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의 시선으로 본 제4차산업혁명-‘인간 이성의 임계치’(1)

박경만 논설주간
박경만 논설주간

 

디지털혁명의 성취에 의문을 갖게 하는 가장 큰 딜레마는 역시 인간 소외다. 당장 지금의 현실도 그렇다. 컴퓨터 모니터는 인간 존재와는 별개의, 항상 인간의 시선 앞에 놓인 대상이다. 모니터를 손으로 만지는 건 금물이다. 모니터와 엄격히 분리된 키보드로 컴퓨터가 이해할 수 있는 명령어로 변환시켜 입력해야 한다. 이때 컴퓨터 앞의 우리는 ‘컴퓨터’라는 눈 앞의 존재를 별도 대상으로 지각한다. 좀 어려운 말로 인간 ‘실존’과는 거리가 먼 인지 대상일 뿐이다. 모니터 그리고 분리된 키보드, 그 형상은 인간과 기술이라는 주객의 분리를 상징하는 것과 같다. 

반대로 망치로 못을 박거나, 볼펜으로 글을 쓸 때 그 못이나 볼펜을 (도구로) 느끼기보단, 못 박는 일이나 글쓰는 행위에 우리는 몰두하곤 한다. ‘도구’를 별도로 인지하거나 분리하지 않고, 별도 대상으로 지각하지 않는다. 즉 도구가 그저 눈 앞의 존재가 아닌, 물아일체(物我一體)의 형국이다. 이를 두고 하이데거는 “행위를 통한 사물과의 실천적 만남을 통한 인간 현존재의 근원적 존재방식”이라고 난해한 해석을 가했다. 조금 쉽게 풀이하자면 이렇다.   대상이 우리 앞에서 우리의 시선을 끌며 인식되는 존재가 아니다. 대신 어떤 ‘연관관계’로 인간과 존재적, 실천적 만남이 이뤄지는 것이다. 반대로 그렇지 않을 경우 대상과 인간은 서로 배제되고 소외된다. 그 대상이 도구든 기술이든….

그런 인간 소외의 공식을 경계한 것이 이른바 유비쿼터스 컴퓨팅이다. 인간과 컴퓨터의 상호작용(Human-Computer Interaction : HCI)이다. 실리콘 밸리의 마크 와이저는 이를 “누구도 그것의 현전을 알아차리지 못하는” 기술, 혹은 “조용한 기술”로 칭했다. 즉 컴퓨터가 인간 삶의 전면에서 인간을 컴퓨터가 발생시키는 가상 현실로 끌고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배경으로 물러서서 보이지 않게 인간 삶에 기여하는 식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모든 사물에 컴퓨터를 표 안나게 조용히 심어야 한다. 이른바 심는 기술(Embedding Technology)이다. 유무선, 적외선 등에 의해 연결된 하드웨어, 소프트웨어들이 모든 곳에 심어져, 누구도 ‘눈 앞의 존재자’로 현전하고 있음을 알아차리지 못하게 한다. 그런 원리로 태어난 것이 애플의 아이패드다. 

그러나 많은 공학자들은 이를 크게 오해하고 있다. ‘심는 기술’이라고 하니까 보이지 않는 컴퓨터를 그저 물리적이고 시각적인 부재(不在)로만 여겼다. 어떻게 컴퓨터를 보이지 않게 곳곳에 매립하여 숨길 것인가, 물리적으로 보이지 않게 사라지게 할 것인가 따위다. 그러나 아이패드라는, 언뜻 특별할 것 없어보이는 전자기기 이면엔 심오한 하이데거의 존재론이 깃들어있다. 인간의 근원적 존재방식, 즉 행위를 통한 사물과의 실천적 만남을 천착한 것이다. 

아이패드의 특성은 ‘사라지는(disappear)’데 있다. 눈에 띄지않는 기술로 사용자와 한 몸이 되어 만나는 기기, 그게 바로 아이패드의 성공 포인트다. 이는 하이데거의 ‘도구존재론’에서 촉발되었음을 이해해야 한다. 도구가 우리의 주의를 끄는 대상이 아니라, 우리의 행위와 일체가 되어 그 도구의 존재감이 눈에 띄지 않는다. 그처럼 아이패드는 대상으로서 도구가 아니라, 행위와 일체가 되는 컴퓨터다. 모니터가 ‘주시’의 대상이 아니라, 손으로 직접 그것을  터치함으로써 조작한다. 하이데거가 도구의 존재방식을 ‘손 안의 존재자’라고 표현했듯이, 사용자에게 시각적 인지 대상으로 분리되지 않고, 사용자의 신체 부위와 인지적으로도 일체감을 형성하게 된다.

사용자는 소프트웨어를 조작하고 있다는 사실마저 잊게 된다. 마치 TV 스위치를 켜거나, 책장에서 책을 꺼낼 때 아무런 의식적 판단이 필요없듯이…. 사용자는 아이패드가 소프트웨어를 통해 작동하는 기계임을 잊어버리고 그냥 웹사이트, 사진, 영화, 게임 자체를 손에 들고 있는 듯한 착각에 빠진다. 아이패드에서 웹브라우저를 열면, 웹사이트 전체가 화면을 채운다. 컴퓨터와 달리 웹사이트를 둘러싼 각종 틀, 메뉴, 버튼 등은 찾아보기 어렵다. 인간과 도구, 기술이 하나가 된다고 할까. 하긴 아이패드 개발의 모티브를 제공한 마크 와이저는 공학도이자 철학도이기도 하다. 뇌리엔 기술과 인간의 대립과 소외에 대한 인문학적 질문으로 가득했던 인물이다. 아이패드는 그런 물음표를 담은 기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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