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 혹은 동지로 40년 - 정태춘과 박은옥
부부, 혹은 동지로 40년 - 정태춘과 박은옥
  • 오건
  • 승인 2019.04.09 1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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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과 함께 읽는 스타인문학 3
이원석 작 〈두 개의 시선〉. 사진제공=정태춘&박은옥 40프로젝트
 이원석 작 〈두 개의 시선〉. 사진제공=정태춘&박은옥 40프로젝트

평생을 현장에서 살아온 가수가 있어. 그의 이름은 정태춘. 무대와 현장이 뭐가 다를까? 생각해봐. 가수들의 무대는 화려한 스포트라이트와 성능 좋은 마이크, 박수칠 준비가 돼있는 관객이 있거든. 무엇보다도 달콤한 개런티가 있어요. 그런데 현장은 어떨까? 화려한 조명도 성능 좋은 마이크도 없어요. 대개 분노에 찬 군중들만 있다고 봐야지. 개런티가 없는 경우도 허다해요. 

그렇게 현장을 누비며 살아온 가수가 노래 인생 40년을 맞았지. 정태춘, 그리고 아내 박은옥이야. 두 사람은 부부야. 파란만장한 대한민국 현대사 속에서 40년 풍상을 견디고 온 그들에게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뭘까? 그냥 위로할 뿐이지. 

2018년 11월 29일 조계사에서 펼쳐진 전태일 문화예술한마당에도 어김없이 정태춘이 등장했어. ‘떠나가는 배’, ‘92년 장마, 종로에서’, ‘리철진 동무에게’ 등을 불렀어. 정태춘은 적어도 우리의 각성이 필요한 대목마다 중요한 노래들을 만들어 발표했어요. 또 노래를 무기로 권력, 혹은 우상과 싸웠어요.

그 싸움이 유의미 했는지 무의미 했는지 지금 여기서 판단할 문제가 아니라고 봐. 중요한 건  그의 치열함이 늘 우리를 각성시켜 왔다는 것이지. 조금만 더 거슬러 올라가보자구. 너도 기억할 수 있을 거야. 촛불집회가 한창이던 2016년 겨울 광화문 광장. 그가 ‘92년 장마, 종로에서’를 부른 뒤 이렇게 외쳤어.   

‘다시는, 다시는 시청 광장에서 눈물을 흘리지 말자/ 물대포에 쓰러지지도 말자 / 절망으로 무너진 가슴들 이제 다시 일어서고 있구나 / 보라 저 비둘기들 문득 큰 박수소리로/ 후여 깃을 치며 다시 날아오른다.’

서사와 서정이 어우러진 그의 외침을 들으면서 현장에서 뜨거운 눈물을 흘렸던 기억이 새로워. 그가 문화운동가로서 주한미군 문제, 노동자들의 권익, 가요 사전 심의 문제 등과 싸워 성과를 낼 수 있었던 것은 초지일관 하는 예술적 의지 덕분이라고 봐.

그런데 그와 부부로 살아온 박은옥에겐 어느 정도 희생이 필요했지. 동지적 관계지만 남편으로서는 별로인거지. 가정을 꾸렸으면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거든. 그래도 박은옥은 꿋꿋하게 정태춘의 옆지기로 살아왔어. 

김우성 작 〈시대를 건너다〉. 사진제공=정태춘&박은옥 40프로젝트
김우성 작 〈시대를 건너다〉. 사진제공=정태춘&박은옥 40프로젝트

편한 대중가수의 길 포기하고 달려온 길

정태춘의 데뷔 앨범 ‘시인의 마을/ 촛불’이 1978년 말 서라벌레코드사에서 발매되었고, 1979년 봄부터 대학가를 중심으로 대유행했어요.  

‘소리없이 어둠이 내리고 길손처럼 또 밤이 찾아오면 / 창가에 촛불 밝혀 두리라 외로움을 태우리라 / 나를 버리신 내 님 생각에 오늘도 잠 못 이뤄 지새우며 / 촛불만 하염없이 태우노라 이 밤이 다 가도록…’

대학가에 즐비했던 음악다방에서 리퀘스트가 많았던 노래 중의 한 곡이었어요. 당시만 해도 대학생들은 가요보다는 팝송을 많이 듣던 시대여서 대중가요가 음악다방에서 흘러나오는 일이 많지 않았지. 그러나 정태춘이 그 벽을 허물었어. 허무적 색채가 짙은 보이스 칼라로 시적인 냄새가 물씬 나는 노래로 비틀즈나 퀸, 레드 제플린, 너바나 등에 빠져 있던 대학생들을 사로잡은거지. 그런대 그는 편한 길을 포기하고 현장을 택한거야. 

TV쇼에서 그를 본 기억이 거의 없어요. 요즘 40주년을 맞아서 <불후의 명곡>이나 <열린음악회>에서 보게 됐지만 말야. 늘 최루탄 자욱한 현장에서 혹은 노동조합의 창립 기념식에서 그의 노래를 들어왔어요. ‘서해에서’나 ‘떠나 가는 배’등 유장한 노래에서부터 ‘아, 대한민국’ 등 우리의 현실을 직시하게 하는 노래까지 그의 노래 심장은 잠시도 멈추지 않았어. 현장에서 그가 민중가요를 부를 때는 피가 빨리 도는 느낌을 받기도 했지. 개인적으로는 ‘양단 몇 마름’이나 ‘여드레 팔십리’등을 사랑해. 

그가 노동 현장을 누비고, 소극장에서 노래극 공연을 하고, 가요심의 사전철폐를 위해 싸우고, 대추리에서 연행돼 가는 동안 우리는 무엇을 하고 있었나? 사는 게 바빠서 때로는 정신보다는 물질에 현혹돼서 소외된 이에 대한 인간적인 고민도 없이 살아온 거 같아. 그 일을 대신하느라 어려웠을 것이 분명했지만 한 번도 내색하지 않으면서 아이를 키우고, 손주까지 본 우리들의 영웅이 대단해. 

벌써 40년, 참 빠르게 흘러갔군. 청춘의 한때에 정태춘이 보고 느꼈던 대한민국과 오늘의 대한민국은 얼마나 달라졌을까? 여전히 분단의 현실은 바꾸지 않았고, 온갖 문제들이 산적해 있어. 그러나 분명한 것은 그가 목표를 가지고 싸워왔던 자유를 일정 부분 쟁취했다는 거지. 억울한 죽음이 많이 줄었고, 조금씩은 더 행복해 졌으며, 정신적으로도 조금은 더 풍요로와졌다는 거야.       

다행인 것은 40년이 지난 오늘 그들이 우리 앞에서 여전히 노래한다는 사실이지. 북한강에서 서해까지, 종로에서 시인의 마을까지 마구 내달려보고 싶어. 

글 오건(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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