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ㆍ칼럼니스트.
시인ㆍ칼럼니스트.

박근혜 전 대통령은 지난 2014년 5월, 세월호 참사에 따른 대국민 담화에서 “국민의 안전과 재난을 관리하는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했다”며 국민에게 사과했다. 신속하고 일사불란한 대응을 하지 못한 컨트롤타워에 치명적인 문제점이 있었음을 인정한 것이다. 이에 따라 문제 해결을 위한 ‘국가안전처’를 만들어 모든 유형의 재난에 현장 중심으로 대응할 수 있는 체제를 만들겠다고 밝혔다. 특히 첨단 장비와 고도의 기술로 무장된 ‘특수기동구조대’를 만들어 ‘골든타임(golden times)’의 위기 대응능력을 획기적으로 높이겠다고 약속하기도 했다. 

2001년 미국 뉴욕 맨해튼에서 발생한 9.11 테러 당시, 아수라장이 된 사고현장을 지휘하던 우두머리는 행정부 수장이 아닌 ‘관할 소방서장’이었다. 또 2009년 뉴욕 허드슨 강에 승객 150여 명을 태운 여객기가 불시착했을 때도, 현장의 최고 책임자는 ‘뉴욕 항만청장’이었다. 그 지역 상황을 가장 잘 아는 사람에게 신속한 초기대응을 맡겨야만 인명을 최대한 구할 수 있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이른바 골든타임을 고려했을 때, 인명 구조가 가장 우선순위라는 매뉴얼이 제대로 작동하고 있었던 것이다.

대형 참사가 일어날 때면 으레 골든타임이 세간의 화두로 떠오른다. 골든타임은 방송·의료 등 여러 분야에서 두루 쓰이는 말이다. 근래 자주 쓰이는 용법대로라면 ‘응급 상황에서 구조 가능성과 생존율을 극대화할 수 있는 최소한의 시간’ 정도로 풀이된다.

골든타임은 우리 생활 어디에나 있다. 항공기 비상상황에는 ‘90초 룰’이 있고, 화재 현장은 ‘5분 남짓’이 가장 중요하다. 수면시간도 오후 11시에서 다음날 새벽 3시까지를 골든타임으로 친다. 이 시간이 포함돼야 숙면을 취할 수 있다고 한다. 

몇 해 전 심근경색으로 쓰러진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급박한 순간을 잘 넘긴 것도 골든타임을 놓치지 않은 결과라는 보도가 있었다. 초기 응급조치가 잘 이루어져 위험한 고비를 넘겼다는 것이다. 심근경색은 치명적일 수 있어 골든타임에 얼마나 신속한 치료를 받느냐가 관건이라고 한다. 이 회장의 주치 의료기관은 삼성서울병원이지만 자택에서 5분 거리에 있는 순천향대학병원으로 긴급 이송되었기에 사망에까지는 이르지 않았다는 게 의료인들의 견해다. 

그러나 이 회장의 경우와 달리 우리 사회에서는 골든타임이 무시되는 사례가 빈발하고 있다. 세월호 참사의 경우 배가 침몰하는 긴박한 상황에서 선원들은 물론이고 관계 당국과 해당 기관의 구조활동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무수한 생명을 잃었다는 질타가 빗발치기도 했다. 이른바 골든타임을 놓쳤다는 것이다. 사고 당시 초기 대처를 잘못한 데 대한 원망이다. 구조 요청부터 침몰까지 2시간 여 동안 우왕좌왕했던 우리의 해양경찰은 침몰 당시 바다로 뛰어내린 승객들 외에 선내에 갇힌 승객들은 단 한 명도 구조하지 못했다.

배가 침몰한 뒤 생존자 구조의 한계 시간은 72시간. 해경은 이 또한 늑장을 부려 인명피해를 키웠다. 3,000개가 넘는다는 재난대응매뉴얼 곳곳에는 사고 때 골든타임을 명시하고 있다. 화재의 경우 신고 5분 이내, 산불은 30분 이내에 현장에 도착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세월호 참사에서 보듯 문제는, 우리가 사는 이 땅에서 이런 매뉴얼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던 데 있다.

요즘도 우리의 재난관리체계에는 종종 빨간불이 켜지곤 한다. 참사를 미리 막기 위해서는 정부를 중심으로 각 기관 및 사회의 모든 시스템이 늘 국민의 생명을 최우선시 하는 쪽으로 작동해야 한다. 세월호 참사 5주기에 즈음해 골든타임의 중요성을 다시금 뼈아프게 되새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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