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입자 대책없이 내쫓아” 분통…2만여명 서명 서울시·중구청에 전달
천막농성, 전면 무효화 주장, 강문원 비대위장 “재검토? 말뿐…수정 시늉만”

“도시재생도 중요하지만 아직 갈 곳도 정하지 않은 상태여서 난감합니다. 재검토를 어느 정도까지 진행할지 모르겠지만 상인들을 위한 대책이 나올 것 같지는 않습니다.”
서울 을지로 일대 대규모 정비사업이 본격화되면서 1950~60년대에 문을 연 오래된 노포(老鋪)음식점들과 청계천의 공구상가 등이 사라질 위기에 놓였다. 
기자가 현장을 찾은 18일 오후 청계천과 을지로 일대 상인들은 ‘단결투쟁’, ‘생존권 보호’, ‘재개발 반대’라는 문구가 적힌 빨간 조끼를 입고 영업을 하고 있다. 폐업한 가게 덧문에는 ‘용삼찬사 잊었느냐'’는 글씨가 특히 눈에 띄었다.

 

23년째 공구상을 운영 중인 황인자씨는 “이곳 상인들의 80~90%는 세입자라고 생각하면 된다”라며 “재개발해 주상복합을 올린다고 하면 팔지 않을 지주들은 거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우리도 정당하게 임대료를 내고 장사해 세금도 착실히 내고 있는데, 내보낼 때 아무런 대책이 없다는게 억울하다”고 덧붙였다. 
청계천과 을지로 일대는 2006년 ‘세운재정비촉진지구’로 지정됐다. 오세훈 전 서울시장은 세운상가를 철거하고 100층짜리 초고층빌딩을 짓겠다는 계획을 발표했지만 글로벌 금융위기의 여파로 무산됐다.
서울시는 2014년 계획을 바꿔 세운3구역에 최고 26층 높이의 건물 6개 동을 짓고 아파트와 업무시설, 판매시설 등 연면적 40만㎡ 규모의 복합단지를 조성키로 했다. 사업을 신속하게 추진하기 위해 서울시는 3구역을 3-1부터 3-10까지 10개 소구역으로 쪼갰다. 이 중 세운3-1, 세운3-4·5 구역은 지난해 말 관리처분인가를 받아 철거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이 때 약 400여개 중소형 업체가 문을 닫거나 가게를 옮겼다. 

 

세운3-2구역은 2017년 4월 사업시행인가를 받고 관리처분인가 절차를 밟고 있다. 관리처분인가를 받으면 이주와 철거를 거쳐 새 건물 공사에 들어간다. 이 구역에 해당하는 을지면옥, 안성집 등 을지로 일대 유명 노포들이 철거를 앞두면서 재개발 반대 목소리가 커졌다.
상인들과 예술인들의 반발이 거세자 박원순 서울시장은 16일 서울시청에서 열린 신년 기자간담회에서 청계천·을지로 일대의 재개발 사업을 “전면 재검토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상인들의 반응은 냉랭하다. 
청계천 일대에서 노숙농성을 하고 있는 강문원 청계천생존권사수비상대책위원장은 “재검토는 말 뿐”이라며 “조금 수정하고 ‘이게 재검토 결과다’라고 하면 할 말이 없다”고 말했다.
지난 17일 예술인과 시민들이 중심이 된 ‘청계천·을지로보존연대(보존연대)’은 서울 중구청에서 ‘청계천·을지로 재개발 반대 총궐기 대회’를 열고 2만1043명의 서명을 담은 ‘재개발 반대 성명서’를 서울시와 중구청에 전달했다.
18일에는 청계천 상권수호 대책위원회(대책위)가 서울 중구청 앞에서 ‘세입자 대책 없는 청계천 일대 재개발 반대’ 집회를 열었다.
청계천 일대의 공구·정밀가공업계 종사자 600여 명(주최 측 추산)은 ‘청계천 재개발 결사반대’ 등의 문구가 적힌 피켓을 들고 청계천 상인들의 생존권 보호를 요구했다. 
대책위는 건물별 리모델링을 통한 동일상권 유지, 세운재정비촉진지구·수표도시환경정비사업 내 공구특화지역 마련 등을 서울시와 중구청에 요구했다.
한 집회 참가자는 “박원순 시장과 서양호 중구청장에게 꾸준히 면담을 요청했으나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고 토로했다.

이해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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