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보호…‘김용균법’ 우여곡절 끝 국회 통과, 산안법 28년 만에 전면 개정

사진 = 애플경제DB. 본 기사와 무관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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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안화력발전소 하청업체 근로자 김용균씨에 이어 충남 예산과 아산에서도 근로자 사망사고가 잇따라 일어난 가운데 ‘위험의 외주화’ 방지를 비롯해 산업 현장의 안전규제를 대폭 강화한 산업안전보건법(산안법) 개정안, 일명 김용균법이 27일 국회 문턱을 넘었다. 
그러나 민주노총은 27일 국회에서 통과된 산업안전보건법을 통해 사업주의 안전관리 책임을 대폭 강화하고 위험한 작업 환경을 전면적으로 개선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국회는 이날 저녁 본회의를 열고 재석의원 185명 중 찬성 165인, 반대 1인, 기권 19인으로 산업안전보건법(산안법) 전부개정안을 통과시켰다. 산안법 전면 개정은 고 문송면군 등 원진레이온 노동자 230명의 사망에 따른 지난 1990년 이후 28년 만이다. 앞서 2016년 5월 서울 지하철 구의역에서 스크린도어를 정비하던 19세 노동자가 숨졌을 당시 산안법 개정안 등을 논의했으나 법 개정은 하지 못했다. 이후 2년여 만에 하청업체 직원의 사망 사고가 또 다시 발생하자, 뒤늦게 관련법이 정비된 것이다. 
△사업주 위험 책임 범위, ‘사업장 전체’로=개정 산안법은 산재 사망자 가운데 하청 노동자 비중이 2016년 기준 42.5%에 이르는 등 위험의 외주화가 심각하다는 인식에 따라 산재에 대한 원청 사업주의 책임을 강화했다. 사업장의 유해·위험 요소에 대해 원청 사업주가 실질적인 지배·관리권을 가진 점을 반영한 것이다. 이에 따라 원청 사업주의 안전보건 조치 의무를 일부 위험 장소에서 ‘사업장 전체’로 확대했다. 화재와 폭발, 추락, 질식 등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유해·위험 장소로, 사업주의 지배·관리가 가능한 곳도 책임 범위에 포함된다.
위험의 외주화를 차단하기 위해 일부 위험 작업은 사내 도급 자체를 금지했는데, 직업병 발생 위험이 큰 도금과 수은, 납, 카드뮴을 사용하는 작업이 해당된다. 하지만 김용균 씨가 사고 당시 수행했던 작업은 도급금지 대상에 해당하지 않고, 2016년 구의역 사고 당시 사망 노동자 김군이 했던 스크린도어 수리 작업도 포함되지 않는다. 이 때문에 개정 산안법의 도급금지 범위가 지나치게 좁다는 지적이 나오고, 노동계는 위험의 외주화를 근절하기 위해서는 금지 범위를 대폭 확대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사업주 법규 위반 처벌도 강화=개정 산안법은 원청 사업주의 안전보건 조치 의무 위반에 대한 처벌도 강화했다. 원청 사업주의 안전보건 의무 위반에 대한 처벌은 현행 1년 이하 징역 또는 1000만 원 이하 벌금에서 3년 이하 징역 또는 3000만 원 이하 벌금으로 수위를 높였다. 당초 정부안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비해서는 후퇴했다. 
안전조치 및 보건조치 의무를 위반해 노동자가 사망한 사고에 대해서는 현행 7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억 원 이하의 벌금을 유지했다. 노동계는 안전보건 의무를 위반한 사업주에 대한 처벌에 ‘징역 1년 이상’과 같은 방식으로 표현되는 하한형을 도입해 실효성을 높여야 한다고 요구했으나, 정부가 제출한 개정안에 반영되지 않았다. 다만 개정 산안법도 산재 사망사고를 초래한 사업주에 대한 처벌이 지나치게 가볍다는 점을 고려해 같은 범죄를 5년 내 2번 이상 범할 경우에는 형벌의 2분의 1을 가중하도록 했다. 정부안에는 ‘징역형을 최대 10년으로 상향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으나, 현행법대로 최대 상한을 7년으로 하되 가중처벌을 신설하는 선에서 여야가 의견을 절충한 것이다. 
또 근로자 사망 사고 발생과 관련해 법인 사업주에 대한 처벌을 현실화하는 측면에서 법인의 벌금형을 최고 10억 원으로 올리도록 양벌규정(위법행위에 대해 행위자 처벌 외에 그 업무 주체인 법인 또는 개인도 함께 처벌하는 규정)을 개정했다.
