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ㆍ칼럼니스트.
시인ㆍ칼럼니스트.

최근 들어 안타까운 뉴스가 우리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 ‘욱!’하는 바람에 분노를 참지 못해 끔직한 살인까지 저지른, 너무나 어처구니없는 사건이 매스컴을 뜨겁게 달구었다. 이른바 ‘분노조절장애’로 빚어진 비극이다. 이는 심리학 용어로, 분노를 참거나 조절하는 데 어려움을 겪으며, 과도한 분노의 표현으로 정신적, 신체적, 물리적 측면 등 다양한 영역에서 문제를 일으키는 것을 말한다. 결국 화(火)를 다스리지 못하거나 다스릴 수 없는 지경에 이르러 나타나는 심각한 현상으로, 현대 사회의 큰 골칫거리로 대두되고 있다.  

화, 또는 분노는 자신의 욕구실현이 저지당하거나 어떤 일을 강요당했을 때 이에 저항하기 위해 생기는 부정적 정서로 풀이된다. 이는 자연스러운 감정이지만 조절이 되지 않을 때가 문제다. 뇌의 전두엽에서, 스트레스를 받는 일이 생기면 코티졸(Cortisol)이라는 호르몬이 과다 분비되어 기능이 떨어지는데, 이때 분노조절이 불가능해지면서 함부로 분노표출이 이루어진다고 알려져 있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누구나 화를 낼 수 있다. 그러나 적절한 상대에게, 적절한 이유로, 적절한 시간에, 적절한 방법과 적절한 정도로 화를 내기는 참 어렵다’고 했다. 철학자에게도 분노를 다스리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세상을 살면서 화 한번 내지 않고 사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화가 나서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거나, 화를 다스리지 못해 스스로 울화병에 걸리기도 한다. 물론 우리 주변에는 화를 좀처럼 잘 내지 않고, 잘 참기도 하는 훌륭한 사람도 있다. 그러나 평범한 사람들, 심지어 수행 정진하는 종교인들마저도 화를 극복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라고 입을 모은다. 

아무튼 인간의 삶에서 화가 차지하는 비중은 매우 크다. 그것은, 화를 풀지 못해 울화병에 걸린 적이 있거나, 화를 다스리지 못해 서로 피해를 주고받은 적이 있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세계의 모든 종교들이 화를 문제 삼고 있다는 데서 드러난다. 

서구 그리스도교와 이슬람교는 화를 지옥에 떨어질 대죄로 여겼고, 불교도 시기, 절망, 미움, 두려움 등 우리 마음을 고통스럽게 하는 독(毒)들을 하나로 묶어 ‘화’로 규정했다. 또 화는 개인적 차원에서만이 아니라, 집단적 차원에서 전쟁, 테러 등으로 폭발하기도 한다. 그래서 전쟁은 ‘조직화된 화’이고, 테러는 ‘정치적으로 조직된 화’라고 ‘화’ 연구의 대가 로버트 서먼(Robert Thurman)이 말했다.

2000년대에 들어 순간의 분노를 참지 못한 ‘홧김 범죄’가 더욱 늘었다는 보도를 자주 접하게 된다. 90년대에 비해 무려 2배나 늘었다고 한다. 몇 해 전, 단순한 층간 소음분쟁으로 이웃사촌 간에 살인과 방화가 잇따랐던 사실이 아직도 생생하다. 한 신문에서 강력범죄자의 양형보고서를 분석한 결과, 순간적인 화를 참지 못한 우발적 범행이 44.3%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화병은 주로 정신적 갈등이나 충격으로 나타나는 증상일 뿐 뇌에 병변이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정신병처럼 인격의 변화가 뚜렷하게 나타나지 않는다. 그래서 정신분열증을 포함한 정신병은 화병에 속하지 않는다고 한다.

화병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속상한 일이 있으면 그대로 묻어두지 말고 될 수 있는 대로 상대방과의 대화를 통해 그때그때 해결하도록 노력하라고 전문가들은 조언한다. 또한 가벼운 운동으로 스트레스를 줄이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덧붙인다.

인생을 살다 보면 일이 순조롭게 잘 풀릴 때가 있지만, 또 어떤 때는 아무리 애써도 자꾸 꼬이기만 할 때도 있다. 어렵고 힘들고 울화가 치밀 때일수록 자신의 내면을 차분히 들여다보며 잘 다스리는 지혜가 필요할 것이다. ‘참을 인(忍)이 셋이면 살인도 면한다’는 선인(先人)들의 말씀이 더욱 새롭게 와 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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