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ㆍ칼럼니스트.
시인ㆍ칼럼니스트.

‘목련꽃 그늘 아래서 베르테르의 편질 읽노라/ 구름꽃 피는 언덕에서 피리를 부노라/ 아~ 아 멀리 떠나와 이름 없는 항구에서 배를 타노라/ 돌아온 사월은 생명의 등불을 밝혀 든다/ 빛나는 꿈의 계절아/ 눈물어린 무지개 계절아’(박목월 ‘4월의 노래’ 중에서)

봄이 무르익기 전부터, 마음 깊은 곳에서는 이미 ‘4월의 노래’가 움트기 시작했다. 이 가곡은 선율과 노랫말이 모두 싱그러운 봄날처럼 아름답다.

8·15 광복과 정부수립, 그리고 민족상잔의 6·25 전쟁 등이 걷잡을 수 없이 소용돌이 친 40~50년대, 그 시대적 분위기를 배경으로 창간된 잡지 『학생계』의 위촉으로 시인 박목월이 쓰고 김순애가 작곡한 이 노래는 6·25 전쟁이 끝나갈 무렵, 학생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북돋워 주기 위해 태어났다. 이후 1960년대부터 학생들이 즐겨 부르기 시작했는데 한국적인 선법을 바탕으로, 간단한 음절의 질서 있는 전개로써 노래가 이루어진 것은 이 가곡의 동경 어린 가사와 잘 어울린다는 평가를 받는다.

언제 불러도 가슴 설레는 이 노래는 국민들의 가슴속으로 파고들어 널리 애창되었다. 이미 우리에게 친숙한 이 노래의 가사를 찬찬히 음미해 보면, 생전에 목월 시인이 살았던 서울 용산구 원효로의 2층집과 무관하지 않은 듯하다. 그 집에는 큰 백목련이 한 그루 있었다고 하는데 서울에 처음 집을 마련한 그가 장남과 직접 심은 나무였다고 한다. 창이 유난히 넓었던 2층 작업실까지 ‘생명의 등불을 밝혀 든’ 백목련은 원효로의 봄소식을 한껏 전해 주었으리라.

그 황홀한 목련꽃 그늘 아래 자리한 작은 사랑방에서 목월은 『심상(心象)』이라는 월간 시지(詩誌)를 발간했는데, 비품이라고는 나란히 놓은 책상 두 개와 사물함 몇 개가 전부였고, 두세 사람만 들어서도 방안이 가득 차는 그리 넉넉지 않은 공간이었다고 후배 문인들은 전한다. 목월의 작은 방은 그가 창간한 우리나라 최초의 시전문지 『심상』의 편집실이자 시인들의 사랑방 노릇을 톡톡히 한 셈이었다.

‘4월의 노래’를 꼽을 때 미국의 가수이자 영화배우 ‘팻 분(Pat Boon)’이 부른 ‘4월의 사랑(April Love)’도 빼 놓을 수 없다. 50~60년대 ‘팝의 황제’는 ‘엘비스 프레슬리’였지만, 그에 버금가는 인기를 누렸던 팻 분은 1957년 헨리 레빈 감독의 영화 ‘April Love’에서 주연을 맡아, 주제곡인 이 노래를 직접 불러 큰 인기를 모았다. 당대의 이름난 여배우이자 여주인공인 ‘셜리 존스(Shirley Jones)’와 열연한, 잘생기고 건실한 청년 팻 분이 켄터키에 있는 그의 아저씨 농장에 갔다가 이웃 아가씨인 셜리 존스를 만난다. 그리고 그곳에서 사랑을 꽃피운다는 내용의 영화에 쓰인 이 노래는 아카데미 주제가상 후보에도 올랐으며, 또 그 당시 노래 차트에서도 6주간이나 1위에 올랐던 명곡이다.

부드럽고 달콤한, 솜사탕 같은 바리톤음색으로 관중을 매료시킨 팻분의 크리스마스 캐럴 모음집은 지금도 스테디셀러로 남아 있다. 올해 85세인 팻 분은 60년대 말까지 빌보드 차트 1위에 다섯 번이나 올라선 대기록을 남기기도 했다. 그중 57년 1위에 우뚝 섰던 ‘모래 위에 쓴 사랑의 편지(Love Letter in the Sand)’와 함께 올드 팬들의 심금을 울리는 ‘4월의 사랑’도 같은 해 빌보드 차트를 석권한 바 있다.

이외에 4월을 노래한 명곡으로는 ‘사이먼과 가펑클(Simon & Garfunkel)’의 ‘4월이 오면(April come she will)’이 있다. ‘더스틴 호프만’과 ‘캐서린 로스’가 열연한 추억의 명화 ‘졸업(The Graduate)’에 삽입된 이 노래는 감미로운 음색으로 영화를 더욱 빛내 준 걸작 중의 하나였다.

어느덧 가슴 뛰는 4월이다. 목월 시인은, ‘4월은 생명의 등불을 밝혀 든다’라고 노래했다. 부드럽고 포근한 4월의 바람. 눈부시게 하얀 목련꽃 그늘 아래서 ‘4월의 노래’를 나지막이 부르며 ‘사랑의 편지’를 기다려 봄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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