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경제 김건주 전 서울신문 제작국장·현 서강출판포럼 회장장 ]

신문인쇄에 있어서 장력(tension)과 간격은 매우 중요하다. 위키피디아 백과의 정의에 따르면 장력은 압력과 반대되는 말이다. 물체의 면이나 선을 수직 방향으로 양쪽에서 잡아 당기는 힘이다.
시간 당 수 만 부를 찍어내는 윤전기의 경우 적정한 장력이 유지되지 않을 경우 종이가 끊어져 인쇄가 중단되고, 제 시간에 신문을 찍어낼 수가 없다.
적정한 장력을 유지하려면 종이에 포함된 함수율(含水率)이 적정해야 할 뿐만 아니라 인쇄현장의 온 ․ 습도도 적정하게 유지돼야 한다. 8페이지를 인쇄할 수 있는 각 프레스(윤전기 공정 단위)에서 신문 형태로 각 면이 세팅된 홀더(holder)부의 삼각판까지 적정한 장력과 간격은 반드시 유지돼야 한다. 
하긴 장력과 간격은 종이뿐만 아니라 각종 인쇄 장비에도 해당된다. 윤전인쇄에 반드시 수반되는 각종 롤러는 물론, 수많은 종류의 베어링이 한치의 오차도 없이 톱니바퀴 굴러가듯 적정한 간격을 유지하고 있어야 한다. 이 모든 장력과 간격이 적절할 때 비로소 신문인쇄가 원활한 속도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인간의 삶도 마찬가지다. 인간은 홀로 살수 없는 사회적 동물이며 정치적 동물이다.
나와 가족, 나와 너, 나와 사회, 나와 정치 등 수많은 동심원 관계와 네트워크 속에서 개인적 사회적 삶을 영위할 수 밖에 없는 것이 대부분 인간의 삶이다.
불가근불가원(不可近不可遠)이란 말도 실은 장력(tension)과 간격의 다른 말이 아닌가 생각된다.

필연적으로 사회적 정치적 삶을 살아가는 인간에게 적정한 간격 유지는 각자의 소중한 자존감을 지키는 필수불가결한 요소다. 이는 사회 공동체나 국가 차원으로도 확장될 수 있다.
정당이나 시민사회단체, 정부 등 조직을 이루는 어느 곳이든 균형잡힌 긴장감 없이 한쪽으로 쏠리거나 느슨해지면 그 끝은 파국으로 귀결되고 만다.
최순실 등의 국정 농단으로 몰락한 박근혜 정권의 말로도 그 반면교사의 하나다. 공(公)과 사(私), 갑(甲)과 을(乙), 남(男)과 여(女) 등 인간사회를 이루는 골격들이 공정하고 적정한 장력과 간격을 적정하게 유지하지 못할 때, 어떤 결과를 초래했는지 잘 보여주는 역사의 한 페이지라고 하겠다.
 
문재인 정부 3년차 접어들면서 특히 한반도 평화정책과 소득주도성장을 둘러싼 사회적 갈등이 고조되고 있다. 언론은 연일 갈등을 증폭시키고 확산시키는데 여념이 없다. 각 정파들도 자신들의 생존과 기득권 유지를 가장 높은 선상에 놓고, ‘제 논에 물 대기’식 프로파간다를 남발하며 이전투구를 벌이고 있다.
조직이 있는 곳에 늘 갈등은 존재하게 마련이다. 문제는 이를 해결하려는 지혜와 적절한 분별, 인내가 뒷받침된 노력이 외면 받는 데 있다. 그렇다보니 자극적이고 극단적인 구호, 증오와 적개심만이 난무할 뿐이다. 상대를 쓰러뜨려야만 자신들의 기득권을 온전히 보존할 수 있다는 그악스러운 탐욕만이 교차한다.
이는 결국 ‘모 아니면 도’를 방불케하는 전투적 공방과, 상대를 원천적으로 봉쇄하는 적과 적의 대치로 이어진다. 그럴수록 정치는 더욱 파편화되고, 사회적 통합은 요원해지며, 사실상 우리 안의 ‘분단’으로 치닫는다. 마치 적정한 간격과 장력을 유지하지 못해 종이가 끊어지는 ‘지절’(紙切) 현상과도 같다고 할까.

간격과 장력은 개인의 삶이나 사회를 견고하게 유지시켜 주는 최소한의 룰이다. 정치 ․ 사회적 단절을 막고 공동체적 균열을 방지하는 모티브가 될 수도 있다. 시간 당 수만, 수십만 부의 신문 인쇄가 적절한 간격과 최적의 장력이 있을 때 가능한 것과도 같다. 
사람과 세상의 이치는 신문 인쇄의 원리와 그렇게 닮은 구석이 있다.

김건주(서울신문 제작국장)

김건주(서울신문 제작국장)
김건주(서울신문 제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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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註 : <애플경제>는 경제·산업 각 분야 전문인과 중견 인사들의 기고를 통해 삶과 일터 현장에서 갖는 단상(斷想)이나 소회를 매주 두 차례씩 전해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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