빗장 풀린 ‘예타’, 다시 노무현의 이름으로...
빗장 풀린 ‘예타’, 다시 노무현의 이름으로...
  • 성기노
  • 승인 2019.04.04 14: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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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대강보다 많은 24조 국책사업, 예타 면제 논란
지난 1월 29일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세종시 정부세종청사 기획재정부에서 예비타당성조사 면제 대상을 발표한 뒤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지난 1월 29일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세종시 정부세종청사 기획재정부에서 예비타당성조사 면제 대상을 발표한 뒤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예타가 뭐에요?

예타. 일반 국민들에게는 좀 생소한 경제용어입니다. 예비타당성조사의 준말입니다. 2019년 정부예산은 470조 5천억원에 이릅니다. 이 많은 돈을 공무원들이 제대로 쓰는 건지, 기분 내키는 대로 쓰는지, 국회가 심사와 감시를 하지만 한계가 있습니다. 예산 집행 전 단계부터 꼼꼼하게, 이게 쓸 돈인지, 아니면 선심성으로 쓰는 것인지, 전후좌우를 잘 살펴봐야 합니다. 예타는 “정부의 재정이 대규모로 투입되는 사업의 정책적·경제적 타당성을 사전에 면밀하게 검증·평가하는 제도”를 말합니다.

이렇게 좋은 제도, 예타는 왜, 언제 생긴 걸까요? 일단 예타의 탄생부터 살펴보도록 하죠. 예타는 올해로 20년 된 제도인데, 정부의 재정개혁 일환으로 도입됐습니다. 그 연원은 IMF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나라의 곳간이 바닥나면서 IMF에 돈을 빌려야 했던 그때, 정부는 곳곳에서 줄줄 새는 정부재정을 효율적으로 관리하지 않으면 또 치욕적인 외환위기가 올 수 있다고 보고 대대적인 점검에 들어갑니다. 그리고 외환위기 바로 이듬해인 1998년 초 ‘공공사업 효율화 추진단’을 꾸립니다. 대규모 예산이 투입되는 공공투자사업의 방만한 운영·관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기획예산위원회(현 기획재정부), 건설교통부(현 국토교통부) 등이 추진단의 주축이 돼 흥청망청 어디로 쓰이는지도 모르는 공공투자사업에 메스를 들이댔습니다.

사실 그때만 해도 공공투자사업은 썩을 대로 썩어 있었습니다. 예타 없이 각 부처별로 타당성조사만 이뤄지던 때였습니다. 그러다 보니 신청만 하면 일사천리로 SOC(사회간접자본) 사업이 통과됐습니다. 1994년부터 1998년까지 5년간 추진된 33건의 부처 타당성 조사 중 32건(97%)이 심사를 통과했다고 합니다. 물론 여기에는 힘깨나 쓰는 정치인들이 자신들의 연줄과 관련된 곳 위주로 사업을 진행했고, 지역간 균형발전 격차가 더 커졌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심사를 통과하지 못한 곳이 딱 한 군데 있었는데 그것이 바로 울릉공항 건설입니다.

사실 예타가 생기기 전 시작된 각종 국책사업은 문제가 많았습니다. 일단 신청만 하면 무조건 당첨이었고요 여기에다 주먹구구식, 나눠먹기식으로 진행이 됐습니다. IMF로 국가 재정집행에 대한 근본적인 리뷰가 시작되면서 이 문제도 도마에 올랐습니다. 그리고 문제점을 살펴보니 한 두 개가 아니었습니다. 경부고속철도건설 사업의 경제성을 놓고도 논란이 불거졌습니다. 수요는 부풀려놓고 총사업비는 줄이는 방식으로 타당성 조사를 왜곡했다는 비판이 거셌습니다. 1983년, 1991년, 1995년, 1997년, 1998년 5차례나 진행된 타당성 조사가 부실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시화호건설사업, 청주공항건설사업도 똑같이 부실조사 논란에 휩싸였습니다.

