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까지 4개월 더 연장, '침체경기에 바람 넣기' 분석

정부가 유류세 인하를 연장했다. 경기침체 우려와 세수부담에 대한 국민여론을 의식한 결과로 풀이된다.

정부는 지난해 11월 6일부터 다음달 6일까지 6개월간 시행중인 휘발유, 경유, 액화석유가스 (LPG) 부탄에 부과하는 유류세 15% 인하 조처를 단행한 바 있다. 한시적 인사였기 때문에 5월 6일 유류세는 다시 인상될 예정이었다. 하지만 정부는 오는 8월 31일까지 4개월간 인하를 연장하되 인하 폭은 다음 달 6일부터 현행 15%에서 7%로 축소하기로 했다.

이에 따라 휘발유, 경유, 액화석유가스 (LPG) 부탄에 부과하는 유류세는 다음달 6일까지는 15% 인하되지만, 다음달 7일부터 오는 8월 31일까지는 7% 인하되고, 9월 1일부터는 원래대로 환원된다.

이런 단계적 환원 방안은 최근 국내외 유가동향, 서민·영세자영업자의 유류비 부담, 소비에 미치는 영향 등을 종합적으로 감안해 결정된 것이라고 정부는 설명했다. 정부가 유류세 인하를 연장함에 따라 4개월간 휘발유 가격은 ℓ당 58원, 경유는 ℓ당 41원, LPG부탄은 ℓ당 14원 가격이 인하되는 효과가 있을 것으로 정부는 보고 있다.

정부가 인하 조처를 연장하지 않았다면 휘발유는 ℓ당 123원, 경유는ℓ당 87원, LPG부탄은 ℓ당 30원 인상됐을 테지만, 4개월간은 7% 인하를 연장함에 따라 일부 인하 효과가 이어지게 되는 것이라고 정부는 설명했다. 정부는 인하 조처 연장에 따라 4개월간 6천억 원의 유류세 부담이 경감될 것으로 전망했다.

유류세는 휘발유와 경유에는 교통·에너지·환경세와 자동차세 (주행분, 교통세의 26%), 교육세 (교통세의 15%)가, LPG 부탄에는 개별소비세에 교육세 (개별소비세의 15%), 부가가치세가 부과된다. 연간 교통·에너지·환경세와 자동차세, 교육세, 부가가치세 등을 합한 유류세 규모는 26조 원 수준으로 이 중 15%는 3조9천억 원이다. 6개월간의 한시적 인하로 인한 세수감소 규모는 2조원가량으로 추산된다.

정부가 유류세를 한시적으로 인하한 것은 글로벌 금융위기가 한창이었던 2008년 3월 10일∼2008년 12월 31일까지 약 10개월간 휘발유·경유·LPG 부탄의 유류세를 10% 인하한 이후 10년 만의 일이다.


정부가 세수가 적게 걷히는 부담에도 불구하고 유류세 인하를 연장한 것은 최근의 추경 편성 등 경기를 진작시키기 위한 정책의 연장선상에 있다. 최근 국내 경기는 점점 부정적인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지난 ‘2월 산업활동동향’을 보면 전월 대비 전산업 생산은 1.9%, 설비투자는 10.4%, 소매판매(소비)는 0.5% 각각 감소했다. 산업활동 지표의 주요 부문인 생산, 소비, 투자가 트리플 감소를 기록한 것이다. 특히 전산업 생산의 감소 폭은 5년 11개월 만에 가장 컸고 소매판매도 지난해 9월 이후 최대 폭락했다. 산업생산은 광공업, 서비스업에서 모두 감소했다. 소매판매도 감소해 위축된 소비 심리를 보여주며 내수 경기에 대한 우려를 낳고 있다. 소매판매는 지난해 12월 0.2% 감소한 뒤 올해 1월 0.1% 증가했다가 2월 큰 폭의 감소를 나타냈다. 설비투자 역시 2월 -10.4%를 기록하며 2013년 11월(-11.0%) 이후 5년 3개월 만에 최대 감소 폭을 보여 앞으로 우리 산업·경제의 불안감을 가중하고 있다. 

