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세 294조원·지방세 84조원…반도체 호황에 다주택자 중과세 영향

작년 세수호황에 힘입어 국세와 지방세 징수 실적이 378조원에 달했다. 국내총생산(GDP)에 세금 수입을 견준 '조세부담률'은 전년에 이어 역대 최고치를 다시 썼으며 상승 폭도 2000년 이후 최대인 것으로 분석됐다. 역대 정부 가운데 문재인 정부의 상승 속도가 가장 빠른 것으로 나타났다.

21일 기획재정부와 행정안전부, 한국은행 등에 따르면 2018년 총 조세수입은 377조9천억원으로 1년 전보다 32조1천억원(9.3%) 늘어난 것으로 추산된다. 기재부가 지난 2월 마감한 총세입 자료를 보면 작년 국세 수입은 전년보다 28조2천억원 더 걷힌 293조6천억원이다. 행안부가 잠정 집계한 작년 지방세는 전년보다 3조9천억원 늘어난 84조3천억원이다. 한은 국민계정에 따르면 작년 우리나라의 경상 GDP는 1천782조2천689억원으로 잠정 집계됐다.

경상 GDP 대비 국세와 지방세의 비율을 의미하는 '조세부담률'은 작년 21.2%로 산출된다. 조세부담률은 전년보다 1.2%포인트 상승했다. 조세부담률의 상승 폭은 전년보다 1.6%포인트 오른 2000년(17.9%) 이후 최대치다. 

정권별 조세부담률 증가속도를 보면 김영삼 전 대통령의 '문민정부 시절' 5년간 0.5%포인트, 김대중 전 대통령의 '국민의 정부' 시절 1.6%포인트가 올랐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참여정부' 시절에는 1.4%포인트가 올랐고, 이어 이명박 정부 때는 0.6%포인트가 줄었다. 박근혜 정부는 5년간 1.5%포인트 상승을 기록했다.

작년 조세부담률 급등은 국세수입이 늘어난 영향이 큰 것으로 분석된다. 작년 국세는 세입예산 268조1000억 원보다 25조4000억 원(9.5%) 더 걷혔다. 전년 대비 증가율은 2016년 11.3% 이후 가장 높은 10.6%였다.

세부적으로 보면 반도체 호조 덕에 법인세가 예산대비 7조9000억 원 더 걷혔다. 세수도 예측보다 7조7000억 원 늘었다. 작년 4월 다주택자에 대한 중과세를 시행하기 직전 부동산 거래가 증가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민간소비와 수입액도 증가하면서 부가가치세 역시 예상보다 2조7000억 원 더 걷혔다. 주식 거래대금도 증가하면서 증권거래세는 2조2000억 원 늘었다. 

정부는 작년 조세부담률이 높은 수준으로 증가한 것은 사실이지만, 일반 개인이 부담하는 근로소득세가 크게 늘어난 것은 아니라고 강조했다. 작년 근로소득세는 예측보다 2조3천억원 더 걷히기는 했다. 그러나 명목임금이 전년보다 5.3% 상승했고, 상용근로자도 2.6% 늘어난 영향이라고 정부는 풀이했다.

박기백 서울시립대 세무전문대학원 교수는 "특별히 정부가 증세한 것은 없기 때문에 기업의 성적이 좋은 영향으로 조세부담률이 크게 뛰었다고 볼 수 있다"며 "여전히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안에서 낮은 수준이기는 하지만 갑자기 오르는 것은 기업이나 개인 모두에게 부담이 되기 때문에 경제 수준에 비례해 증가하도록 정부가 조율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한국의 조세부담률이 선진국 수준에 비해서는 그리 높지 않기 때문에 더 올라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국내총생산(GDP)에 세금 수입을 견준 ‘조세부담률’이 2년 연속 역대 최고치를 다시 썼지만 여전히 선진국 평균에 턱없이 못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향후 고령화 등 사회현상에 대처하기 위한 복지 재원을 마련하려면 조세부담률을 현재보다 약 2%포인트(p)는 더 올라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조세부담률은 통상 GDP 증가 속도보다 세수가 빠르게 늘어날 때 상승한다.

