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ㆍ칼럼니스트.
시인ㆍ칼럼니스트.

‘마지막 남은 퍼즐 한 조각을/ 끼워 넣는 일도/ 그리 쉽지만은 않다// 남겨진 공간을 삼킬 듯 에워싼/ 팽팽한 균형,/ 서로 몸통을 조이거나 깎아 낸/ 열 한 개의 조각들이 마침내/ 접어 둔 비밀을 털어 낸다// 깊었으나 깨닫지 못한 겨울밤,/ 감미로웠으나/ 꽃샘바람이 삼켜 버린/ 봄 내음을 뒤로 하고,/ 짙게 타올랐으나 진부했던/ 사르비아의 여름 정원,/ 그리고,/ 고즈넉했으나 허허롭던/ 고요의 늦가을 숲// 그 어느 것 하나/ 편치는 않았다// 그러나 12월, 아픈 귀를 닫고/ 더러는 아물어 가는 균열의/ 흔적을 곁눈질하며 퍼즐,/ 마지막 한 조각을 끼워 넣는다// 참아 낸/ 균열의 마감이다’(자작시 ‘12월의 퍼즐’) 

무술년 한 해가 거의 저물어 가는 세밑이다. 세월의 빠름을 새삼 실감하며 바라보는 달력의 마지막 장이 오늘따라 더욱 쓸쓸해 보인다. 고딕체의 깔끔한 숫자 아래엔, 드문드문 기억해야 할 절기나 기념일이 인쇄되어 있고 그 여백 사이로 나의 건망증을 커버해 줄 메모들이 비집고 들어차 있다.

인터넷에서 12월의 탄생석을 검색해 본다. ‘터키석’이란다. 하늘색 또는 청록색을 띤 아름다운 보석으로 의미는 성공, 승리라고 한다. 푸름이 희망의 상징이라면, 한 해 동안 꾸준히 노력하고 땀 흘리면 누구나 꿈을 이룰 수 있다는 뜻으로 해석해도 무리는 아닐 듯싶다. 탄생석은 폴란드와 중부 유럽에 이주해 온 유대인들에 의해 비롯된 풍습인데, 12가지 보석을 1년의 열두 달과 견주어 자신이 태어난 달에 해당하는 보석으로 장식용품을 만들었다. 이러한 12개의 보석을 탄생석이라 일컬었는데, 이 보석을 가지면 행운과 장수, 명예를 얻는다고 믿어 왔다.

탄생석의 의미를 되새기며 한 해 동안 나와 동고동락한 스마트폰을 들여다본다. 뮤직앱에는 지난달부터 이미 12월의 맛을 한껏 북돋워 줄 ‘겨울의 곡’들이 채워지기 시작했다. 뉴에이지 음악가 조지 윈스턴의 피아노 연주곡 앨범 <December>, 슈베르트의 대표적 연가곡 <겨울 나그네>, 그리고 안토니오 비발디의 <사계(四季)> 중 ‘겨울’ 등이 계절을 빗댄 단골 메뉴로 올라 있다. 그중에서도 비발디의 <사계>는 한국인이 좋아하는 클래식 부문에서 당당하게 1위 자리를 지키고 있음은 물론, 불안감과 초조감을 해소시키는 심리치료에도 널리 활용되는 작품이라 더 애착이 간다.

비발디의 작품 중에서 가장 많이 연주되는 이 곡은 1725년 완성되었다. ‘화성과 창의에의 시도’라는 부제를 단 독주 바이올린과 현악 합주를 위한 12곡의 협주곡 중 네 곡에 ‘봄, 여름, 가을, 겨울’이란 간단한 표제를 붙여 <사계>라 부르게 되었다. 암스테르담에서 비발디의 <사계>가 첫선을 보였을 때 이들 네 개 바이올린 협주곡에는 이탈리아어로 된 소네트(Sonnet : 14행 시)가 서문처럼 붙어 있었다고 한다. 바로크 음악의 최대 작곡가 비발디의 대표적인 바이올린 협주곡 <사계>는 네 편의 시에 의해서 사계절 분위기와 색채를 즐겁고도 섬세하게 표현해 낸 표제음악의 걸작이라고 할 수 있다. 

아쉬움을 뒤로 한 채 저물어 가는 무술년을 차분히 마무리하며, 비발디 자신이 쓰고 이 작품의 표제 구실을 하고 있는 네 개의 소네트 가운데 ‘겨울’을 음미해 본다. 

‘모든 것을 얼어붙고 떨게 하는 눈의 계절/ 매섭도록 시린 바람이 불어온다/ 지나는 사람들의 걸음마다 눈 위로 찍히는 발자국들/ 사람들은 덜덜 이를 부딪친다/ 따뜻한 불을 쬐며 고요하고 행복한 시간을 보내는 사이/ 바깥은 겨울비에 흠뻑 젖는다/ 얼음 위를 조심조심/ 아주 느린 걸음으로 걷는다/ 급히 가려 했다가 미끄러지고, 빠지고/ 일어나 다시 가려 뛰다가/ 얼음이 그만 쩍 벌어지고 만다/ 누군가 집 떠나는 소리가 들려온다/ 아프리카의 열풍과 차가운 북풍, 온갖 바람이 휘몰아치는/ 아, 이것이 겨울, 그러나 이것조차도 겨울의 즐거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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