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자 손톱 발톱에 선명하게 남겨진 범인의 매니큐어

언론 보도에서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것이 범죄 관련 사실을 전달하는 범죄(Crime) 기사입니다. 범죄 기사는 사회적 경각심을 불러와서 범죄 예방이나 정책 수립에도 기여합니다. 그러나 범죄 보도는 그 특성상 선정적이기 때문에 잘못 보도 되면 범죄와 관련된 사람들의 인격권이 침해되거나 또는 무죄추정원칙을 위반할 수 있습니다. 앞으로 애플경제는 범죄에 관한 기사만 따로 분석해서 기사화할 예정입니다. 속보성의 사건사고보다 장기미제사건이나 특이한 강력 범죄, 그리고 외국의 범죄 관련 기사도 폭 넓게 다룰 예정입니다. 애플이만의 예리한 분석과 해설, 'Crime' 섹션도 많이 기대해 주세요^^ [편집자 주]

 

 

사진=SBS 홈페이지 캡처
사진=SBS 홈페이지 캡처

 

 

2004년 세간을 떠들썩하게 만든 포천 여중생 살인사건의 제보자가 16년 만에 등장했다.

지난 3월 30일 방송된 SBS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는 장기 미제로 남아있던 포천 여중생 살인사건을 다시 추적했다. 이는 2004년 2월 경기도 포천시 도로변 인근 배수로의 지름 60㎝ 좁은 배수관 안에서 여중생의 변사체가 발견된 사건이다.

입구로부터 1.5m 안쪽에 알몸으로 웅크린 채 처참하게 발견된 시신은 석 달 전 실종된 여중생 엄모양이다. 엄마와 통화를 하며 집으로 오던 엄양은 흔적 없이 사라졌다. 이후 96일 만에 차가운 시신으로 발견됐다.

발견 당시 부패가 심했던 엄양의 시신 때문에 사망 시간과 사인을 특정할 수 없었다. 또 알몸으로 발견돼 성폭행 피해가 의심됐지만 정액반응 검사에서 음성반응이 나왔다. 눈에 띄는 외상이나 결박 흔적도 보이지 않아 수사에 난항을 겪었다.

현장에서 나온 유일한 단서는 죽은 엄양의 손톱과 발톱에 칠해져 있던 빨간 매니큐어뿐이었다. 심지어 범인은 엄양 손톱에 매니큐어를 칠한 뒤 그것을 깎기도 했다. 당시 부검의였던 김윤신 조선대 의대 교수는 “매니큐어가 칠해진 사건은 처음”이라며 “상당히 깔끔하게 발라져 있었다”고 말했다. 평소 엄양이 매니큐어를 바르지 않았다는 가족과 친구 진술에 따라 엄양이 숨진 후 범인이 칠한 것으로 추정됐다. 이 매니큐어가 범인이 남긴 유일하고도 뚜렷한 범행흔적이었다. 

엄양이 사라질 당시 낯선 흰색 차량을 목격했다는 제보가 있었고 경찰은 엄양이 이 차량에 납치됐을 가능성을 열어두고 대대적인 수사를 펼쳤지만 끝내 유력한 용의자를 특정하지 못했다. 결국 엄양의 사건은 장기 미제 사건으로 남았다.

그런데 지난 3월 ‘그것이 알고 싶다’에 한 통의 제보 전화가 걸려왔다. 전화를 건 당사자는 엄양과 이웃한 마을에 살던 한모씨였다. 한씨는 엄양이 실종되기 일주일 전 끔찍한 사건을 겪었다고 털어놨다.

당시 대학생이었던 한씨는 저녁 무렵 걸어서 귀가하던 중 낯선 흰색 차량이 다가와 동승을 권유했다고 했다. 한 차례 거절했지만 결국 동승하게 됐고 도착지에 다다라 내려달라고 하자 운전자는 문을 잠근 채 계속 운전했다. 달리는 차 문을 억지로 열고 죽음을 각오하고 탈출한 한씨는 운전자의 인상착의와 특징을 또렷이 기억하고 있었다.

 

사진=SBS 그것이 알고싶다 방송장면 캡처

 


“남자 손이 매우 하얗고 손톱이 깔끔했다. 꼭 투명 매니큐어를 칠한 것처럼”이라고 말했다. 한씨는 번호판을 봤지만 숫자가 하나도 기억나지 않는다고 했다. 이 사건을 겪은 뒤 일주일 뒤 ‘엄양을 찾는다’는 현수막을 보곤 ‘아 그 사람이구나’하고 생각했었다고 한 한씨는 범인이 잡히겠지 싶은 생각에 제보하지 않았다고 했다.

16년이 지난 후 한씨는 “아이 부모님을 생각하면 미안했다”며 “그분들께 마지막 어떤 중요한 단서를 줄 수 있다면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용기를 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제보하게 됐다”고 말했다.

경찰은 한씨의 설명에 따라 용의자의 몽타주를 그렸고 한씨는 이를 보고 “비슷하다”고 말했다. 한씨는 최면수사를 통해 차량번호가 “경기 735*”이라고 기억했다. 또 인근 공업사에서 나와 자신을 따라왔다는 기억도 떠올렸다.

제작진은 해당 공업사에 찾아가 한씨가 봤다고 한 차량번호가 2003년 당시 있었는지를 확인했다. 그러나 전산 기록이 2006년부터 남아 찾지 못했다. 다만 2006년 이후 공업사에 온 “경기 735*” 차량을 찾았다. 이는 인근에 사는 정모씨의 차량이었다.

정씨는 2003년 10월 해당 차량을 누가 몰았냐는 질문에 “아들이 끌다 엄마를 준 것 같다”고 말했다. 당시 아들은 20대였다. 이후 제작진은 정씨의 아들을 만났지만 아들은 직업상 해당 시간에 포천에 있을 수 없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한씨가 증언한 175㎝의 호리호리한 체격, 깔끔한 손 등의 몽타주 속 외모와 정씨 아들은 거리가 있어 보인다고 제작진은 전했다.


제작진은 제보자 한씨가 등장하면서 더 많은 제보가 오고 있다고 전했다. 이에 대해 경기북부경찰청 이재원 강력계장은 “미제사건이 된 것은 단서나 돌파구를 발견하지 못해서”라며 “어떤 제보라도 해주면 고맙다. 제보 하나하나가 우리에게 단서다. 연관성을 정확하게 추적할 것”이라고 밝혔다.
 

2004년 포천여중생 살인사건의 단 하나 유일한 단서는 매니큐어였다. 범행 일주일 전 사건발생 장소의 한 화장품 가게에서 남자가 매니큐어를 사간 것도 사건을 해결할 열쇠의 하나였다. '더 진한 것을 달라'고 했던 그 남자의 특이점이 피해자의 손과 발에 남겨진 선명하고 빨간 매니큐어와 오버랩됐다. 전형적인 성도착증 환자의 범죄라고도 볼 수 있다. 

안타까운 것은 장기미제 사건의 경우 언론이 발 벗고 나서서 단서를 찾아주지(?) 않는 이상, 경찰 스스로 그것을 해결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특히 이번 포천여중생살인사건도 '그것이알고싶다' 팀의 심층적인 탐문과 제보확인 작업이 없었다면 유사 사건을 당했던 제보자의 중요한 단서도 찾을 수 없었을 것이다. 경찰의 장기미제수사팀의 경우 과학적이고 체계적인 접근이 이뤄져야 한다. 언제까지 언론이 떠먹여주는 단서에 경찰의 장기미제사건 수사팀이 의존할 것인가?

 

김하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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