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보이콧 포함한 총력 투쟁 예고

정치권이 패스트트랙을 두고 20대 국회 최대의 격전을 펼칠 전망이다. 더불어민주당과 바른미래당, 민주평화당, 정의당 등 여야 4당은 22일 선거제도·사법개혁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에 최종 합의했다. 제 1야당 자유한국당만 쏙 뺀 채 합의를 이룬 것이다. 옛날 같으면 여야의 합의가 없으면 국회 법안 처리는 차일피일 미뤄지다 그대로 사장돼 버리는 경우가 많았다. 이런 정쟁의 후유증을 극복하기 위해 여야는 패스트트랙이라는 법을 만들었다.

패스트트랙은 국회법 제85조 2에 규정된 내용이다. 발의된 국회의 법안 처리가 무한정 표류하는 것을 막고, 법안의 신속처리를 위한 제도다. '안건 신속처리제도'라고도 불린다. 법안의 처리 일수를 단축해 효율적인 국회운영이 되도록 하는 것이 목적이다. 

패스트트랙 법안은 일정 기간 후, 본회의에 자동상정해 표결 처리하게 된다. 상임위원회에서 180일, 법제사법위원회의 90일간 심사에 이어 본회의 부의 기간 60일 등 처리까지 최장 330일이 소요된다. 이번 여야 4당이 합의한 패스트트랙 법안은 내년 3월 22일께다. 국회의장의 결정에 따라 법안 상정 시기를 최대 60일 앞당길 수도 있다. 상임위원회 논의 과정에서도 날짜를 단축할 여지 역시 남아있다.

여야 4당 원내대표단은 22일 국회 정론관에서 발표한 내용에는 문재인 정부의 핵심 정치과제가 그대로 들어가 있다. 이날 발표된 선거제도·사법개혁 패스트트랙 합의안을 보면 선거제도 개편은 지난달 17일 4당 정치개혁특별위원회 간사 간 합의사항을 바탕으로, 미세조정한 공직선거법 개정안을 패스트트랙으로 지정하기로 했다. 정개특위 간사단 합의는 국회의원 정원을 300명으로 유지하되 지역구 의석은 현행 253석에서 225석으로 축소하고, 비례대표를 47석에서 75석으로 늘리는 내용이다. 비례대표는 연동형·병립형 비례대표제를 도입해 선출한다. 

공수처 설치법은 공수처에 기소권을 제외한 수사권과 영장청구권 검찰의 불기소처분에 대해 법원에 제정신청할 권한만 부여했다. 대신, 공수처가 수사한 사건 중 판사 검사 경찰의 경무감급 이상이 기소대상으로 포함되는 경우 공수처가 기소권을 갖도록 했다. 공수처가 실질적 견제 장치도 작동할 수 있는 최소한의 범위에서 기소권을 주기로 한 것이다. 민주당은 원래 기소권 없는 공수처를 절대 수용할 수 없다는 입장이었으나 패스트트랙 논의가 속도를 내지 못하자 기소권을 제한하자는 바른미래당의 제안을 받아들이는 방향으로 선회해 합의했다.  

공수처장은 추천위원회의 5분의 4 이상 동의를 얻어 추천된 2인 중 대통령이 1인을 지명하고, 국회 인사청문회를 거쳐 대통령이 임명하도록 했다. 추천위는 여야가 각각 2명씩 위원을 배정해 정치적 쏠림을 방지하기로 했다. 

여야 4당은 각 당의 추인을 거쳐 합의안을 오는 25일 예정된 정개특위와 사법개혁특별위원회 안건으로 올리고 패스트트랙 지정을 완료할 생각이다. 각 당의 추인을 받는 과정은 4당 원내대표들이 책임지기로 했다. 선거제도 패스트트랙에 반대하고 있는 자유한국당을 설득하는 작업도 병행할 예정이다. 여야 4당은 이밖에 패스트트랙 법안의 처리 일수를 현행 330일에서 60~180일로 단축하고, 법제사법위원회의 체계자구심사 권한을 축소하는 등의 국회법 개정도 추진하기로 했다.  

하지만 여야 4당의 이런 패스트트랙 '패싱'을 당한 자유한국당은 부르르 떨고 있다. 나경원 원내대표는 "20 국회는 이제 없다"며 강력 전투모드에 들어갔다. 황교안 대표도 예정했던 '민생대장정' 대구 방문 일정을 취소하고 의총에 참석해 패스트트랙 저지에 당력을 집중할 예정이다.

나경원 원내대표는 이날 의총에서 '비상상황'임을 강조하며 국회 보이콧을 포함한 원내·외 총력 투쟁 방안을 논의할 방침이다. 한국당은 그동안 4당의 패스트트랙 합의를 '의회 쿠데타'로 규정했으며, 이를 강행할 경우 20대 국회 일정 전면 거부를 예고하는 등 강경한 반대 입장을 펴왔기 때문에 여야 4당과 자유한국당은 외통수 전쟁의 길로 들어서고 있다.

자유한국당이 이렇게 여야4당의 패스트트랙에 대해 흥분하는 것은 내년 4월 총선을 의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일단 선거제도 개편은 제 1야당인 자유한국당의 생존과 직결된 사안이기 때문에 어떻게 해서든 그들의 이익을 담보해내야 하는 절체절명의 아젠다다. 그동안 여야는 수차례의 선거제도 개편을 추진해왔지만 각당의 이해관계 때문에 이뤄지지 못했다. 이런 상황에서 자유한국당이 협의도 없이 선거제도 개편이 이뤄질 경우 '의원직 총사퇴'라는 강수를 충분히 둘 수 있다. 

여야 4당의 패스트트랙 합의는 내년 총선을 앞둔 연합전선 구축의 일환이라는 점에서도 자유한국당은 반발할 수밖에 없다. 특히 잠재적 우군으로 여겨져온 바른미래당이 이에 합의한 것은 자유한국당의 입지를 심각하게 위협하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패스트트랙 합의는 여야4당과 자유한국당이 한 치의 양보도 없는 벼랑 끝 전투가 될 전망이다. 

 

윤정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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