 

공무원 밥그릇 지키기와 재정개혁이 충돌

의욕적으로 출발한 김대중 정부가 드디어 칼을 빼 들었습니다. 기획예산위원회(현 기획재정부)에 칼자루를 맡겼습니다. 1998년 당시 기획예산위원장은 진념 전 경제부총리였습니다. 진념 전 부총리는 부처가 타당성조사에서 손을 떼는 방안을 개혁안으로 냈습니다. ‘자기들끼리 다 해먹는다’는 문제의식이었습니다. 객관적인 기관에서 타당성 평가를 해보자는 취지였습니다. 물론 부처들은 반발했죠. 이에 진념 전 부총리는 부처의 타당성조사 기능은 그대로 놔두면서도, KDI가 “예비” 타당성조사를 하는 것으로 절충안을 냈습니다. 공무원들의 기득권 지키기와 정부의 재정개혁이 충돌해서 나은 산물이 바로 ‘예비’ 타당성 조사였습니다. 이후 1999년 1월부터 예타가 전면 시행됐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은 이 ‘예타’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그는 기본적으로 경기부양용 토건사업에 대해 상당히 부정적이었습니다. 예타를 재정개혁의 일환으로도 봤지만, 억지로 경기를 부양시키기 위한 공공사업에 대해 부정적이었고 이는 곧 환경친화적인 정책과도 이어지는 노 대통령의 통치철학이기도 했습니다. 노 대통령은 재정개혁의 일환으로 2006년 10월 기금관리기본법을 폐지하고 국가재정법을 제정했습니다. 2007년에는 국가재정법(38조) 및 시행령에 예타를 처음으로 명시했습니다. 건설사업만을 대상으로 하던 예타를 연구개발사업, 정보화사업까지 확대했습니다. 예타를 확실히 법제화시키고 그 대상도 더 구체화시켜 예타 없이는 국책사업도 할 수 없게 그 기준을 더 엄격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이 같은 예타의 엄격한 절차와 법제화 조치는 현재까지 유지되고 있었습니다.

 

지난 2012년 12월 18일 노무현 대통령과 문재인 비서실장이 청와대 집무실에서 국정현안을 논의하고 있다.
지난 2012년 12월 18일 노무현 대통령과 문재인 비서실장이 청와대 집무실에서 국정현안을 논의하고 있다.

 

노 대통령이 예타에 대해 이렇게까지 정권의 명운을 걸 정도로 애착을 가졌던 것은 바로 ‘장기적인 경제 비전’이었습니다. 노 대통령은 회고록 ‘성공과 좌절’에서 이렇게 밝혔습니다.

“당장 어려운 사람들은 정부가 무언가 강력하게 해주기를 바라고 또 야당은 당장 경기를 살려내라고 야단을 칩니다. 언론도 마찬가지입니다. 경기를 살려내려면 무리한 부양책을 쓸 수밖에 없는데 그러면 반드시 이후의 우리 경제가 다시 큰 위기를 맞게 됩니다. 그것이 경제법칙입니다. 그래서 무리한 경기부양책을 쓰지 않고 끝까지 버텼습니다. 정말 힘겹게 버텼습니다.”

 

노무현의 예타 소신

노 대통령은 무리한 경기부양은 일종의 ‘몰핀’과 같다는 소신을 견지했습니다. 당장 생색은 낼 수 있겠지만 결국 그 부담은 국민경제 피폐로 되돌아올 것이라는 경제철학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예타를 이용해 의도적인 경기부양을 원천봉쇄하는 무기로 삼았던 것입니다. 이는 어느 정도 효과가 있었습니다.

예타는 예산낭비 사업을 거르는 리트머스 시험지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KDI에 따르면 1999년부터 2017년까지 진행된 예타 결과, 경제적 타당성을 확보한 사업은 전체 사업(690건) 중 327건(47.4%)에 그쳤습니다. 그대로 진행됐다면 예산낭비가 불 보듯 뻔했던 사업들이 절반 이상이었다는 얘기입니다. 예타를 통해 절감한 예산은 141조원(1999~2017년)에 달했습니다. 노 대통령의 장기적인 비전이 결과를 맺은 셈입니다. 만약 노 대통령이 예타를 법제화하지 않았다면 이명박 박근혜 대통령 때 아마 엄청난 경기부양 유혹을 느꼈을 것입니다. 이를 예감했던 노 대통령은 예타의 엄격한 집행만이 그런 유혹을 막아낼 수 있었다고 생각해 임기 내내 그 기조를 유지했습니다. 물론 이명박 박근혜 대통령 때도 이 기조는 전체적으로 유지됐습니다.

