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ㆍ칼럼니스트.
시인ㆍ칼럼니스트.

12월도 어느덧 절반을 지나고 있다. 해마다 이맘때쯤이면 거리 곳곳에서 들려오는 빨간색 ‘자선냄비’의 종소리가 불우이웃돕기의 계절임을 일깨워준다. 구세군 대한본영은 지난 달 30일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의 ‘2018 자선냄비 시종식’을 시작으로 소외된 이웃을 돕기 위한 모금을 시작했다. 올해로 90세를 맞는 구세군 자선냄비. 전국 76개 지역에서 145억을 목표로 진행된다. 그런데 해마다 이 자선냄비가 등장할 무렵이면, 배고픔을 참아 가며 혹독한 겨울 추위에 떨었던 샌프란시스코 난민들의 그 고통스러웠던 일화를 다시 떠올리게 된다. 

1891년 겨울, 성탄절을 앞두고 미국 샌프란시스코 인근 해상에서 대형 선박이 좌초되며 1,000여 명의 난민이 발생했다. 경제 불황에 허덕이던 당시, 빈민을 도울 시(市) 예산이 따로 없자 난민들은 끔찍한 추위와 배고픔의 고통에 시달려야 했다. 이때 그 지역의 구세군 사관이었던 조셉 맥피(Joseph Mcfee) 정위(正尉)는 빵 한 조각 없이 슬픈 성탄을 맞이하게 된 난민을 어떻게 도울까 밤새 고민하던 중 문득 기발한 생각을 떠올렸다. 그것은 언젠가 영국 리버풀 부둣가에서 보았던 자선(慈善)을 위한 ‘심슨의 솥’이었다. 

날이 밝자 그는 곧바로 시청으로 달려가 오클랜드 부둣가에 솥을 걸어도 좋다는 허락을 받고 주방에서 쓰던 큰 쇠솥에 다리를 걸친 뒤 ‘이 국솥을 끓게 합시다’라는 글귀를 써 붙였다. 솥은 순식간에 시민들의 정성이 담긴 지폐와 동전으로 가득 찼고 다행히 난민들에게 따뜻한 수프를 먹일 수 있었다. 자선냄비의 시초가 된 역사적 순간이었다. 

이렇게 이웃을 돕기 위해 새벽까지 고민하며 기도하던 한 구세군 사관의 깊은 마음은 오늘날 전 세계 100여 개 나라에서 해마다 실시하는 구세군 자선냄비의 출발점이 되었다. 그리고 그 정신은 오늘날 모든 구세군 자선냄비의 종소리를 타고 우리 사회 깊숙이 파고들어 이웃사랑의 필요성을 절실히 느끼게 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1928년 12월 15일, 구세군 한국 사령관이었던 스웨덴 선교사 조셉 바아(박준섭) 사관이 서울 종로와 명동에 나무막대를 지지대로 한 가정용 무쇠 솥을 설치, 불우이웃돕기를 시작한 것이 시초였다. 그 뒤 1965년에 와서는 붉은 원통형 양철제품으로 바뀌었다.

구세군은 1865년 7월 2일 영국 런던의 슬럼가에서 감리교 목사인 윌리엄 부스와 그의 부인 캐서린 부스에 의해 창시되었다. 처음에는 ‘그리스도교 전도회(Christian Mission)’라는 이름으로 서민층을 상대로 한 노방(路傍)전도로 출발했다. 그리스도 신앙의 전통을 따르는 교리를 가지고 선도와 교육, 가난구제, 기타 자선 및 사회사업을 통해 전인적 구원을 이루는 것을 목적으로 했는데, 1878년 구세군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초대 대장은 윌리엄 부스가 맡았다. 

일반적으로 교역자는 ‘사관’, 평신도는 ‘병사’로 통칭하는데 사관은 반드시 구세군에서 운영하는 신학교인 구세군사관학교를 거쳐야만 한다. 교육을 받은 구세군 사관은 전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사역할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진다. 한국의 구세군사관학교는 1910년 2월 15일 서울 종로구에서 성경대학으로 개교해 1912년 사관학교로 개칭했는데 1966년부터 7년 교육과정으로 개편, 오늘에 이르고 있다. 한국구세군의 사회봉사활동은 1918년 한 독지가의 기부금으로 서울 중구 충정로에 아동구제시설인 ‘혜천원’을 설립한 것을 시작으로, 교육사업인 학교설립에 이어 천재지변 때 긴급구호 활동 등 다양한 사업들을 펼쳐오고 있다. 특히 1920년대부터 시작한 자선냄비운동은 6·25 전쟁 시기를 제외하고는 꾸준히 이어져, 불우이웃을 돕는 데 앞장서고 있다.

그러나 자선냄비 모금처럼 일반 국민들을 상대로 한시적으로 벌이는 모금엔 언제나 한계가 있다. 더 많은 모금액으로 더 많은 불우 이웃들에게 따뜻함을 안겨 주려면 이른바 부유층의 자발적 참여, 즉 ‘노블레스 오블리주’가 늘 선행되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지금 이 시간, 우리의 따뜻한 손길을 기다리는 주변의 소외되고 불우한 이웃을 위해 무엇을 할 것인지, 우리 모두 한번쯤 고민해 보는 연말이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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