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의 시선으로 본 제4차산업혁명-기술과 민주주의(2)

박경만 한서대학교 교수.
박경만 한서대학교 교수.

한때 무료 서비스만으론 더 이상 수익을 올릴 수 없게 되자, 많은 닷컴들이 정보 유료화를 시도한 적이 많았다. 하지만 그들 대부분은 실패할 수 밖에 없었다. 소비자들이 그 정보들을 해석하고 활용하여 또 다른 이익을 생산한다면 모를까, 그렇지 않는 한 소유가치가 없는 정보들을 구매할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여기서 네트워크상의 생산자로서 정보를 해석하고 이를 재료로 가치를 재생산하는 능력과 마인드의 문제가 제기된다. 장래 디지털 시장에선 산업사회와는 달리 완성품으로서 상품의 소유가치는 날로 희박해진다. 대신에 정보와 지식, 기호 등 유동적인 미완의 하이퍼 상품(hyperproduct)들이 끊임없이 해석되고, 피드백되며 새로운 부가가치를 덧입으며 유통된다. 

디지털 세상의 그런 모습은 미래의 디지털스페이스가 갖는 탈 ‘모순율’의 질서와도 맞닿는다. 첨단의 디지털화로 전달 속도가 광속 수준에 도달하면, 디지털 스페이스는 이른바 ‘즉시성’과 ‘동시성’이라는 모순된 질서를 내포하게 된다. 쉽게 말해서 마법이라도 쓰듯, 눈 깜짝할 새 순간 이동을 하고 물리적 공간을 뛰어넘는, 탈장소화(deplacement), 탈공간 현상이 일어나는 것이다. 하나의 사이트가 수만 명 사용자의 동시 접속을 허용하고, 반대로 한 사용자가 동시에 다른 여러 사이트에 접속할 수도 있게 된다. 무수한 지점이 동시에 한 존재자에 의해 점유될 수 있고, 거꾸로 하나의 지점이 무수한 존재에 의해 점유되기도 하는 것이다. 디지털 혁명이 극성기에 달하면 그런 초월적 모순은 현실의 질서가 된다.

이는 인간의 논리적 사유체계가 근본적으로 의존해온 모순율을 위반하는 현상이다. 특정 공간의 동일성과 타자성이 소멸되고, 형식 논리상으로 용납될 수 없는 공상만화같은 상황이 용납되는 것이다. 그런 공간의 참여자 혹은 존재자들은 모순율을 위반한 ‘탈장소적’ 질서 속에서 접속과 탈속의 불규칙한 순환을 계속하며, 네트워크상에서 끊임없이 새로운 의미를 증식, 파생시킨다. 현실은 현실이되, 동시성, 타자성이 마구 뒤섞인, 이른바 ‘혼합현실’이 된다. 이런 혼합현실의 디지털 세상에선 하나의 공간은 동질의 공간으로 머무르지 않고, 늘 새로운 차원의 공간으로 전환되며, 정보와 의미의 도발적 생산, 즉 변곡이 끝없이 이어진다. 

이때 중요한 것은 그것의 해석, 생산의 주체가 누구냐 하는 것이다. 당연히 디지털 공간이 끊임없이 토해내는 의미, 즉 지식과 기호, 정보를 해석하고 재생산하는 해석자가 주인이다. 그 해석자는 당연히 불특정한 최대 다수의 대중의 몫이 되어야 할 것이다. 공간에 대한 해석을 소수가 독점하지 않도록 다수 시민이 능동적인 해석자로서 개입하며, 새로운 정보와 새로운 의미를 파생시키면서 네트워크를 작동시키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인간은 이제 더 이상 공간 속에 정해진 위치를 부여받고, 그곳에서 사용되는 도구가 아니다. 새로운 공간을 출현시키고, 새로운 의미를 해석하고, 재생산하는 주역이다. 

특히 이런 혼합현실에서의 실존 방식은 자아의 정체성을 구현하는 것만으론 부족하다. 그 보다 층위가 높은 타자와의 소통, 그리고 그로 인한 라이프 스타일의 변화까지 유발하는 것이어야 한다. 기술만능을 극복한 민주적 이타주의가 널리 유포되는 길이기도 하다. 해석자 ‘시티즌’에 의해 다수의 공리적 플랫폼을 구축할 수 있고, 가치있는 시민사회를 설계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 디지털 혁명을 기술자본주의의 비즈니스 수단으로 전락시키지 않을 수도 있다. 다만 전제가 있다. 이 모든 것은 시민이 디지털 세상의 능동적 해석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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