이렇게 3개 정권을 흐르면서 근 20년 동안 엄격하게 유지돼 오던 예타에 드디어 빗장이 열리고 말았습니다. 정부는 지난 4월 3일 오전 8시 정부서울청사에서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주재로 열린 제12차 경제활력대책회의에서 '예비타당성조사 제도 개편방안'을 발표했습니다. 수도권 지역 사업에 대해선 지역균형발전 평가 항목을 없애고 경제성 평가의 비중을 대폭 늘린다는 내용입니다. 비수도권 지역에선 균형발전 평가의 비중을 확대해 거점도시 등의 예타 통과율을 높일 수 있도록 했습니다.

왜 이렇게 갑자기 예타가 수증기처럼 사라질 위기에 처했을까요? 사실 예타면제 사업을 추진했던 더불어민주당도 박근혜 정부 시절엔 예타 강화를 주장했었습니다. 민주당 싱크탱크인 민주정책연구원 백운광 연구위원은 2015년 8월11일 경제 이슈 분석 보고서에서 “예타는 재정지출 관리의 문지기(게이트키퍼)”라며 “예타 완화나 회피는 예산낭비 가능성을 사전에 차단할 기회를 축소시키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고 경고했었습니다. 민주당에서도 이런 기조가 유지되다가 갑자기 바뀐 이유가 무엇일까요?

아이러니컬하게도 이명박 박근혜 대통령도 견지했던 예타의 영역을 노무현 대통령의 비서실장 출신인 문재인 대통령이 깨버렸다는 것입니다. 노 대통령이 그토록 멀리하려했던 의도적인 경기부양책을 바로 문 대통령이 꺼내들었다는 것입니다. 물론 여기에는 여러 가지 변수가 있어 이분법적으로 도식적인 결론을 내는 데는 무리가 있습니다. 하지만 현상적으로 여타의 빗장은 무너진 셈입니다. 바로 문 대통령에 의해서요.

 

문재인 대통령의 소신 번복?

노 대통령의 ‘유훈’과 같았던 예타에 대한 소신이 문재인 대통령과는 어떤 관련이 있을까요? 여기서부터 예타를 둘러싼 딜레마가 생깁니다. 바로 재정개혁과 국가균형발전이라는 명제의 충돌입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예타를 재정개혁 차원이 아니라 국가균형발전, 특히 예타의 벽에 막혀 개발이 지연되고 있는 지방경제 활성화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 같습니다. 예타 면제를 예산낭비가 아니라 ‘지역균형발전’으로 본 것입니다. 하지만 문 대통령은 자신의 입장을 번복했다는 비판에 직면해 있습니다.

“제가 대통령이 된다면, 국책사업이라는 이유로 절차를 생략하거나 환경부를 다그치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참여정부 때도 이런 사례가 있었던 점을 인식하고 있습니다. 이 말이 제 스스로 족쇄를 채우는 것일지도 모릅니다만, 더이상 이런 방식이 반복되어서는 안 되기 때문입니다.”

애초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2012년 7월에 펴낸 저서 ‘사람이 먼저다’에서 “대규모 사업일수록 절차를 중시해야 한다. 치밀하게 계획을 세우고 철저하게 평가를 받아야 한다”며 이같이 밝혔습니다. 예비타당성조사(예타), 환경영향평가 등 대규모 국책사업에 대한 절차의 중요성을 강조한 겁니다.

사실 문 대통령도 노 대통령처럼 예타의 중요성을 분명하게 인식하고 있었습니다. 예타 면제가 가져올 후유증을 잘 알고 있었던 것이지요. 평소 문 대통령은 “개발 사업은 한번 진행하면 되돌리기가 어렵다”며 “환경 파괴 논란과 함께 지역 주민 간의 갈등, 지역 공동체 파괴와 같은 부작용들이 있어 왔다”고 지적했습니다. 특히 문 대통령은 4대강 사업에 대해 “세금을 낭비하면서 토건업자들의 배만 불려준 토목사업”이라고 비난했습니다. “경제를 살리고 일자리를 창출한다던 주장도 허구”라고 했습니다. 4대강 사업은 이명박 전 대통령 시절 예타를 면제한 대표적인 국책사업입니다.

이렇게 평소 예타에 대한 소신이 확고했던 문 대통령이 왜 이번에 예타 면제를 대거 실시한 것일까요? 이번에 정부는 16개 시도의 23개 국책사업에 대해 예타를 면제하기로 했습니다. 총사업비 24조1000억원에 달합니다. 문 대통령이 비난했던 4대강 사업(22조원)보다 예산규모가 더 큽니다. 문 대통령은 예타를 면제한 이유에 대해 “원활하게 국토 균형발전이 이뤄지도록 하려는 것”이라고 면죄부를 부여했습니다.