국제유가는 상승하고 있다. 석유수출국기구(OPEC)의 원규 공급 감축과 이란과 베네수엘라에 대한 미국의 제재, 미국 원유 재고 감소 전망이 유가 상승을 이끌었다. OPEC 회원국과 여타 산유국들이 올해 상반기 일일 원유 생산량을 지난해 10월 수준보다 120만배럴 줄이겠다고 공언하는 것도 국제유가 상승에 힘을 보탰다. 특히 미 트럼프 정부는 OPEC 회원국중 원유생산 3위국인 이란의 제재를 강화할 계획이어서 올해 국제유가는 상승곡선을 그릴 것이란 분석이 지배적이다. 

국제 유가가 단시간내에 급등하면 국내 경기에는 복합적인 영향을 미치게 된다. 일단 물가상승 가능성이 높아진다. 화학, 항공, 운송 등 일부 업종은 유가 상승으로 원료비가 높아지며 수익성이 나빠질 수 있다. 물가 상승으로 소비자들의 소비도 위축될 우려도 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 2월 수입물가지수는 86.56(2010년 100기준)으로 전월보다 1.9% 올랐다. 수입물가 상승률은 지난해 5월(2.7%) 이후 9개월 만에 최고치였다. 수출물가지수도 82.97로 전월 대비 0.2% 오르며 4개월 만에 상승세로 돌아섰다. 

수출입물가가 오른것은 국제유가 상승 때문이다. 2월 한달간 두바이유는 배럴당 64.59달러로 전월 대비 9.3% 올랐다. 두바이유는 이후 3월과 4월 들어서도 지속적으로 상승하며 현재 배럴당 70달러를 돌파했다.

수출입물가가 오르면서 생산자물가도 영향을 받았다. 2월 생산자물가지수는 103.81(2010년 100기준)로 전월 대비 0.1% 상승했다. 5개월 만에 반등이다.  소비자물가의 선행지표인 생산자물가와 수출입물가가 동반 상승하면서 소비자물가 상승률도 커질 수 있다. 이런 점 때문에 유류세를 다시 인상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여기에 유류세마저 다시 옛날 수준으로 인상된다면 서민경제에도 더 큰 부담을 주게 된다. 이번 유류세율 인하 유지는 6개월 내렸다가 다시 올린다면 지금까지 내린 효과도 미미하고 여론도 더 악화될 것을 우려한 결과로 보인다.  

국내 내수경기가 좋지 않은 상황에서 유류세 인하를 멈추면 당장 휘발유는 리터당 120원, 경유는 90원, LPG는 40원 정도 인상될 것이라는 예상이 있었다. 국민들은 물가가 내리는 것은 잘 체감하지 못하지만 물가상승은 바로 체감한다. 여론 반발이 심해질 수밖에 없다. 기름값은 특히 서민경제와 직결되기 때문에 정부로서는 부담이 클 수밖에 없었다. 내년에 총선도 있고 추경으로 분위기를 띄우는 마당에, 유류세 인하 환원은 이런 정부의 노력에 찬물을 끼얹는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었다. 국민들의 체감 경기에 활력을 불어넣으려는 정부의 의지로 읽힌다. 

하지만 정부의 이런 눈물 겨운 노력에 서민들은 얼마나 경기진작을 체감할 수 있을까? 지난해 유류세율을 인하했을 때, 정유사와 주유소 마진, 유통과정의 각종 비용으로 소비자 체감 인하 폭이 줄어들었다는 분석도 나왔다. 이번에도 정부가 각종 경제지표와 경기침체 비난 여론에 등 떠밀려 유류세 인하 유지 결정을 내렸지만, 실질적인 경기진작 효과로 이어질지는 미지수다. '언발에 오줌누기'라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 정부가 여론 눈치보기로 단기적인 처방을 하지 말고 장기적인 비전을 구체적으로 보여준다면 국민들도 그것을 신뢰하고 얼마든지 '고통분담'을 하려고 하지 않을까. 

 


최기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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