또한 개정 산안법은 법의 보호 대상을 ‘근로자’에서 ‘노무를 제공하는 자’로 확대해 근로자성이 인정되지 않아 산안법 보호를 받지 못했던 특수고용직 노동자와 배달 종사자 등도 보호 대상에 포함했다.
아울러 화학물질을 제조·수입하는 사업주는 ‘물질안전보건자료’를 작성해 고용노동부 장관에게 제출하도록 하고 화학물질 명칭과 함유량 등을 영업비밀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노동부 장관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
개정 산안법은 일정 규모 이상 기업의 대표이사가 기업의 안전보건 계획을 수립해 이사회에 보고하고 승인을 받도록 했다. 
한편, 여야는 산안법 등 민생법안의 본회의 처리 협조를 위해 자유한국당이 강하게 요구했던 임종석 대통령 비서실장과 조국 민정수석이 참석하는 국회 운영위원회를 오는 31일 소집하고, 다음 본회의에서 채용비리 국정조사 계획서를 처리하기로 합의했다.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은 27일 “문재인 대통령이 오전 참모들과의 티타임에서 위험의 외주화를 방지하는 ‘김용균법(산업안전보건법)’의 연내 국회통과를 위해서라면 조국 수석이 국회 운영위에 참석하도록 하라고 지시했다”고 말했다. 
김 대변인은 “문 대통령이 한병도 정무수석으로부터 조국 수석의 운영위 참석과 김용균법 처리가 맞물려 있어 법안 처리에 진척이 없다는 보고를 받고 이런 지시를 했다”고 설명했다.   
헌정사상 현직 민정수석이 국회에 출석한 사례는 다섯 차례에 불과하다. ‘특별감찰반의 민간인 사찰 의혹’과 같은 야당이 주장한 개별 건으로 소집된 운영위에 출석한 사례는 거의 없다. 청와대는 피고발인 신분의 민정수석이 국회에 출석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지만, 문재인 대통령이 제2, 제3의 김용균이 나오는걸 막기 위해선 연내 법 통과가 반드시 필요하다며 출석을 직접 지시했다고 설명했다.
운영위 문제가 임종석 대통령 비서실장과 조국 수석의 출석으로 합의되면서 여야는 이날 김용균법 처리를 비롯해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 등 6개 비상설 특위 연장, 김상환 대법관 후보자 임명동의안 처리에 줄줄이 합의했다. 다만 ‘유치원 3법’은 여야 이견을 좁히지 못해 패스트트랙 처리 절차를 밟게 됐다. 또 12월 임시국회에서 처리하기로 합의했던 공공부문 채용비리 국정조사 계획서는 다음 본회의에서 처리하기로 했다.
그동안 산업 전반에서는 이윤극대화를 위해 비용 절감만을 추구하며 인력을 대폭 줄이거나, 열악한 하청업체에 맡기는 등의 행위를 자행해왔다. 최근 일어난 사고들은 사람보다 돈을 더 중히 여긴 결과다. 거시적인 안목을 갖추고, 사회 전반의 인식을 바꿔 적절하고 합리적인 안전 시스템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 숨져간 노동자들, 사망사고 잇따라=이들은 모두 정규직 노동자로, 비정규직뿐 아니라 정규직 노동자들에게도 안전관리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산업 전반의 실태를 보여주고 있다. 
27일 고용노동부 천안고용노동지청과 경찰에 따르면 지난 26일 오후 5시 13분쯤 예산군의 한 자동차 부품 도금업체에서 일하는 러시아 국적의 A(29)씨가 부품 이송장치와 기둥 사이에 끼여 숨졌다. A씨는 6개월 전 입사한 러시아 국적의 고려인으로 알려졌다.
같은 날 오후 8시 40분쯤 아산시 둔포면 동원F&B 공장에서 근로자 B(44)씨가 설비 사이에 끼여 목숨을 잃었다. 이 설비는 산업용 로봇이 설치된 곳으로 상자를 자동으로 옮기는 포장 라인으로 알려졌다. 
고용노동부 천안지청은 두 작업장에 전면 작업중지 명령을 내렸다. 경찰은 공장 관계자 등을 상대로 현장 안전관리 문제를 집중 조사해 관리부실 혐의가 드러나면 입건할 방침이다.
민주노총 세종충남지역본부는 이날 성명을 내고 “지난 7일 당진 모 제조업체에서 폭발사고로 전신 화상을 입은 뒤 이날 숨진 근로자까지 포함하면 김용균씨의 죽음이 잊혀지기도 전에 같은 날 충남에서만 근로자 3명이 목숨을 잃었다”면서 “더는 노동자의 억울한 죽음이 없도록 관련 당국의 철저한 사고 조사와 안전 대책이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해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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