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00억 영등포역사 사업권 따라 유통업계 지각변동

서울시내 대표적인 역사인 서울역사와 영등포역사의 새 주인이 6월 중 결정된다. 서울의 핵심적인 위치에 있는데다 유동인구가 많은 역사는 유통업계가 군침을 흘리고 있는 대표적인 자리다. 역시 이번 새 역사 주인 쟁탈전에 유통공룡 롯데와 신세계가 단단히 한판 붙을 채비를 하고 있다. 특히 신세계·이마트가 올해 초 롯데에 뺏긴 인천터미널점의 복수에 성공할지 업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최근 유통업계에 따르면 철도공단은 내달 초 서울역사와 영등포역사 사업자 모집 공고를 내고 신규 사업자를 선정할 계획이다. 철도공단 관계자는 “5월 중으로 사업자 모집에 나설 예정”이라면서 “6월 초 사전적격심사로 운영 능력이 있는 업체를 선별한 후 6월 말 가격 경쟁을 통해 최종 사업자를 결정할 것”이라고 밝혔다.

현재 영등포역사는 롯데백화점이 운영 중이고, 서울역사는 롯데마트가 사업권을 가진 한화역사로부터 위탁경영을 맡고 있다. 새롭게 선정된 사업자는 6개월간 인수인계 기간을 거쳐 내년 1월부터 영업에 나선다. 두 곳 모두 롯데가 그동안 독점적 지위를 누리며 편하게 영업을 해왔다. 하지만 이번에는 다르다.

그동안 업계에서는 롯데백화점과 롯데마트가 역사 사용 연장에 손쉽게 성공할 것으로 내다봤다. 최대 10년에 불과하고, 재임대가 불가능한 기존 법 때문이다. 하지만 4월 초 ‘철도사업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면서 병원 및 개인 점포에 재임대가 가능해졌다. 더불어 임대기간이 최대 20년(10년+10년)으로 연장될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유통공룡의 물러설 수 없는 한판승부가 예고된다.

유통업계의 관심이 가장 집중된 곳은 영등포역사다. 롯데백화점 영등포점은 지난해 5000억 원가량의 매출을 거둔 롯데의 4위 점포다. 규모만으로도 영등포역사 사업권의 향방은 유통업계에 지각 변동을 일으키기에 충분하다. 

'롯데가 영업을 하니 더 잘 되더라?'

인근에 영등포점을 운영중인 신세계백화점은 당초 영등포역사에 관심이 없었다. 하지만 임대 기간 연장 및 재임대 가능성이 높아지자 적극 참여로 입장을 선회한 것으로 알려진다. 영등포역은 현재 KTX 기차역과 수도권 지하철 1호선을 비롯해 2023년 신안선도 추가된다. 신길뉴타운과 영등포뉴타운, 여의도 등이 개발되며 배후 수요도 계속 커져 교통과 거주지역의 핵심 요지로 떠오르면서 매물의 매력도가 높아지고 있다. 

특히 올해 초 인천점을 뺏긴 신세계로서는 롯데에 도전장을 내밀 회심의 기회이기도 하다. 신세계는 21년간 영업해왔던 인천점은 지난해 6000억원의 매출을 기록하는 노른자위였으나 올해 1월 롯데에 영업권을 빼앗겼다. 더욱이 롯데로 넘어간 후 신세계 운영 시기를 뛰어넘는 성장세를 보이면서 신세계의 자존심에 스크래치를 내고 있다. 롯데백화점 인천터미널점은 올 1~2월 평균 700억원의 매출을 올려 이런 추세라면 연 매출 8000~9000억 원 달성도 가능하다. '롯데가 영업을 하니 더 잘 되더라'는 이야기가 급속히 퍼지면서 신세계는 비상이 걸린 셈이다. 

신세계백화점은 영등포점과 영등포역사를 동시 운영하는 방안을 고심 중이다. 업계에서는 영등포역사는 백화점, 기존 영등포점과 타임스퀘어는 스타필드로 운영해 영등포역 일대를 신세계타운으로 꾸밀 것으로 보고 있다. 신세계백화점 관계자는 “자체 인력을 투입해 시너지 효과를 면밀히 살피고 있다”고 말했다.

오는 8월 구로본점 영업을 종료하는 AK플라자 역시 입찰 참여를 시사했다. AK플라자 관계자는 “개정안의 진척 여부와 입찰 공고를 확인하는 대로 사업성 검토에 나설 것”이라고 전했다. 

서울역사는 롯데의 상생 적합성 여부가 관건

서울역사는 롯데가 2004년 한화역사로부터 임대해 롯데마트 서울역점으로 운영중인 연매출 1500억 짜리 알짜 점포다. 서울의 관문인 서울역에 위치해 상징성이 있는데다 서울역 북부 역세권 개발과의 시너지도 기대할 수 있다. 

그간은 경쟁사인 이마트가 인근에 점포를 운영중이고 홈플러스도 최근 자금 동원력이 힘에 부치는 상황이어서 롯데마트가 쉽게 영업 연장에 성공할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었다. 하지만 서울역사도 안심하기엔 이르다.

가격 입찰에 앞서 정성적 평가가 포함된 철도공단의 사전적격심사가 롯데의 발목을 잡을 수 있다는 시각도 나온다. 정성적 평가에는 중소기업과의 상생, 고용 승계, 공공성 확보 계획 등이 들어간다. 

롯데마트는 최근 납품업체에 후행 물류비(유통업체 물류센터에서 매장까지 드는 물류비)를 떠넘긴 혐의로 공정거래위원회의 심사를 받고 있다. 공정위가 5월 중에 최종 결과를 전달할 예정인 가운데 4000억 원대 과징금을 부여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롯데마트의 서울역사 사수에 공정위와 철도공단이 ‘키맨’이 된 셈이다.

최근 ‘통큰치킨’과 ‘극한한우’ 행사를 둘러싼 골목상권 침해 논란도 부담이다. 롯데마트는 최근 최저가 가격 경쟁에 뛰어들면서 치킨 한마리를 5000원에 판매하는 ‘통큰치킨’을 9년 만에 부활시켰고, 1등급 한우를 시세의 절반 수준인 100g당 4000원 대에 판매해 치킨집과 정육점 등 소상공인들로부터 ‘골목상권’ 침해라는 곱지 않은 시선을 받은 바 있다. 

롯데마트와 이마트, 한화역사는 입찰 공고가 나오는 대로 서울역사 입찰 여부를 결정한다는 방침이다. 

사업기간 20년으로 늘어나면서 매력적인 곳으로 떠올라 

역사의 사업권은 그동안 사업 기간이 짧아 투자비 회수가 쉽지 않았다. 그래서 이전까지는 업계 반응이 미온적이었는데 최근 임대기간이 20년으로 연장되면서 대형 유통업체들이 큰 관심을 보이고 있다. 일단 기존 운영주체인 롯데가 사업권을 지켜내기 위해 높은 가격을 써낼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올해 초 인천점을 롯데에 뺏긴 신세계백화점은 영등포역사 확보에 적극 나설 것으로 관측된다. 기존 영등포점과 이마트, 복합쇼핑몰 타임스퀘어를 결합해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다는 게 유통업계의 분석이다. 

 

최기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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