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ㆍ칼럼니스트.
시인ㆍ칼럼니스트.

한가위 명절 연휴가 지났다. 이른바 황금연휴였던 셈이다. 다소 아쉬움이 남기도 하겠지만 모두들 즐겁고 행복한 시간을 가졌으리라 본다. 오랜만에 가족을 만나거나 친척 집을 방문, 그간 궁금했던 안부를 서로 묻고 이야기꽃을 피우며 덕담을 나누는 동안 객지에서의 쌓인 피로는 눈 녹듯 사라졌을 것이다. 더욱이 고향을 떠나 독립된 가정을 이루었거나 타향에서 홀로 살아가던 사람들에게 귀성은, 더 뜻 깊고 훈훈하게 다가왔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이번에도 귀성 대열에 합류할 수가 없었다. 타향인 이곳 서울에서 명절 때마다, 떠나온 고향을 마음속에만 품고 지낸 지 어느덧 20여년의 세월이 흘렀다. 고향 울산에서 선친이 돌아가신 뒤 물려받은 제사를 서울로 모셔와 지금껏 지내 오고 있기 때문이다. 

명절의 중요한 의미는 우선, 멀리 떨어져 있던 가족, 친척들과 만나 즐거운 시간을 가진다는 데 있을 것이다. 그러나 명절 연휴가 지난 뒤의 후유증을 걱정하는 사람들이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 연휴의 여파로 생활 리듬이 깨져 피로가 쌓인 채 일상생활에 복귀했을 때 일이 손에 잘 잡히지 않기 때문이다.

연휴 뒤에 오는 피로는, 주로 수면 부족이나 생체 리듬이 깨지면서부터 시작된다. 여성들은 음식과 차례 준비 때문에 잠을 설치고, 남성들은 주로 장시간 운전으로 인한 잠 부족에 시달렸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태에서 일상 업무에 복귀하다 보면 일이 손에 잡히지 않고 온종일 멍한 느낌에 어지러움을 호소하게 된다. 

낮인데도 졸리고 온몸에서 맥이 빠지며 소화도 잘 안 되고 미열이 나는 등 무기력증에 시달린다면 명절 후유증을 의심해봐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조언한다. 대부분의 직장인은 하루나 이틀이 지나면 생체 리듬이 본디의 상태로 어느 정도 돌아오고 1~2주면 완전히 회복된다고 한다. 그러나 심한 경우는 몇 주 동안 극심한 연휴 후유증을 앓고 일에도 지장을 받는데, 이를 방치하면 만성피로, 우울증 등으로 악화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신체적 증상보다 더 심각하게 우려되고 있는 불청객은 바로 명절이 지난 뒤에 평소보다 늘어나는 ‘이혼 현상’이다. 명절을 지내는 동안 이런 저런 스트레스로 부부간에 잦은 다툼이 발생하고 급기야는 이혼까지 이어지는 사례가 갈수록 크게 늘어 간다는 보도를 해마다 접하고 있다.

시대가 변했다지만, 주부들은 여전히 명절 음식 준비로 분주하다. 게다가 아직도 많은 주부들이 장거리에 있는 시댁을 오가느라 교통체증까지 겪으며 무거운 피로를 호소한다. 그러다 보니 주부들은 명절 연휴의 앞뒤로 스트레스에 따른 정신적, 육체적 고통을 호소하며 ‘명절 증후군’을 겪는다. 따라서 극도로 예민해져 사소한 말 한마디에도 갈등이 폭발하고, 마침내 묵은 감정마저 들춰냄으로써 서로를 자극한 끝에 이혼 소송에까지 이른다고 한다. 

명절증후군은 전통적인 관습과 현대적인 사회생활이 공존하는 우리나라에서만 찾아볼 수 있는 특이한 현상으로 여러 가지 육체·심리적 고통이다. 즐거워야 할 명절이 현대인들에게 또 다른 스트레스의 원인이 되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이럴 때일수록 가족이나 친척들 간에 더욱 따뜻이 배려하는 자세가 필요할 것이다. 

가족의 사랑을 재확인하고 화목을 도모하는 우리 고유의 명절이 일부 국민들에게 불행한 결과를 안겨준다면 가슴 아픈 일이 아닐 수 없다. 이제 우리도 명절을 맞이하는 인식이나 패턴을 시대의 변화에 맞게 개선해 보려는 노력이 꼭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시대의 흐름이란 바로, 거스를 수 없는 ‘변화의 물결’을 뜻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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