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12월 11일 새벽, 스물 네 살 꽃다운 나이에 세상을 떠난 태안화력발전소 하청업체 비정규직 청년노동자 김용균씨. 그는 젊은 ‘프레카리아트’였다.
인공지능(AI) 기술 등 첨단 정보·과학기술이 가져올 4차 산업혁명시대의 모습은 언뜻 찬란해 보인다. 그러나 찬찬히 들여다보면 그 저편의 어두운 그늘 또한 작지 않다. 여러 부작용과 후유증 등 우울한 전망들이 나오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심각하게 다가오는 것은 사람의 일자리가 빼앗기고 있다는 사실이다. 

세계화와 신자유주의가 낳은 ‘새로운’ 노동계급

세계경제포럼(WEF)은 2018년 보고서에서, 오는 2022년에는 ‘정보 및 데이터 가공’의 경우 기계의 근무 비중이 47%에서 62%까지 늘어나고 ‘정보 검색 및 획득’은 36%에서 55%로 늘어날 것으로 분석했다. 미래학자 토마스 프레이는 2030년에는 전 세계에서 20억 명의 일자리가 사라질 것으로 예상한다. 많은 미래학자와 경제학자들은 사람들이 첨단 정보·과학기술에게 일자리를 빼앗기게 되면서 불안정한 노동계급 즉 ‘프레카리아트’가 양산될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프레카리아트(Precariat)는 ‘불안정한(precario)’이라는 뜻을 지닌 이탈리아어와 노동자를 뜻하는 ‘프롤레타리아트(proletariat)’를 합쳐 만들어진 신조어이다. 이탈리아의 메이데이 행사 등에서 처음 등장했다고도 하고 1980년대 프랑스 사회학자들이 처음 사용했다고도 하는데, 영국의 노동경제학자 가이 스탠딩의 저서 『프레카리아트: 새로운 위험한 계급』이 주목을 받으면서 뜨거운 용어로 부상하였다.

‘프레카리아트’란 고용·노동 상황이 불안정하고 저임금이며 사회보장제도에서도 배제되는 노동자 집단을 가리키는 말이다. 학자들은 프레카리아트가 등장하게 된 원인을 신자유주의가 주창하는 노동시장의 유연성에서 찾는다. 그들은 노동조합을 통해 종신고용과 사회보험이 보장됐던 전통적 의미의 노동자 계급과는 다른 ‘새로운’ 계급이다. 사회안전망이 갖춰지지 않은 상황에서 신분이 불안정한 비정규직 노동자와 수요가 있을 때만 일하는 계약직 노동자는 안정적인 삶을 살기 어렵다. 또한 그들은 소외감이나 박탈감으로 인한 증오심 등에 휩싸이기 쉽기 때문에 사회불안의 요인이 될 수 있고, 무엇보다 이들의 불확실성과 불안정성이 현 세대에 그치지 않고 다음 세대까지 이어지면서 일종의 계급으로 굳어지고 있어 심각성이 크다는 것이다. 그 앞에 ‘위험한’이란 수식어가 붙는 이유이다. 

프레카리아트 양산 막을 지혜가 필요하다

스탠딩은 일자리 나누기와 보편적 복지를 실행하는 기본소득제를 프레카리아트 양산을 막을 하나의 방안으로 제시한다. 또 ‘로봇세’의 도입을 촉구하는 목소리도 있다. 빌 게이츠는 공장에서 일하는 노동자가 각종 세금을 내듯이 노동자의 일을 대신한 로봇에게도 과세를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유럽의회도 2016년 5월부터 로봇세 도입 논의를 시작하였다. 아직 로봇세를 도입하지는 않았지만, 로봇에게 언젠가 세금을 매길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해 놓았다. 

인류가 가장 성공적인 경제체제로 믿어왔던 자본주의 시스템을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크다. 그런데 2019 스위스 다보스포럼의 주제는 '세계화 4.0'이었다고 한다. '세계화'가 글로벌 정치·경제의 불확실성과 국가적 갈등을 봉합하는 해법이라는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그들은 또 다시 ‘세계화’를 불러냈다. 또 인공지능과 같은 최첨단기술과 플랫폼을 독점한 기업과 개인이 국민들의 견제와 감시를 받을 수 있는 정치사회 체제를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우리나라에서도 이 문제는 발등의 불이다. 전문가들은 정부와 기업이 적극 협력해서 사회안전망과 인재육성 정책의 개혁, 고용보험 확대와 실업부조 도입, 직업훈련제도 전면개편 등을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고용노동법제 전반에 대한 변화를 함께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도 말한다.  

미래사회가 어떻게 펼쳐질 것인지 아무도 정확히 모른다. 다만 많은 선각자들이 예측하고 있듯이 지금 이대로 둔다면 인류사회의 불평등과 양극화는 더욱 심해질 것이므로, 지구촌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해 모두가 지혜를 모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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