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철로 부지 숲길로 조성, 구주택가 골목마다 새 상권
서교동·동교동 일대와 다른 ‘차분한 매력’

사진 = 유현숙 기자
사진 = 유현숙 기자

홍대입구역은 1년 365일 매시간 사람이 많다. 지하철역에선 한낮에도 많은 인파를 헤치고 나아가야 한다. 그러나 그곳 3번 출구를 벗어나면 도심의 번잡함을 무색케하는 낯선 풍경이 펼쳐진다. 그곳엔 고만고만한 낡고 야트막한 건물들이 있고, 그 틈틈이 꼬불거리듯 이어지는 예스런 골목과 차로가 있으며, 북적이는 일상 속의 갑작스런 여백을 채우듯 느슨한 풍경들이 이어진다. 
지금은 이미 명소가 된, ‘연트럴파크’라고 불리는 경의선숲길 연남동 구간이다. 연남동 허름한 주택가의 구수한 정취와, 언필칭 뉴욕 센트럴파크의 세련됨에 대한 선망이 교차하며 만들어진 단어다. 길 건너편 홍대입구와는 전혀 딴 세상같은, 숲길과 청춘남녀들의 속삭임이 메아리지는 그런 곳이다. 

사진 = 유현숙 기자
사진 = 유현숙 기자

총연장 6,319m의 선형 공원
경의선숲길은 지난 2016년 5월 완공된 총연장 6,319m의 선형 공원으로, 용산문화체육센터부터 홍제천까지, 용산구와 마포구를 가로지른다. 이 중 연남동 구간은 1,268m에 달하는 가장 긴 구간으로, 홍대 상권 이동의 중심지다. 경의선숲길 양쪽의 주택가·상가 골목 곳곳에는 다양한 업종의 가게들이 즐비해있다. 연남동 바로 아래 서교동·동교동 일대에 깔려있는 삼성전자, 카카오, CJ, SPC 등 대기업·프랜차이즈 일색인 상가 풍경과는 대조적인 모습이다. 
물론 이곳 역시 ‘젠트리피케이션’으로부터 자유롭지 않다. 홍대앞에서 밀려난 중소상공인들이 이곳에 터를 잡으면서 새롭게 상권이 발달했다. 그러나 최근엔 다시 이곳의 월세와 임대료가 크게 오르면서 많은 소상인들이 이젠 남쪽의 합정동이나 망원동, 성산동 일원으로 ‘도피’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과 숲이 어우러진 ‘쉼’의 공간을 찾는 이들이 많다. 코오롱하늘채와 대명비발디 아파트 사이에 조성된 연남동 경의선숲길에는 추위에도 불구하고 영유아를 동반하고 산책 나온 부모들부터 강아지와 함께 계절을 즐기는 노부부, 겨울색 입은 나무 아래서 사진을 남기는 커플들까지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기타 하나 들고 버스킹 하는 청년 앞에 모여 노래를 듣는 외국인 가족도 눈에 띄었다. 
조금 떨어진 성산동에서 모처럼 남편과 함께 산책나왔다는 김성연 씨(45)는 “집 근처 성미산을 주로 산책하곤 했지만, 이곳 ‘연트럴’도 새로 생긴 다음엔 거의 매일 들른다”면서 “커피도 한 잔 하고, 사람 구경도 하고 참 좋은 곳”이라고 했다.
경의선숲길을 찾는 이들의 발길은 숲길을 거닐며 도심 속에서 휴식을 즐기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골목까지 이어진다. 골목마다 자리한 크고 작은 가게들은 다양한 업종과 인테리어로 이들의 발길을 잡는다. 
인근 액세서리 가게에서 남자친구와 함께 물건을 고르던 한 20대 여성은 “멀리 면목동에서 홍대 앞에 놀러왔다가 이곳에 벌써 두 번째 들른다”고 했다. 그는 “주변에 맛집도 많고, 볼거리도 많아서 이젠 홍대앞 거리 못지않게 재미있다”고 즐거워했다.

사진 = 유현숙 기자
사진 = 유현숙 기자

청춘남녀 데이트, 주민들 산책 코스로 인기
홍대입구역 3번 출구에서 숲길을 따라가다 보면 연남파출소 앞에서 큰길이 숲길 사이를 통과해 지나간다. 이 길을 중심으로 홍대 앞 서강동과 서교동 쪽에서부터 밀려올라간 혹은 숨겨져 있던 가게들이 많다. 큰길에서 주택가 안으로 들어가면 주로 낮은 높이의 건물들에 1층과 2층, 반지하 위주로 식당과 카페, 편집샵, 스튜디오, 공방까지 들어서있다. 
지도를 보지 않으면 어디인지 찾지 못할 법한 곳에도 초저녁부터 대기 줄이 가게 앞에 쭉 늘어져있고, 6시 이후 웨이팅 시간은 기본 1시간이다. 인터넷에 연남동 맛집을 검색하면 나오는 곳들 대부분이 비슷한 풍경이다. 
기자도 연남동 맛집으로 추천 받은 한 곳을 방문했다. 이 식당은 동진시장에서 조금 더 올라가 조용한 빌라 사이에 자리잡은 작은 레스토랑으로, 흔히 접할 수 있는 피자와 파스타가 주력 메뉴인데 이곳만의 레시피를 통해 색다른 맛을 더한 곳이었다. 주말이라 5시를 조금 넘긴 시간에도 1시간을 기다려야했다. 카운터에서 테이블 배정을 하던 40대 홀 매니저 한 모씨는 “오늘은 그래도 덜 한편이에요. 어떤 주말은 아예 식자재가 딸려서 손님을 받지 못할 정도죠”라며 경황없어 했다. 기자도 할 수 없이 대기자 명단에 이름을 적어두고 잠깐 짬을 내어 인근의 동진시장을 둘러봤다.

사진 = 유현숙 기자
사진 = 유현숙 기자

사람사는 냄새 물씬한 동진시장
연남동 동진시장은 플리마켓으로 유명하다. 소박하고 조그마한 시장 내부는 구경하는 사람들로 붐볐다. 이곳에서는 아기자기한 액세서리를 비롯해 직접 만든 수공예품들을 만날 수 있다. 시장을 통과해 나가면 또 다른 연남동 골목에서 여러 가게들을 만날 수 있다. 
동진시장 플리마켓을 찾은 직장인 이모(28)씨는 “홍대 쪽은 시끄럽고 사람도 너무 많아서 복잡한데 길 건너 연남동 쪽으로 오니까 주택가 같은 분위기라 훨씬 차분하고 번화가 같지 않아서 좋다”면서 “이곳(동진시장 플리마켓)도 골목을 지나가다가 우연히 들렀는데 생각보다 구경할 게 많다”고 말했다. 
대기업·프랜차이즈 상가가 높은 건물로 들어서있는 홍대 앞 서교동·동교동의 풍경이 빠르게 변화하는 과잉접속시대를 보여주고 있다면 경의선숲길은 그 곁에서 한 숨의 여유가 되고 있다. 특히 경의선숲길과 닿아있는 수많은 골목은 숲길과 함께 숨쉬며, 오랜만에 ‘사람의 길’로 회복된 모습이다.

·사진 유현숙 기자

저작권자 © 애플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