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혁거 부동산 대기자.

국토교통부가 314일 전국 1339만가구의 공동주택에 대한 공시예정가격을 발표했다. 전국 평균으로는 지난해보다 소폭 오른 5.32%의 상승률을 보였다. 국토교통부는 시세 12억원을 넘는 고가주택 중 시세와의 격차가 큰 주택을 중심으로 공시가격의 현실화율을 개선했다고 밝혔다. 그 비율도 전체 대상주택의 2% 정도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이번 공시예정가 발표에서 경기 과천이 23.41%로 상승률이 가장 높았다. 서울도 14.17%로 전국 평균보다 2배 이상 높았으며, 최근 집값이 많이 오른 용산, 마포 등이 상승을 이끌었다. 반면 울산, 경남, 충북, 경북, 부산 등 10개 시·도는 공시가격이 오히려 하락했다. 오른 곳 중에서도 전국 평균보다 높게 오른 곳은 서울과 광주·대구 등 3개 시도에 불과했다.

국토부의 이번 공동주택 공시예정가격 발표를 두고 이른바 핀셋인상이라고 일컫는다. 지역별·규모별 맞춤형 조정이라는 의미다. 국토부에서는 고가주택 2%를 제외한 나머지 98%의 주택은 인상률이 낮아 큰 부담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공시가격의 현실화율도 단독주택 등의 공시가격인 68% 수준에 맞췄다는 게 국토부의 설명이다.

그러나 실제 발표된 공시예정가격의 내용을 보면 국토부의 설명과는 다른 부분들이 적지 않게 나타난다. 겉으로만 보면 국토부의 설명처럼 고가주택에 대한 보유세금이 높아지고 서민이나 중산층의 세 부담은 크지 않을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공시가격에 대한 열람이 시작되면서 실제와는 다른 사례들이 적지 않게 나타나고 있다.

 

강남이나 서초·송파 등 이른바 강남4구는 워낙 공동주택 가격이 높은 탓도 있었겠지만, 상승률이 높지 않았던 반면, 노원이나 중랑 등 비강남권의 상승률이 높았다. 또한 고가가 대부분인 대형 아파트보다 중산층이 많이 사는 국민주택규모나 소형주택의 공시가격 상승률이 높았던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결국 서민들의 부담이 커진 셈이다.

서울 용산구에 있는 한 아파트의 경우 전용면적 기준 84.97의 올해 공시예정가격은 68500만원으로 지난해에 비해 32.75%나 올랐다. 그런데 같은 단지의 126.3의 공시가격은 68100만원이었다. 중형 평형의 공시가격이 대형 평형의 가격을 추월한 것이다. 그런데 실제 시세는 대형 평형이 거의 2억원 가까이 비싸다. 이는 이번 공시예정가격의 문제점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례이다.

이같은 사례는 곧 공시예정가격의 형평성에 대한 문제를 낳고 있다. 국토부의 설명대로라면 돈이 많은 사람들에게 그만큼 세금을 더 물리자는 것인데, 실제적으로 중산층이나 서민들의 공시가격 상승률이 더 높은 경우가 적지 않다. 물론 금액의 절대적인 측면에서는 고가주택에 대한 세금이 높지만, 부담의 측면에서는 중산층이나 서민들에게 더 큰 짐을 지우는 결과를 가져오고 있는 셈이다.

이번 공동주택 공시예정가격을 발표한 후 주민열람과정에서 각 지역마다 공시예정가격에 대한 다양한 불만이 표출되고 있다. 같은 아파트단지 내에 있는데도 공시가격이 다른가 하면 한 동 안에서도 다른 경우도 있다고 한다. 산정기준에 대한 문제가 제기되는 연유다. 단독주택 공시가격 발표 때 일부 감정평가사들에 의해 제기된, 정부에서 미리 방향을 정해놓고 그 방향으로 유도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을 다시 떠올리게 하는 대목이다.

또 정부에서는 일부 고가주택을 제외하고는 중산층이나 서민들에게는 별다른 영향이 없을 것이라고 밝혔지만, 앞서 언급한 것처럼 실상은 그렇지 못하다는 점이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서민들이 주로 사는 국민주택규모임에도 집값 상승률에 비해 공시가격 인상률이 두 배를 넘는 경우도 있는가 하면 고가주택보다 더 높은 인상률을 기록한 곳이 적지 않다.

 

일반적으로 조세의 기능은 공공재 조달을 위한 정부 재원의 확보, 부의 재분배, 그리고 경제안정 등으로 설명할 수 있다. 즉 세금을 거둬 국민의 생활에 필요한 각종 인프라를 건설하고, 저소득층을 위한 사회안전망을 확보하며, 경기가 이상(異常)적으로 움직이지 않도록 안정시키는 역할을 하게 되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부동산관련 조세의 경우 부동산경기의 조절을 위한 성격이 짙다. 참여정부때 도입된 종합부동산세가 대표적이다. 이는 부동산으로 인한 불로소득을 환수해 투기를 억제하겠다는 성격이 강했다. 당시 부동산 보유에 대한 세금을 강화하려면 재산세율을 높이면 되는 것이었음에도 종부세를 도입해 이른바 부자세에 대한 논란도 불러왔다.

이번 공시가격 인상 또한 부동산시장 안정의 측면에 상당한 무게가 실려 있는 듯하다. 공시가격 인상이 세금 인상과 연결되면서 조세의 성격을 띄게 된 셈이다. 결국은 보유세 인상과 같은 효과를 가져온다. 부동산시장에서는 최종 공시가격의 결정을 보고 움직이겠다는 수요가 적지 않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부동산 보유에 대한 우리나라의 세금은 선진국에 비해 낮은 것이 사실이다. 과거부터 보유세 인상이 계속 거론돼온 것도 바로 이때문이었다. 그렇지만 보유세가 낮은 대신 거래세는 다소 높았다. 이른바 투기억제를 위해 양도세를 중과한 것 등이 대표적인 사례다. 정부에서도 세제개편방향에서 보유세를 높이는 대신 거래세는 낮추겠다고 밝힌 바 있다.

최근의 부동산시장은 정부의 각종 규제로 인해 거래가 거의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일선 중개업소에 따르면 봄 이사철이 다가왔는데도 고작 한두개 정도의 물건만 나와 있다고 한다. 다주택자들은 집을 팔기보다 증여를 오히려 더 선호하는 듯한 현상도 나타나고 있다. 거래세보다 증여세가 더 현실적이라는 판단 때문이다.

소득이 있는 만큼 세금을 내야 하는 것은 당연하고 공시가격의 현실화 또한 필요하다. 다만 공시가격이 급격하게 오를 경우 서민들의 생활안정에 위협이 된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 이와함께 보유세가 오르는 만큼 거래세를 낮추어 부동산시장에 숨통을 틔어주는 것이 시장안정에 더욱 필요한 일임도 인식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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