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공정경제’(4)

공정하지 못한 시장에선 선하고 정직한 의지만으로는 자칫 손해보기 십상이다. 부정직하지만 수완좋고 꾀많은 판매자, 혹은 거래 상대방에 의해 속아 넘어가곤 한다. 일상생활의 단면에서도 이런 경우는 비일비재하다. 보험사기 탓에 정직하고 착한 보험 가입자들의 부담이 늘어나는 것도 그렇고, 같은 의료보험 가입자로서 건강한 사람보다 병약한 사람이 결과적으로 훨씬 혜택을 많이 입는 현상도 그런 경우다. 이른바 ‘레몬시장’의 법칙이며, 우리 말로 겉만 번지르르한 ‘빛좋은 개살구’가 판치는 형국이다. 결과적으론 경제원칙에 어긋나는 ‘역선택’(adverse selection)이며, 전형적인 도덕적 해이다.

이를 기업과 산업으로 확장해보면 더욱 가관이다. 재벌 기업이 계열사를 통해 쉽게 돈과 시장을 지원받으며 출발선에서부터 앞서 가는 건 이미 상식이 되었고, 그 와중에 고만고만한 중소기업이나 자영업자는 배겨날 도리가 없다. 어렵사리 시장에 뛰어든다 해도 만년 하도급 거래의 ‘을’이 되기 십상이다. 납품 과정에서 원래 주기로 한 물건값을 일방적으로 깎이기도 하고, 그나마 제때 받지 못해 애를 태우기도 한다. 대기업인 ‘갑’은 ‘을’이 자기 이외의 다른 거래처와 거래를 못하게 원천봉쇄하기도 하고, ‘벼룩의 간’을 빼먹듯이 기술과 노하우를 무단으로 빼가기도 한다. 정상적인 제품을 품질 불량이라고 우기며 반품하는 건 다반사다.

애초 시장이란 파는 사람, 사는 사람이 다수일 때 생겨난다. 이때 시장의 건강한 혈맥은 바로 공정경쟁의 원리다. 사전적으로는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거나 편파적이지 않고, 2명 이상이 내린 결과물에 대한 평가와, 그들이 제공한 가치가 일치될 때’ 공정한 경쟁이 이뤄진다고 했다. 쉽게 말해 공급자와 소비자, 또는 공급자 상호 간에 편파적이지 않으면서 시장에 기여한 만큼 보상을 받는 것이 공정경쟁이자 공정경제다. 이는 헌법과 법률에서도 분명하게 적시되고 있다. 헌법 전문은 ‘기회균등’을 국가의 최고 이념으로 선언하며, 그 내포된 의미를 통해 공정경쟁의 원리와 정신을 표방하고 있다. 이는 곧 자유와 창의, 즉 ‘기업가’ 정신의 기반이 되는 선언이다. ‘장사꾼’이 아닌 ‘기업가’로서 갖춰야 할 필요․충분조건을 헌법은 그렇게 전문에서부터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공정거래법 제1조는 더욱 명확하다. 법 제1조는 “공정하고 자유로운 경쟁을 촉진함으로써 창의적인 기업 활동을 조장하고,~”라고 명시하며, ‘공정한 경쟁’이 창의적인 기업 활동을 촉진할 것임을 분명히 하고 있다. 헌법에선 암묵적 언급에 그쳤던 공정경쟁과 창의의 관계를 명시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그렇다면 기업은 자본, 인력, 기술, 브랜드, 노하우, 네트워크 등의 주요 자원을 경쟁자와 동일 조건으로 준비하고, 축적하여 경쟁에 참여하는게 마땅하다. 어느 누구도 불공정한 우위를 점하거나, 폭력적이고 약탈적인 상술이나 ‘꼼수’를 쓰지 말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악화(惡貨)가 양화(良貨)를 구축한다’고 할까. 500년 전 중상주의의 모순을 개탄했던 그레샴의 법칙은 21C 경제 생태계에서도 여전히 회자되고 있다. 작동 방식만 다를 뿐 오히려 그 양상이 더욱 그악스러진 탓에, 이젠 ‘부정직이 정직을 구축’하는 신(新)그레샴의 법칙이 통하는 세상이 되었다. 장터 자릿세 뜯어내는 조폭 경제나, 통행료를 갈취하는 ‘톨게이트 경제’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는 현실이다. 이런 부정직과 불공정함은 정직과 공정함의 여지를 좁게 만든다는데 그치지 않는다. 소비자들과 시장 공동체의 효용을 총체적으로 갉아먹고, 시장으로 작동되는 자본주의를 뿌리채 병들게 한다. 나아가선 폭력과 불공정에 의해 삶의 조건을 약탈당한다는 점에서 기본권 수호의 문제로 비약되며, 국가의 기본질서 내지 민주주의라는 헌법 가치에 정면 도전하는 행위로 지목된다.

박경만 한서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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