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ㆍ칼럼니스트.
시인ㆍ칼럼니스트.

‘천 간이나 되는 넓은 집, 곳간에 쌓인 만 섬 곡식, 백 벌의 비단 옷도 나는 하찮게 여겼지만 늘그막에 즐거움을 주는 몇 가지는 갖고 싶다. 서책 한 시렁에 거문고 한 벌, 바람 들일 창문 하나, 신고 나갈 신 한 켤레, 차 끓일 화로 하나, 햇볕 쪼일 쪽마루, 늙은 몸 지탱할 지팡이 하나, 그 위에 경치 찾아 나설 때 타고 다닐 당나귀 한 마리가 있다면 더욱 좋겠다’ 
 조선 중종 때 문신 김정국이 남긴 글이다. 옛 선인들의 청빈은 가난 속에서 오히려 마음의 여유를 찾는 바탕이 되기도 했다. 조선 초기의 문신 정극인은 세조의 왕위 찬탈 때 낙향해 자연 속에 파묻혀 사는 즐거움을 ‘상춘곡(賞春曲)’에 담았고, 중국 동진(東晉)의 시인 도연명은 벼슬 버리고 가난한 옛집으로 돌아가 유유자적하는 즐거움을 ‘귀거래사(歸去來辭)’로 읊었다. 
 ‘부귀도 내 원하는 바가 아니고 신선이 되는 것 또한 기약할 수 없는 일, 기분 내키면 홀로 나다니고 때로 지팡이 꽂아 놓고 김을 맨다. 동쪽 언덕에 올라 휘파람 불고 맑은 물가에서 시를 읊는다. 잠시 자연에 맡겼다가 돌아갈 뿐, 천명을 즐기면 되었지 무엇을 더 의심하랴.’ 도연명은 그야말로 행복한 시인이었다.
 조선 초기 황희 정승과 함께 청빈의 표상으로 전해지는 맹사성은 맹고불(孟古佛) 정승으로 더 알려진 청백리였다. 여름철이면 허름한 베옷을 입고 소를 타고 다녀 ‘소 탄 정승 맹정승’이란 유행어를 남길 만큼 소탈한 공직자였다. 좌의정이란 신분에 어울리지 않는 오두막집에서 낡은 베잠방이를 입고 초라한 밥상을 받는 그의 삶이, 사치와 허례에 빠진 당대 고위 공직자들을 부끄럽게 만들었다는 일화로 남아 있다. 
 시인 서정주는 ‘무등을 보며’라는 시에서 ‘가난은 한갓 남루에 지나지 않는다’고 했다. 구차하고 궁색하면서도 그것에 얽매이지 않고 평안하게 즐기는 마음으로 살아감을 뜻하는 안빈낙도(安貧樂道)의 전통적 가치관을 반영한 시구(詩句)다. 욕망에 구속되는 것보다 안분지족(安分知足)하는 것이 더욱 여유로운 삶을 만들어 가는 지혜라는 점에서 보면 고개가 끄덕여진다.
 사람이 청빈하게 살기는 마음먹기에 따라 가능하지만 무소유의 개념을 실천하기란 여간해서는 불가능에 가깝다. 세속에서의 무소유란 곧 ‘알거지’를 뜻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법정 스님이 바랐던 무소유란 본디 그런 뜻이 아니었을 것이다. 없어도 될 것을 없애는 것. 그것이 바로 무소유의 본질 아니었을까. 
 무소유란 받아들이지 않아서 궁색하여지는 것이 아니라 내 속에 쌓인 불필요한 것을 머물게 하지 말고 내보내라는 뜻으로, 예컨대 샘물을 퍼내면 줄곧 퍼낸 만큼 고여 들게 마련이니 겁내지 말고 좋은 데다 거리낌 없이 쓰라는 의미로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몇 해 전부터 우리나라 사람들의 ‘삶의 질’이 소득에 비해 낮은 편이란 정부 기관의 보고서가 나오고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가운데 한국 국민의 삶의 질이 하위권에 머물러 있다는 충격적인 내용이다. 다른 분야의 경쟁력은 중위권인데 삶의 질이 하위권에 쳐져 있다는 게 무슨 의미일까. 국민 소득이 꾸준히 증가해 왔는데도 삶의 질에 대한 만족도가 높아지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가난해도 행복할 수 있고 평생 먹고 살 만큼 돈을 쌓아둔 부자도 불행할 수 있는 것이 인간의 삶이다. 끝없는 욕망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천금 만금을 쥐고도 땅이 꺼져라 한숨 쉬고 탄식하는 게 바로 인간이다. 가진 게 없어 비록 그날 벌어 그날 먹는 신세라 해도 자신의 분수를 알고 순리를 거역하지 않으며 스스로 즐거움과 행복을 느끼면서 삶을 이어가는 것도 인간이다. 법구경(法句經) 속의 한 구절이 오늘따라 뜨거운 일침(一鍼)으로 와 닿는다.
 ‘내 자식이다 내 재산이다 하면서/ 어리석은 사람은 괴로워한다/ 제 몸도 자기 것이 아닌데/ 어찌 자식과 재산이 제 것일까’

저작권자 © 애플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