21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세수 통계 2018’ 자료를 분석하면 2017년 한국의 조세부담률 잠정치는 20.0%로, 33개 회원국 가운데 7번째로 낮았다. 한국보다 조세부담률이 낮은 국가로는 리투아니아(17.5%), 터키(17.6%), 슬로바키아(18.4%), 칠레(18.7%), 아일랜드(18.9%), 체코(19.9%) 등 개발도상국이 주로 포진했다.

조세부담률이 높은 국가로는 덴마크(45.9%)가 첫 손에 꼽힌다. 스웨덴(34.3%), 아이슬란드(34.2%), 핀란드(31.2%), 노르웨이(27.9%) 등 북유럽국가가 주로 상위권에 속한다. 뉴질랜드(32.0%), 벨기에(31.0%), 이탈리아(29.5%), 프랑스(29.4%) 등의 조세부담률도 높은 편이었다. OECD 회원국 가운데 잠정치가 집계되지 않은 호주, 일본, 멕시코는 순위에서 제외했다.

한국의 조세부담률은 2013년 17.9%에서 2016년 19%를 돌파한 데 이어 지난해 21.2%를 기록한 것으로 추산되는 등 꾸준히 상승하는 중이다. 지난해 국세와 지방세가 각각 10.6%, 4.9% 늘어난 가운데 분모 역할을 하는 GDP의 성장세가 둔화한 것이 조세부담률 상승에 기여한 것으로 풀이된다.

하지만 이 같은 상승세에도 한국의 조세부담률은 아직 OECD 평균인 24.9%(2016년 기준)에 한참 못 미치는 상황이다. 전문가들은 복지 재원을 마련해야 하는 상황을 고려하면 조세부담률이 지금보다는 더 올라야 한다고 봤다.

류덕현 중앙대 경제학 교수는 “2025년 초고령화 사회에 도달하는데 이를 대비하려면 GDP 대비 복지 지출 규모가 7∼8% 늘어야 한다”며 “재원을 마련하는 방안으로는 세수와 국채발행이 있는데 복지 분야는 국민부담률(국세+지방세+사회보장기여금/GDP)을 높이는 방향으로 가는 것이 맞는다고 본다”고 설명했다. 이어 “한국의 조세부담률이 당장 OECD 수준으로 갈 수는 없지만 22∼23%까지는 올라야 한다”고 덧붙였다.

또 일본과 미국 등 일부 선진국의 조세부담률이 낮은 것은 한국과 상황이 다르기 때문이라는 지적도 나왔다. 일본의 조세부담률은 18.2%(2016년), 미국은 20.9%(2017년 잠정)에 그친다. 다만 이들은 달러, 엔화 등 안전자산으로 분류되는 통화 발행국이라 국채발행으로 손쉽게 재원을 조달할 수 있다.

선진국이어도 일본이나 미국 조세부담률이 낮다고 하는 것은, 주요 통화를 발행할 수 있는 국가라 사정이 다르다고 한다. 이들 국가의 국채 비중을 고려하면 한국의 조세부담률은 국제적으로도 상당히 낮은 수준이라는 주장도 있다.

조세부담률은 국민의 소득에서 세금이 차지하는 정도를 나타내는 지표를 말한다. 일반적으로 국민소득, 즉 1년 간에 국민이 새로 생산한 순생산물에서 얼마 만큼이 조세로서 국가에 분할되는가를 나타내며, 한 나라 재정의 상대적 규모를 제시하는 지표가 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통상적으로 개발도상국보다도 국민소득수준이 높은 선진국에서 이 비율이 높아지는 경향을 띤다. 선진국일수록 국민소득이 높으면 그만큼 세금을 부담하는 능력(담세력)도 높게 나타난다. 하지만 선진국이기 때문에 무조건 높다는 전제는 기계적이며 나라마다 처한 경제상황에 따라 조세부담률은 달라질 수 있다. 한국의 적정한 조세부담률을 찾아서 그 비율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단순히 높고 낮음을 다른 국가들과 절대 비교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 

 

최기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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