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의 시선으로 본 제4차산업혁명-기술과 민주주의(1)

현대는 공인된 전문가들의 판단이 우월하다는 믿음이 지배한다. 특히 과학기술 분야에선 과학자의 ‘자기통치(self-government)’라는 말이 나올 만큼, 그들만의 배타적 영역이 통용되고 있다. 그러나 이에 대한 시민사회나 대중의 반감도 만만찮다. 더욱이 디지털 기술만능의 불평등 사회를 예감하게 하는 지금, 그런 기류가 노골화되면서 과학기술과 민주주의라는 담론이 새삼 선명해지고 있다. ‘플랫폼 제국주의’나, 네트워크 참여자들에 대한 애그리게이터의 수탈적 구도, 혹은 기술장벽에 가로막힌 다수의 낙오자 등에 대한 우려도 그로부터 나온다. 결국 이는 과학기술의 배분적 가치 혹은 기술 생산 과정의 대중적 참여, 즉 기술과 민주주의에 대한 치열한 논쟁으로 이어지고 있다. 

이런 논쟁은 20세기 초반부터 있어왔다. 물리학자 마이클 폴라니는 “오직 전문가들만이 과학의 궤적에 관해 결정을 내릴 능력이 있고, ‘대중의 의지’는 그러한 숙의 과정에서 전혀 기여할 수 없다”며, 과학자들만의 ‘왕국’에 손을 들었다. 그는 모든 기술과 아이디어는 사회로부터 독립된 과학자의 고독한 연구와 실험에 의해서만 가능하다고 했다. 그러나 또 다른 과학자 존 버널은 전혀 상반된 주장을 폈다. “과학은 오로지 사회 발전을 위한 것이어야 하고, 사람들의 삶에 혜택을 줄 수 있어야 한다”면서 공동체적 감시와 참여를 강조했다. 폴라니 같은 순수과학론자들을 ‘엘리트주의적 위선자’로 몰아세우기까지 했다.

현재도 이들 두 사람의 논리를 각자 지지하는, 두 가지 부류로 세계 과학계는 나뉘어져 있다. 그렇다면 디지털기술혁명이 진행 중인 이 즈음엔 어떨까. 이 시기는 물리학과 디지털의 경계를 넘어 가상과 현실이 혼재된 기술지상주의가 판치고, 그 와중에 기술에 의한 인간소외가 극심해질 조짐이다. 아무래도 폴라니보다는 버널의 외침이 좀 더 울림을 선사하는 분위기다. 물론 순수 기술적 문제는 과학자들의 몫이라는데엔 모든 당사자들이 동의한다. 그러나 정부의 연구비 우선 순위 결정이나 프로그램 선택 과정 등 일부 의사 결정과 실천 방식에 시민사회가 관여하는 경향도 두드러지고 있다. 더욱이 기술만능이 민주적 사회의 기조를 파괴할 것이란 우려까지 더하면서 더욱 그렇다.

그런 가운데 1990년대 미국 시민사회 일각에서 등장한 ‘대중역학’(popular epidemiology)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는 과학기술의 엘리트화가 아닌 대중적 공유를 지향한다는 점에서 미래 기술사회에 또 다른 방법론적 키워드를 암시하고 있다. 즉 “일반인들이 (주체가 되어) 질병 등 과학을 이해하기 위해 과학적 정보를 수집하고, 전문가들의 지식과 자원을 총괄하고 동원하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과학자들에 대해선 일반인 그들만의 익숙한 환경, 그 바깥에 있는 외부인들로 간주한다. 익숙한 주변 환경에 대한 정보는 과학자보다 그들이 더 잘 안다는 가정하에 먼저 파악하고 분석한다. 그 결과 어떤 현상이나 질병의 원인과 치유에 대한 가설을 나름대로 확립하는 방식이다.

‘대중역학’은 디지털기술 문명과도 접목할 수 있다. 이에 따르면 유전공학이나 합성물리학, 사물인터넷, 블록체인 구축과 공유 등의 과정에서 참여자들은 데이터 제공자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대신에 특정 애그리게이터의 독점을 견제하면서, ‘정보를 수집하고, 전문가들의 지식과 자원을 총괄하고 동원하는’ 프로세서(processor)로 작동하는 방식이다. 즉 참여자들이 가설 수립, 연구 설계, 데이터 수집, 데이터 분석에 관여하는 것이다. 이는 “기술적(전문적)인 것과 비기술적(비전문적)인 것 사이의 불가침의 경계가 있다”는 관념 자체에 도전했던 ‘대중역학’ 정신과도 맥이 닿는다. 그런 점에서 대중적 기술에 의한, 대중을 위한 기술민주주의로 나아가는 작은 ‘힌트’라고 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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