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입자 지난해 2배로 늘어, 거제·창원·김해·구미 등 두드러져

# 경남 창원에 사는 전세세입자 A씨는 만기를 앞두고 마음에 드는 아파트의 전세를 구해 나가려고 했지만 집주인으로부터 “당장 보증금을 돌려주기 힘들다”는 얘기를 들어 불안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A씨가 2년 전 낸 전세금보다 최근 전세시세는 약 6000만 원 가량 떨어진 데다 집값도 3000만 원 가량 떨어져 있었다. 집주인은 “담보 가치가 떨어져 은행 대출도 거절당해 부족한 전세금을 어떻게 마련할지 난감하다”는 입장이다. 
주택 매매가와 전셋값 하락 등으로 이처럼 전세보증금을 제때 돌려받지 못하는 경우가 늘면서 올해 전세보증금 반환보증 가입자 수가 지난해의 2배에 달할 전망이다. 
20일 주택도시보증공사(HUG)에 따르면 이달 16일 현재 전세보증금 반환보증 가입 실적은 4531건, 보증금액은 9337억 원을 기록했다. 지난해 1월 1718건, 3727억 원에 불과했던 전세금 반환보증 가입실적은 올해 1월 4461건, 9778억 원으로 증가한 뒤 10월과 11월에 걸쳐 가입실적이 연초보다 2배 수준으로 늘었다. 
이는 지난 2013년 이 상품이 판매된 이후 월간 최대 실적을 보인 지난 10월과 비슷한 수준의 증가세다. 올해 11월 현재까지 누적 가입실적은 7만 6236건, 16조 3630억 원으로 올해 연말까지 실적을 합할 경우 지난 한 해 실적(4만3918건, 9조4931억 원)의 2배에 달할 것으로 추산된다.
전세반환보증은 전세금의 0.128%(HUG 기준) 정도를 보증수수료로 내면 세입자가 전세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할 경우 보증기관이 대신 지급하고, 이후 보증기관이 직접 집주인에게 보증금 상환을 요청하는 상품이다. 올해 보증실적이 급증한 것은 그만큼 전세보증금 반환 위험이 커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올해 보증실적이 급증한 것은 그만큼 전세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할 것을 우려하는 세입자가 늘었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최근 거제·창원·김해·구미 등 경상남·북도와 일부 충청권에서는 2년 전보다 전셋값이 하락해 집주인이 전세금을 제때 돌려주지 못하는 역전세난이 현실화 되고 있다. 전세와 대출금이 매매 시세보다 높은 이른바 ‘깡통주택’과 함께 전세 재계약을 하거나 집이 경매로 넘어갔을 때 세입자에게 전세금을 돌려주지 못하는 ‘깡통전세’까지 속출하고 있다. 현재 아파트 매매가가 2년 전세가격보다 많게는 수천만 원 넘게 낮아지면서 집주인과 세입자 간의 갈등도 심화되고 있다.

 

표=한국감정원
표=한국감정원

한국감정원에 따르면 올해 1~10월 열 달간 전국의 주택 전셋값은 평균 1.52% 하락했다. 올해 말까지 전셋값은 계속 하락할 것으로 예상돼 이 경우 연간 기록으로는 2004년(-0.52%) 이후 13년 만에 처음으로 하락세를 보일 전망이다. 전세금 반환보증은 지방뿐만 아니라 최근 일산·김포·파주·인천 등 수도권에서도 가입자 수가 늘고 있다는 게 공사의 설명이다. 경기도의 경우 올해 입주 물량 증가로 주택 전셋값이 지난달까지 전국 평균을 웃도는 2.48%나 하락하면서 추가 하락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부동산 114에 따르면 최근 2년간 17개 광역지자체 중 전셋값 재계약 비용이 하락한 곳은 경남을 비롯해 세종(-861만원), 울산(-474만원), 경북(-160만원) 등 4곳으로 나타났다. 경남의 전세 재계약 비용을 지역별로 보면 거제가 -2843만원으로 하락폭이 가장 컸고 김해시(-814만원), 창원시(-763만원), 통영시(-216만원)가 뒤를 이었다. 
지방의 깡통전세 확산은 입주 물량이 크게 늘어난 영향으로 풀이된다. 2010년 이후 지속된 수도권 주택시장 침체로 2014~2016년에 걸쳐 지방을 중심으로 새 아파트 분양이 크게 늘어났었기 때문이다.
부동산114에 따르면 2010~2013년 경남의 새 아파트 입주물량은 초반 연평균 6000~2만여 가구에 그쳤지만, 지난해 4만여 가구로 2배 이상 급증했다. 올해 입주 물량도 3만7000여 가구에 달하며, 내년은 3만500여 가구가 입주를 기다리고 있다. 
충남은 2016년 새 집이 2배가 넘는 2만2500가구로 늘어난 데 이어 지난해 2만4500가구, 올해 2만6000가구로 증가했다. 지역에 따라 편차는 있지만 미분양 등 아파트 공급 과잉을 겪고 있는 지방에서 역전세난은 계속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김은진 부동산114 팀장은 “지방의 집값 하락과 역전세난 문제가 심해지고 있지만 뚜렷한 보호장치가 없다는 것이 문제”라며 “미분양이 많은 지역 주택 공급 물량을 조정하고, 최근 세입자 보호를 위해 도입한 전세보증금 반환보증에 대한 위축지역 특례(특례보증) 제도 등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한편, 전세금을 돌려받지 못한 세입자는 법원에 ‘임차권 등기명령’을 신청해 우선 변제권을 유지할 수 있다. 또 전세금을 돌려받기 전에 이삿짐을 빼거나 옮겨가선 안 된다. 

이해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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