야권에선 ‘예타 면제를 추진하려고 했다면 정권 초부터 계획을 세운 뒤 제도 개선을 거쳐 추진했어야 했다’는 입장입니다. 정권 초기 SOC 투자에 신중했던 정부가 무분별한 토건정책을 추진하는 건 맞지 않다는 이유 때문입니다. 경실련은 “성장률, 고용 부진이 계속되다 보니 예타 면제를 꺼내 들 정도로 문 대통령의 마음이 급한 것 같다. 4대강 사업에서 봤듯이 예타를 무력화하면 혈세 낭비를 부르고 미래세대 부담만 커질 것”이라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환경운동연합 등 시민단체는 정부가 예타를 무더기로 면제하면 정부를 상대로 소송에 나설 방침이라고 밝힌 바 있습니다. ‘제2의 4대강’ 후유증이 우려된다는 반응도 나옵니다.

경실련 등 시민단체에서는 이번 예타 면제에 대해 비판적입니다. 예타에 떨어진 지역구 의원들도 당연히 반발하고 있습니다. 기준이 엉망이라는 것입니다. 이번 예타면제 사업에는 과거에 예타에서 탈락한 사업도 다수 포함됐습니다. 경제성뿐 아니라 정부가 명분으로 내세운 지역균형발전점수도 낙제점인 사업이 이번에 예타가 면제됐습니다. 정치적이고 정무적인 고려가 짙게 반영됐다는 것입니다.

 

지난 2018년 7월 31일 오후 인천공항 내 KTX 매표소에 운행중단을 알리는 안내문이 붙어 있다. 인천공항까지 오는 KTX는 지난 3월23일 이후 운행을 멈춘 상태다. 인천공항 KTX 사업은 편익을 비용으로 나눈 값이 0.93으로 기준치에 약간 미달했지만 종합평가지표에서 기준(0.5)을 겨우 넘겨 국토부와 지자체가 밀어붙였다. 그러나 전체 좌석 중 20%에만 승객을 태우고 달렸다. 거의 빈 열차로 다니다가 사업비 3000억원을 날리고 개통 4년 만에 폐지됐다. 예타 면제의 대표적 실패 사례로 꼽힌다. 사진제공=연합뉴스
지난 2018년 7월 31일 오후 인천공항 내 KTX 매표소에 운행중단을 알리는 안내문이 붙어 있다. 인천공항까지 오는 KTX는 지난 3월23일 이후 운행을 멈춘 상태다. 인천공항 KTX 사업은 편익을 비용으로 나눈 값이 0.93으로 기준치에 약간 미달했지만 종합평가지표에서 기준(0.5)을 겨우 넘겨 국토부와 지자체가 밀어붙였다. 그러나 전체 좌석 중 20%에만 승객을 태우고 달렸다. 거의 빈 열차로 다니다가 사업비 3000억원을 날리고 개통 4년 만에 폐지됐다. 예타 면제의 대표적 실패 사례로 꼽힌다. 사진제공=연합뉴스

 

 

'예타 노무현 2.0'을 만들어야

물론 현행 예타 제도가 완벽한 것은 아닙니다. 경제성 평가 비중이 높기 때문에 인구가 적은 지방은 낮은 점수를 받게 돼 예타를 통과하는 게 쉽지 않은 것은 사실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억지로 기준에 미달하는 사업을 합격시켜 주는 것도 문제입니다.

정치권에서는 문 대통령이 집권 뒤 성과에 너무 초조해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옵니다. 내년 총선을 바라본 청와대의 대표적인 표심 견인 전략이라는 시각도 상존합니다. 2017년 5월 집권해 이제 만 2년을 접어들고 있는 문재인 대통령으로서도 뭔가 보여줄 때가 되었다는 생각이 강했을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아쉬움이 남는 것은 노무현 대통령이 그렇게 애착을 가졌던 예타에 대해 장기적으로 검토하고 개선을 했다면 어땠을까 하는 것입니다. 예타의 핵심은 경제성이지 정치적 나눠먹기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의정부경전철, 경인아라뱃길, 인천국제공항 KTX 등은 예타로 수천억원의 손실을 본 대표적인 사업입니다. 이번에 예타를 면제한 사업 가운데 일부는 부실 가능성이 상당히 높다고 합니다. 지금이라도 ‘예타 노무현 2.0'을 만들어야 할 때입니다. 10년, 20년 앞을 내다보고 말이죠. 

 

성기노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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