 역설적으로 들릴지 모르지만 현대인이면 누구나 공감하는 트렌드라고 본다. 가을의 길목, 그 고즈넉한 정취를 만끽하며, 한 번쯤 아날로그의 매력이 담긴 문화생활을 스케치해 보는 것도 새로운 삶의 멋이 아닐까.
 

저작권자 © 애플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