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경제규모와 화폐가치 괴리로 2000년대부터 끊임없이 필요성 제기
정부 "기대효과 있으나 부작용 커…화폐단위 변경 검토 안 해"

최근 리디노미네이션(화폐단위 변경)에 대한 논의가 오가면서 이를 둘러싼 가짜뉴스가 함께 확산하고 있다. '현 정부가 북한과 화폐 단위를 맞추기 위해 리디노미네이션을 추진하고 있다'는 주장이 대표적이다.

회원 수가 60여만명에 달하는 온라인 카페에는 최근 "화폐개혁을 하려는 숨은 목적은 남북 통화 단일화를 위한 초석으로 북한에 엄청난 이득이 돌아가게 된다"는 내용의 글이 게재됐다. 이 카페와 온라인 커뮤니티 디시인사이드 등에는 이 외에도 비슷한 취지의 글이 여러 건 올라왔다.

출처=온라인 커뮤니티 캡처
출처=온라인 커뮤니티 캡처


특히 이윤석 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이 지난해 9월 '남북이 경제공동체를 구축하려면 단일 통화를 사용해야 한다'는 취지로 작성한 보고서가 일부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리디노미네이션 음모론'에 활용되고 있다.

이 연구위원은 "화폐 단위 조정은 인플레이션 문제 등 다른 긍정적 효과를 염두에 둔 것이지 향후 남북 경제공동체를 염두에 두고 추진한다고 연결 짓는 것은 무리한 주장"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단일통화 이야기는 남북 경제가 공동 시장 내지 공동체를 추진하면 자연스레 단일 통화 논의가 나올 수밖에 없다는 취지에서 작성한 것이지 리디노미네이션과는 전혀 상관없다"고 설명했다.

'리디노미네이션 음모론'에 인용된 기사. 출처=온라인 커뮤니티 캡처
'리디노미네이션 음모론'에 인용된 기사. 출처=온라인 커뮤니티 캡처

현재의 화폐 액면을 1000대 1이나 100대 1로 줄여 1천원을 1원 또는 10원으로 축소하는 리디노미네이션에 대한 논의는 이번에 처음 등장한 게 아니다. 우리나라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유일하게 미 달러 환율이 네자리에 이르는 등 경제 규모와 화폐가치 사이에 괴리가 있고, 단위가 너무 커서 국제 금융 시장에서 거래하기 불편하다는 등의 지적이 오래 전부터 제기됐다.

우리나라는 1953년 전쟁으로 인한 인플레이션 수습을 위해 100원을 1원으로, 1962년 경제개발 재원 확보를 위해 10원을 1원으로 조정하는 등 2차례 리디노미네이션을 단행했으나 이후 경제 규모가 1천배 이상 커져 1에 영(0)이 16개 붙는 '경' 단위가 통계에 등장했고, 이후 리디노미네이션 논의가 점화됐다 사그라들기를 반복했다.

박승 당시 한국은행 총재는 2004년 국회 국정감사에서 한국은행 금융망을 통해 거래된 거래 금액이 2003년 연간 기준 2경 2천조원으로 파악됐다고 밝히며 리디노미네이션의 필요성을 제기했다.

이에 따라 일부 학자를 중심으로 논의되던 리디노미네이션이 정치권에서 공론화됐지만, 이헌재 당시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이 "아무런 실행 계획이 없다"고 쐐기를 박으며 일단락됐다.

리디노미네이션 논의는 2009년 6월 오만원권 발행 전후로 또다시 대두됐지만, 글로벌 금융위기 여파 등으로 유야무야 됐다. 이 사안은 최근에도 한국은행 국정감사나 새 총재 후보 청문회 등에서 의원들의 단골 질의로 등장했다.

자유한국당 박명재 의원은 2015년(당시 새누리당 소속) 발간한 국정감사 정책자료집 '리디노미네이션, 지금이 적기다'에서 "화폐와 경제 현실 간의 괴리 현상을 치유하기 위해 리디노미네이션에 대한 조속한 공론화가 필요하다"며 "우리 경제가 언젠가는 가야 할 길이고 반드시 넘어야 할 숙제"라고 지적했다.

다음 달 13일에는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이원욱·심기준 의원이 '리디노미네이션을 논한다'를 주제로 토론회를 개최한다. 이 의원 측은 "리디노미네이션을 할 때가 됐다는 문제의식을 갖고 논의를 시작하자는 취지에서 토론회를 준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한편 현 정부 경제수장은 리디노미네이션 논의에 선을 긋고 있다.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정부가 경제활력을 제고하기 위해 전력투구하는 입장에서 지금 논의할 단계가 전혀 아니다"라며 "정부는 검토한 바 없다"고 말했다.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도 "기대효과는 있으나 그에 못지않게 부작용도 많기 때문에 신중히 접근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입장을 밝혔다.

최기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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