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ㆍ칼럼니스트.
시인ㆍ칼럼니스트.

지하철 시청역 앞 덕수궁 정문에서부터 덕수궁 돌담길은 시작된다. 그 길을 따라 걷다보면 정동(貞洞)길 한 가운데에서 노래비 하나를 만나게 된다. 바로 광화문 연가를 작사·작곡한 고() 이영훈을 사랑했던 친구들이 고인을 기리며 세운 추모비다. 고인은 생전에 가로수 그늘 아래 서면을 비롯해 사랑이 지나 가면’ ‘옛사랑등 주옥같은 곡들을 남기고 떠났다. 대부분, 콤비를 이루었던 가수 이문세의 입을 통해 알려진 그의 곡들은 쓸쓸하고 애잔한 가사와 감미로운 멜로디로 80년대 중반부터 우리들의 가슴 깊숙이 스며들었다.

이젠 모두 세월 따라 흔적도 없이 변해 갔지만/ 덕수궁 돌담길엔 아직 남아 있어요/ 다정히 걸어가는 연인들// 언젠가는 우리 모두 세월을 따라 떠나가지만/ 언덕 밑 정동길엔 아직 남아 있어요/ 눈 덮인 조그만 교회당// 향긋한 오월의 꽃향기가 가슴 깊이 그리워지면/ 눈 내린 광화문 네거리 이곳에 이렇게 다시 찾아와요’(이문세 광화문 연가중에서)

광화문 연가는 원래 인기 시사만화가 심난파(본명 심민섭)의 풍자만화집 광화문 블루스를 바탕으로 구성된 연극의 주제곡이었는데, 이 곡을 부른 주인공은 당시 잠시 활동하다 사라진 최현주라는 가수였다. 심난파는 지난 846월부터 4년여 동안 사회적으로 큰 화제가 됐던 가라사대심마니를 각각 모 주간지와 일간지에 연재했다. 이 연재물은 광화문 블루스라는 단행본으로 나왔고 전위예술가 무세중씨의 권유로 연극으로 올려지게 되었다. 이 연극은 코미디언 고() 심철호 씨가 주인공을 맡아 모노드라마 형식으로 연출되었다. 그런데 바로 이 연극의 주제곡이 광화문 연가로 이영훈에 의해 작사·작곡되었고, 연극 무대에서는 최현주가 노래했다.

광화문 연가에 나오는 정동길은 서울 시내에서 가장 아름다운 길로, 유명한 산책로 가운데 하나이다. 정동교회 앞 사거리에서 이화여자고등학교 동문 앞을 지나 새문안길에 이르는 구간을 일컫는데, 조선시대 이후 근대 서울 역사를 기록하고 있는 커다란 박물관이라고 할 만큼 역사적 자취가 많이 남아 있는 곳이다.

이 일대는 한양 도성의 서부 서대문과 서소문 사이 성안에 자리해 성벽이 보호막의 역할을 하면서 일찍부터 왕실과 양반 관료의 주거공간으로 발달했고, 궁궐과 왕비릉이 있었다. 1897년 한국 최초의 개신교 예배당인 정동제일교회가 정동길 한 가운데에 자리하게 되었다. 노랫말에 나오는 조그만 교회당은 바로 정동제일교회를 일컫는다. 이처럼 정동길 주변은 개항기 초에 선교사, 외교관들이 사들인 땅에 그들의 건축물을 지으면서 양인촌(洋人村)’으로 불리며 서양풍으로 변해 갔다. 대한성공회성당, 구세군사관학교 건물 등을 예로 들 수 있다.

1999년 서울시는 이 길을 걷고 싶은 거리1호로 지정했다. 도로 형태를 구불구불하게 만들어 차들이 빨리 달리지 못하도록 했으며 낙엽 쓸지 않는 길로도 지정했는데, 2006년 건설교통부가 선정한 한국의 아름다운 길 100에서 최우수상을 차지하기도 했다. 가로 주변에는 정동공원, 배재공원 등이 있어 시민들의 휴식 공간이 되고 있으며, 이화여자고등학교, 예원학교, 서울국토관리청, 경향신문사, 정동극장 등이 들어서 있다.

만추의 짙은 가을빛이 물들기 시작하는 덕수궁 일대는 산책을 즐기려는 시민들과 관광객들의 발길이 잦아들고, 서울 시립미술관으로 접어드는 길목엔 각종 전람회 안내 포스터가 눈길을 끈다. 서울 시립미술관은 옛 대법원 건물의 파사드(전면부)만을 남겨 두고 2002년에 리모델링한 건물이다. 지난날, 이혼하려는 부부들이 가정법원이 있던 이 건물로 오기 위해서는 덕수궁 돌담길을 따라 걸어야 했기에 연인끼리 덕수궁 돌담길을 걸으면 이별한다는 속설이 생겨났다고 한다.

깊어 가는 가을의 끝 무렵. 이번 주말엔 80년대의 옛 추억을 더듬으며 오랜만에 정동길을 거닐어 볼까 한다. 코트깃을 곧게 세운 채, 옛사랑과 마주칠 것만 같은 그 설렘으로...

 

김부조(시인·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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