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입자, 일부 주민들 격렬한 반대 “청계천·을지로 제조산업문화특구 보존해야”
박 시장 재개발 재검토 발언 후 “최종 확정 전 해치우려 공사 급속도 강행”

을지면옥이 곧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기사를 보고 그 전에 와보자고 해서 친구랑 함께 왔어요. 그냥 살려두면 안 돼요? 굳이 그렇게 싹 밀어버리고, 뭐 하자는건지

지난 18일 오후 들른 서울 중구 을지면옥에는 브레이크 타임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긴 줄을 서 기다리고 있었다.

직장인 송지현(37가명)씨는 뉴스에서 을지면옥 기사를 보고 없어지기 전에 와봐야겠다고 생각했다개발도 중요하지만 이러한 가게들은 서울시에서 보존해줘야 하는 게 맞지 않나 생각한다고 말했다.

을지로의 옛날 오래된 가게들이 철거될 것이라는 소식이 화제가 되면서 20일 오전 포털사이트 실시간 순위에 을지면옥이 오르기도 했다.

1985년 개업한 을지면옥은 서울 3대 평양냉면집으로 유명하다. 을지면옥 뿐만 아니라 1957년 개업한 돼지갈비 전문점 안성집, 1992년 개업한 양대창 맛집 양미옥 등 을지로에 자리 잡은 노포 음식점들이 철거 위기를 맞았다.

을지면옥은 종로구 장사동, 중구 을지로동·광희동에 걸쳐있는 세운재정비촉진지구 3-2구역’(세운 3-2구역)에 있다. 이 구역은 20174월 사업시행인가를 받았다. 공구 거리를 포함한 서울 청계천과 을지로 일대 상가 철거가 올해 초부터 본격화 되고 있다.

 

기자가 현장을 찾은 지난 18일 중구 청계천 공구 거리에는 상인과 고객이 물건을 사고파는 소리와 건물을 부수는 소리가 뒤섞여 있었다. 을지면옥을 조금 지나자 철거 작업이 한창 진행되고 있었다. ‘단결투쟁’, ‘생존권 보호’, ‘재개발 반대라는 문구가 적힌 빨간 조끼를 입은 공구상 상인들이 철거 현장 근처를 지나가는 모습에 섬뜩한 이질감마저 느껴졌다.

골목길을 들어가 보니 문을 닫은 공구상들이 여럿 보였다. 굳게 닫힌 점포 덧문에는 용산참사 비극 잊었는가라는 글씨가 적혀 있었다. 마침 용산참사 10주기를 앞두고 있어 더 예사롭지 않은 느낌이었다. ‘세입자 대책 없는 재개발 결사반대!!’ 라는 현수막도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었다.

 

서울시는 지난 20175‘4차 산업혁명의 중심지로 키운다며 세운상가에 세운 메이커스 큐브를 설치했다. 이곳에는 청년 스타트업 19개 업체가 자리를 잡았다. 이때만 해도 이 지역 주민들의 여론은 호의적이었다. 하지만 공구 거리의 재개발이 시작되면서 사정은 달라졌다. ‘때려 부수고 새로 짓는 방식의여느 재개발 사업이 이곳에서 시작되면서 점차 공구상들도 떠나고, 오랜 터줏대감격의 인쇄소나 크고작은 식당과 가게들이 떠나기 시작했다.

이들과 이런저런 방식으로 연계되어 협업관계를 이어오던 스타트업 업체들도 난감한 상황이되었다. 이제 지역 주민들뿐 아니라, 청년 창업자들이 대부분인 이들 스타트업체들도 앞으로 갈 길이 불투명해진 것이다.

 

본래 세운재정비촉진계획은 오세운 전 서울시장이 2006년 세운상가를 허물어 공원과 100층짜리 초고층 건물을 짓겠다고 발표했지만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의 여파로 무산됐다. 이후 박원순 시장이 취임해 2014년 세운상가와 그 일대를 26층 높이의 아파트와 업무시설, 근린생활시설 등을 갖춘 건물 6개 동을 짓는 안으로 변경했다. 이 가운데 3구역은 46072.3크기로서, 이를 10개의 소구역으로 쪼갰다.

청계천과 맞닿아있는 3-1·4·5구역이 지난해 10월 관리처분계획 인가를 받아 1단계 철거 작업을 시작했다. 토지 소유자는 물론 세입자와의 이주·보상 합의가 끝난 상태였다. 올해 하반기부터 3-2·6·7구역의 이주·철거가 시작될 예정이었다. 을지면옥·양미옥 등 노포를 비롯해 서울시가 2015서울미래유산으로 선정한 노가리 골목이나 수표지구도 철거 대상이 되면서 거센 논란이 일었다. 이에 박원순 서울시장은 지난 16일 부랴부랴 재개발 계획을 전면 재검토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박원순 시장은 16일 서울시청에서 열린 간담회에서 “(공구상가와 노포를 보존해야 한다는)상인들의 주장에 동의한다전적으로 재검토해 새로운 대안을 발표하도록 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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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박 시장의 재검토 발표 이후에도 공구 거리에는 재개발을 위한 철거가 한창이었다.

청계천 일대에서 노숙농성을 하고 있는 강문원 청계천생존권사수비상대책위원장은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 분통을 터뜨렸다. 그는 박원순 시장이 전면 재검토 하겠다는 말이 떨어지자마자 (최종 방침이 결정되기 전 서두르느라) 펜스까지 치고 막 밀어붙이고 있다면서 유적지, 제조 산업 특구와 같은 이 지역을 보존해야 한다. 정부에서 정책을 다시 수립해 이곳을 보호하면서 상인들과 상생하며 발전하는 식으로 가야한다고 절절한 목소리로 호소했다.

 

사진=이해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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