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절만 다가오면 차례상을 혼자서 차리는 A씨..
A씨는 가부장적인 집안, 종가집 같은 분위기에 맏며느리로 시집온 결혼 40년차 배테랑 주부이다. 시부모님이 살아계실때만 해도 10시간이 넘게 걸리는 거리를 매년 꼬박꼬박 다녀왔다. 새벽에 도착을 해도 시어머니의 새벽부터 밥하라는 소리를 들으며 명절을 보내왔다.
맏며느리이지만 후에 동서 2명이 생기면서 조금의 힘을 얻었지만 그 마저도 얼마 가질 못했다. 거리가 멀고 자영업을 하는 동서네 부부는 명절때 오지를 못했다. 그 밑에 동서네만 왔지만 그래도 맏며느리의 역할은 줄어들질 않았다.
1년에 명절 두 번, 시제 한 번, 벌초 한 번 등 집안에 행사는 정말 많았다. 또 방학마다 자식들을 데리고 농사일을 하시던 시부모님의 일손을 도와 주러도 주구장창 다녔다. 그 사이 친정은 점점 멀어져가고 전화로만 인사 하는게 전부였다. 옛날 사람들은 전부 그렇게 살았다고 한다. 딸이 시집을 가면 출가외인이라고... A씨도 친정을 가고 싶었지만 시어머니의 잔소리에 가고자 할 엄두를 못내고 남편만 원망할 뿐이었다.
한 마을에 정착한 친척들이 모여 사는 종가집 같은 분위기, 점점 갈수록 밑에 동서들이 늘어나고 어느정도 위치에 오르자 시부모님이 돌아가셨다. 시부모님이 돌아가시고 제사를 갖고 오면서 명절도 맏며느리 집에서 보내게 됐다. 
오고 가고 하는 힘듬은 없었지만 그래도 하는 일은 해가 갈수록 줄어들지 않았다. 그 사이 막내동서는 집안 사정으로 이혼을 하고, 둘째 동서는 남편하고 사이가 좋지 않은지 연락이 끈키고 오질 않았다. 어느 집안이든 조용한 집안은 없다고 하지만 A씨네 집도 많이 복잡한 상황속에 빠졌다.
결국 명절을 보내는 인원은 A씨네 가족 4명, 작은집 동서 빼고 3명, 막내 동서 빼고 3명 총 10명내외였다. 
A씨는 남편이 원망스러웠다. 힘든 명절을 보내는데 명절 일하는 사람은 A씨와 딸, 아들 셋뿐이었고 친척들은 명절 전날 저녁때나 되야 도착했다. 그 사이 딸, 아들과 함께 음식을 준비했다. 힘든 명절을 보내기 싫어 다른 방법도 알아봤다. 친척들이 오면 제일 걱정스러운 명절 전날 저녁을 해결하기 위해 외식도 해보고 배달음식도 시켜봤지만 꾸준히 해왔던 명절과 비교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결국 반찬들도 전부 만들고 모든 음식을 집 안에서 해결해야 했다.
제삿날도 A씨에게 너무 힘들었다. 평일 하루만에 모든걸 준비해야 하는것이 힘들기에 명절음식 중 가장 손이 많이 가는 전을 사서 제삿상에 올려도 보았지만 성에 차지 않았다. 이래도 보고 저래도 봤지만 결국 자식들과 모든 음식을 준비하게 되는 상황으로 되돌아왔다.
그런 A씨가 이제 며느리를 보았다. 가족이 한명 늘어난 것에 주위에서 축하와 명절 분위기가 또 한층 업그레이드 될 것 같다는 의견들이 많았다. 
하지만 A씨의 반응은 달랐다. 며느리가 온 첫 명절날, A씨는 아무것도 시키지 않았다. 며느리가 명절동안 한 것이라곤 설거지 한 번뿐, 좌불안석 모습인 며느리에 아들한테 데리고 어디 나갔다 오라는 신호까지 줬다. 
아들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많은 일을 서로 나눠서 분담하면 더 금방 끝날수 있을텐데 왜 혼자 다 하려고 하는지...
며느리도 어머님이 나를 싫어하나 라는 오해를 가질 만큼 민망했다. 명절 아침 차례를 지내고 세배를 마치자 얼른 가서 쉬어라는 말과 고생했다는 격려, 며느리는 집에 오면서 남편에게 불편한 심정을 얘기했다. 아들도 불편한 느낌을 받았었다고 왜그러는지 이해가 안갔다고 했다.
집에 온 아들은 살짝 혼자 나가서 어머니께 전화를 드렸다. "우리 와이프 싫어하는것도 아닌데 왜그러셨어요"...
어머니는 아들에게 "이쁜 며느리이기 전에 한 집에 이쁜 딸이었다. 엄마는 명절을 물려주고 싶은 마음이 없어.. 제사는 너네 마음이겠지만 명절은 어디 놀러다니고 그래"라고 말했다.
아들은 "엄마가 지금까지 40년을 고생했는데 다 나눠서 일하면 얼마나 좋아"라고 하자 "힘든건 엄마 혼자면 충분해"라고 말했다. 답답한 심정에 여러번 하소연을 했지만 어머니에게 돌아오는 말은 똑같았다.
하지만 다음날 아들은 누나에게 들은 말을 듣고 가슴이 너무 아팠다. 누나가 어머니께 "왜 혼자 다하려고 그랬어?"라고 묻자 어머니는 "엄마도 힘든데 왜 안시키고 싶었겠니 하지만 애들이 앞으로 살아갈 날이 더 많은데 벌써부터 고생시키고 싶지 않았어 너도 엄마 나이되고 니 딸이 시집가서 일한다고 생각해봐. 마음이 어떤지. 엄마가 잘 한거라고 생각해 엄마도 며느리 있는 첫 명절인데 외할머니가 보고 싶구나"라고 말했다.
그 얘기를 들은 아들은 한동안 아무 말도 못할 만큼 가슴이 답답하고 먹먹했다. 엄마도 엄마가 보고 싶을 때가 있구나.. 라고 생각하면서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근심이 깊어지는 설 연휴였다. 
점차 사회적 분위기가 변화되고 있다. 이제 어른과 자식들이 함께 모두 고민을 해야 할 때가 아닐까

이상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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