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ㆍ칼럼니스트.
시인ㆍ칼럼니스트.

이틀 뒤면 설날 연휴가 시작된다. 나도 선친이 생존해 계셨던 20년 전 이맘때쯤엔 귀성(歸省)을 앞둔 설렘에 들뜨곤 했다. 명절은, 삭막하고 외로운 서울생활을 잠시 벗어나 가족과 친지의 따뜻한 품에 안길 수 있는 유일한 기회였다. 그런데, 선친이 홀연 세상을 떠나시자 그 슬픔과 허전함을 미처 달랠 겨를도 없이 장손의 의무로 집안 제사를 서울로 모셔 와야 했다.

그로부터 지금까지 나는 조상의 기일이나 명절이 돌아오면 객지에서의 ‘조상 모시기’에 정성을 기울이고 있다. 그러나, 선친이 생존해 계실 때, 제사의 여러 절차를 눈 여겨 보아 왔건만 막상 주재(主宰)하는 입장이 되었을 때에는, 혹시 실수를 범하지나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 일곤 했다. 따라서, 어느 정도 기본 격식은 알고 있었으나, 혹시 절차에 어떤 잘못이 있는 건 아닌지 살피기 위해 제사와 관련된 각종 서적을 찾아 꼼꼼히 읽으며 의문이 나는 점은 집안 친척이나 주위 어른들께 자문을 구하기도 했다. 

그런데 파고들면 들수록 흥미로웠던 점은, 제사의 절차와 진설(陳設:제사 상차림)이 우선 각 지방이나 가문(家門)에 따라 서로 차이가 난다는 것이었다. 물론 지역적 특색이나 정서에 따라 풍습이 서로 다르다는 점에서는 이해가 가지만, 어떤 특정한 절차만이 정석이라고 고집하기에는 무리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결국 조상을 잘 섬긴다는 것은 여러 절차도 중요하지만, 얼마나 몸과 마음을 깨끗하고 올바르게 갖고서 임하느냐가 더 중요한 점이라는 뒤늦은 깨달음(?)을 얻게 된 것이다.

설날은 한해가 시작되는 음력 정월 초하룻날로 원단(元鍛)·세수(歲首)·원일(元日)·신원(新元)·정초(正初)라고도 부른다. 설이라는 말은 ‘사린다’, ‘사간다’에서 온 말로 ‘조심한다’는 뜻이라고 한다. 또 ‘섧다’는 말로 ‘슬프다’는 뜻이라고도 한다. 설이란 그저 기쁜 날이라기보다 한 해가 시작된다는 뜻에서 모든 일에 조심스럽게 첫발을 내딛는 매우 뜻 깊은 명절로 여겨져 왔다.

설날 아침 이른 시간, 각 가정에서는 대청마루 또는 거실이나 큰방에서 차례를 지내는데, 차례 상 뒤에는 병풍을 둘러치고 상에는 설음식[세찬·歲饌]을 갖추어 놓는다. 조상의 신주(神主), 곧 지방(紙榜)은 병풍에 붙이거나 위패일 경우에는 차례 상 위에 세워 놓고 차례를 지낸다. 차례 상을 차리는 방법은 가가례(家家禮)라 하여 지방이나 가문에 따라 다른데, 대체로 앞 첫째 줄에는 과일을 놓는다.

이때 붉은 과일은 동쪽에 흰 과일은 서쪽에 놓는다. 이른바 홍동백서(紅東白西)다. 둘째 줄에는 채(菜)나 나물류를 놓는데, 포(脯)는 왼편에 식혜는 오른편에 놓고, 셋째 줄에는 탕(湯)을 놓는데, 어탕(魚湯)은 동쪽에 육탕(肉湯)은 서쪽에 소탕(蔬湯)은 가운데에 놓는다. 넷째 줄에는 적(炙:불에 굽 거나 찐 것)과 전(煎:기름에 튀긴 것)을 벌여 놓는데, 생선은 동쪽에, 육류는 서쪽에 놓는다. 이때 생선의 머리는 동쪽으로, 꼬리는 서쪽으로 향하게 한다. 다섯째 줄에는 밥(메)과 국(갱·羹)을 놓는데, 밥은 왼쪽, 국은 오른쪽, 또 떡은 오른쪽, 면(麵)은 왼쪽에 놓는다. 설날에는 밥 대신에 떡국을 올린다.

차례를 지낸 뒤에는 조부모·부모에게 세배(歲拜)를 드리고, 차례를 지낸 설음식으로 아침식사를 한 뒤 일가친척과 이웃 어른들을 찾아가 세배를 드린다. 설날은 우리 민족 최대의 명절이다. 본디 설날은 조상 숭배와 효(孝) 사상에 기반을 두고 있는데, 먼저 간 조상신과 자손이 함께 하는 아주 신성한 시간이라는 의미를 지닌다.

그러나 대부분이 도시생활과 산업사회라는 굴레 속에서 생활하고 있는 지금에 와서 설날은 또 다른 의미를 지니는데, 곧 도시생활과 산업사회에서 오는 긴장감과 강박감에서 일시적으로나마 벗어날 수 있는 시기라는 것이다. 이번 설날도 평소 흩어져 있던 가족들이 한곳에 모여 서로 ‘덕담’을 주고받으며, 한해의 건강과 행운을 기원하는 즐거운 시간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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