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ㆍ칼럼니스트.
시인ㆍ칼럼니스트.

‘가난하다고 말하지 말라. 나는 들쥐를 잡아먹으며 연명했다. 배운 게 없다고 탓하지 말라. 나는 내 이름도 쓸 줄 몰랐으나 남의 말에 귀 기울이면서 현명해지는 법을 배웠다. 너무 막막해 포기해야겠다고 말하지 말라. 나는 목에 칼을 쓰고도 탈출했고, 뺨에 화살을 맞고 죽었다 살아나기도 했다. 적(敵)은 밖이 아니라 내 안에 있었다.’(칭기즈칸 어록 중에서)

어느 겨울, 한 산악인이 로프를 타고 급경사의 빙벽을 힘겹게 오르고 있었다. 그런데 전혀 예상치 못한 기상이변으로 갑자기 강풍을 동반한 눈보라가 몰아쳤다. 한순간에 차가운 눈 더미로 범벅이 된 그는 거센 강풍으로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하는 위험에 직면하고야 말았다. 전혀 예상치 못한 돌발 상황이라 속수무책이었다. 그는 오로지 생명줄인 로프에 의지한 채 강풍과 눈보라가 잦아들기만을 간절히 기도했다. 그러는 사이 체온은 차츰 떨어지기 시작했고 호흡도 갈수록 가늘어졌다. 그렇게 얼마쯤 지난 뒤 정신이 차츰 혼미해져 옴을 느끼자 그는 정신을 잃지 않으려 안간힘을 썼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눈이 스르르 감기고 몸에서 기운이 차츰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얼마나 더 시간이 흘렀을까? 어디선가 우렁찬 목소리가 들려왔다. 행여 희망의 끈을 놓고 정신을 완전히 잃을까 조바심이 난 119구조대원은 그 조난자에게 다가가며 힘껏 소리쳤다. 그러나 필사적인 구조작업으로 119대원이 그에게 다가가 몸을 잡는 순간, 그는 고개를 툭 떨구고 말았다. ‘이제는 살았구나’ 하는 안도감에 그 산악인은 그만 긴장의 끈을 놓아 버린 것이다. 바로 그 긴장의 끈은 그가 그 매서운 눈보라 속에서도 결코 놓지 않았던 생명의 끈이었으나 그 끈을 놓아 버리는 순간, 이 세상과의 이별이 다가왔다. 이처럼 희망의 끈은 우리들의 고귀한 생명까지도 지배하는 엄청난 힘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대구에서 한 여행사를 운영하는 K라는 사람은 과거 10여 년간 공군 장교로 근무했다. 그런데 어느 날 훈련비행 중에 뇌출혈로 쓰러지고 말았다. 죽음의 문턱에서 겨우 살아 돌아온 그는 1년 6개월 동안 병원 신세를 져야만 했다. 공군 최고의 전투조종사에게 주어지는 영예인 ‘탑건’에 뽑힐 만큼 승승장구하던 그에게 뇌출혈은 절망 그 자체였다.

한순간의 사고였지만 그때부터 그의 인생에 서서히 먹구름이 드리워지기 시작했다. 사고 후 비쳐진 자신의 모습도 싫었고 술, 담배가 늘었으며 결국은 도박의 늪에까지 빠져들게 되었다. 가끔, 이미 타락해 버린 자신을 발견할 때면 ‘그때 왜 죽지 않고 살았나’하는 처절한 생각이 들기도 했다. 게다가 재앙은 겹쳐서 온다고 했던가. 헝클어진 마음을 추스르며 재기를 꿈꾸어 보려 여러 사업에 뛰어들기도 했으나, 굳게 믿었던 친구들에게 배신까지 당하며 마침내 극단적인 마음을 먹기까지 했다. 

그런데, 그 절망의 늪에 빠져 있던 그에게 희망의 불씨를 지펴 준 사람은 바로 그의 아내였다. 남편이 사고를 당했을 때나 사기를 당했을 때나 늘 그의 곁에서 손과 발이 되어 주었던 아내는 결국 그를 일으켜 세우고 말았다. 그간 아내가 학원을 운영하면서 아껴 모은 돈으로 남편이 평소에 하고 싶어 하던 여행사를 차려 준 것이다. 절망의 늪에서도 한 가닥 희망의 끈을 결코 놓지 않았던 그에게 아내는 희망의 불씨를 지펴 준 것이었다.

사람이 한 평생을 살면서 어느 순간 무너지는 것은 미끄러운 빙벽도, 험한 낭떠러지도 아니다. 그것은 바로, 미리 겁을 먹고 희망의 끈을 놓아 버리는 것이다. 우리에게 소중한 그 희망의 끈은 결코 멀리 있지 않다. 그러나 그 끈은 희망이 있다고 믿는 사람에게만 보이는 것이다. 깊고 어두운 늪에 빠져 살아날 가망이 없다손 치더라도 결코 희망의 끈을 놓아서는 안 된다. 희망은 포기하지 않고 묵묵히 기다릴 줄 아는 자의 것이기 때문이다. 지금은 비록 막막해도 슬기롭게 준비하면서 기다리면 새로운 길은 꼭 다시 열리게 된다.
 

저작권자 © 애플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