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정상화부터 패스트트랙 마무리까지…과제 '첩첩산중'

집권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의 20대 국회 마지막 1년을 책임질 새 원내대표로 3선의 이인영 의원이 8일 선출됐다. 통상적으로 '4기 원내대표'는 총선을 책임지는 자리로서 그 역할이 막중하다. 공천권은 물론 대야 관계와 정책 조율 등도 해야 하는 여권의 리베로 역할을 해야 한다. 때로는 청와대를 위해 몸으로 막아야 하는 자리인 동시에, 총선에서 불거질 당-청 갈등를 조율해야 하는 막중한 자리다.

일각에서는 운동권 출신이라는 정도로만 알려진 이 의원의 존재감이 그런 큰 역할을 하기엔 좀 역부족인 것 아니냐는 우려 섞인 지적도 나온다. 지난해 당 대표 경선에서 컷오프로 조기탈락한 것도 선수에 비해 개인적인 카리스마와 존재감이 미미하다는 것을 방증했다는 평가가 많았다. 하지만 그는 여당 원내대표로 다시 한번 회생의 기회를 잡았다. 이번 1년 임기가 그에게는 너무도 큰 기회이자 도약대인 셈이다. 그래서 그는 당선되자마자 한껏 몸을 낮추며 당과 눈높이를 맞추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 

이 의원은 '친문' 김태년 의원을 꺾고 원내사령탑에 올랐다. 내년 총선 공천을 둘러싸고 현역의원들의 친문 제일주의에 견제를 날렸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는 곧 이 의원이 공천권 행사에 적극적으로 뛰어들라는 의원들의 요구와도 같기 때문에 총선을 앞두고 청와대와 이해찬 대표와도 갈등을 일으킬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 

이 의원은 1964년 충북 충주 출신으로 충주고등학교와 고려대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교 정보통신대학원에서 석사과정을 이수했다. 1987년 고대 총학생회장으로 대선 직선제 쟁취 학생운동을 이끌었고, 이후 각 대학 총학생회장을 중심으로 결성된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전대협)의 초대 의장을 맡는 등 '86세대'를 대표하는 운동권 인물로 꼽힌다.

이 의원은 2000년 김대중 대통령의 '젊은 피 수혈론'에 따라 연세대 총학생회장 출신 우상호 의원과 함께 새천년민주당에 영입되며 정계에 입문했으며, 이후 새천년민주당에서 청년위원장을 역임했다.

2002년 제16대 대선에서는 노무현 후보 선대위 인터넷선거특별본부 기획위원장을 맡았으며, 2004년 제17대 총선에서 열린우리당 후보로 서울 구로갑에서 당선되며 원내에 입성했다. 제18대 총선에서 낙선했으나, 19대와 20대 총선에서 내리 당선되며 3선 고지에 올랐다. 20대 국회에서는 남북경제협력특별위원회 위원장을 맡기도 했다.

이 의원은 이번 원내대표 경선에 출마를 선언하면서 평소 본인의 트레이드마크였던 흰 머리를 검은색으로 염색하는 등 변화를 강조했다. 이 의원은 이날 정견발표에서도 "발끝까지도 바꾸려고 한다. 정치라는 축구장에서 레프트 윙에서 옮겨 중앙 미드필더가 되겠다"면서 "변화와 통합의 길로 나가야만 총선에서 승리한다"고 말하며 변화 의지를 거듭 밝혔다.

앞서 언급했듯이 지난해 당 대표 예선탈락의 충격을 이기기 위해 하나부터 열까지 변화해야 한다는 절박함으로 '발끝까지도 바꾸려고 한다'고 말하며 절치부심했다. 그래서 향후 대야 관계도 홍영표 전임 원내대표와는 다를 것이라는 예상도 많다.  그의 취임일성이 바로 "민생을 중심으로 국회를 정상화하고, 정치를 복원해야 한다는 말씀을 드린다"는 것이었다. 투쟁 강경 일변도에서 벗어나겠다는 것이다. 

이 원내대표는 당선 소감에서 홍영표 전 원내대표에게 "홍 원내대표가 조금 야속하다. 우리 후임 원내대표에게 (정쟁을) 안 물려주실줄 알았는데, 너무 강력한 과제를 남겨 겨 놨다"고 농담섞인 진담을 던지기도 했다. 그만큼 그로서는 홍 전 원내대표가 만들어논 경색정국을 풀어야 할 책임감이 앞서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여당 원내대표라는 화려한 타이틀을 거머쥐었지만 임기 1년이 결코 순탄치만은 않을 전망이다.  원내대표는 원내의 모든 사안을 총괄하는 인물로, 당 대표와 함께 당 투톱으로서의 역할이 막중하기 때문이다.

이 원내대표의 첫번째 과제는 역시 '국회 정상화'다. 올해 들어 임시국회는 끊임 없이 열렸지만, 매번 '빈손 국회'로 끝났다. 본연의 업무인 법안 처리는 단 세 차례의 본회의를 통해 법안 406건을 통과시켰다. 지난해 같은 기간 동안 처리된 법안은 699건으로, 초라한 성적표다.  심지어 올해 처리된 법안들 모두 비 쟁점 법안들이었다.  

문제는 장외로 뛰쳐나간 자유한국당을 다시 원내로 불러들일 유인책이 지금으로써는 마땅히 없다는 점이다.  한국당은 패스트트랙 지정 철회를 주장하고 있다. 여야 원내대표들의 합의로 국회의장이 패스트트랙을 취소할 수는 있지만, 바른미래당을 제외한 여야 3당은 패스트트랙 철회는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있다. 이 원내대표는 당선 직후 마련한 기자간담회에서 한국당의 패스트트랙 철회와 관련해 "가능한 얘기가 아니"라고 잘라 말했다.  

한국당이 국회선진화법 위반 혐의 등으로 고소.고발당한 소속 의원들에 대한 고소.고발 취하를 여야4당에 요구할 수도 있다. 현재 한국당 의원 62명이 국회 선진화법 위반 등의 혐의로 서울 남부지방검찰청에 고소.고발됐다. 하지만 이 역시 여야 4당이 수용할 가능성은 낮다는 게 일반적인 관측이다. 

여야 4당은 2012년 국회 선진화법이 제정된 이후 처음으로 발생한 몸싸움 사태를 엄중하게 보고 있다. 이인영 원내대표는 "선거운동 과정에서 고소.소발이 있었던 것이라면 정치적으로 처리하는 게 가능하지만, 이번 일은 국회 선진화법이 작동하는 과정에서 (몸싸움이) 일어난 것"이라며 "없던 것으로 하면 국민들께서 '뭐하러 선진화법을 만들었냐'고 비판할 수도 있기 때문에 (일반 고소.고발과) 구별해서 봤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국회 정상화의 시기와 방식은 이 원내대표의 정치력에 달릴수 밖에 없다.

신임 원내대표의 또 한가지 중요 과제는 가까스로 올린 패스트트랙 법안들을 끝까지 마무리하는 일이다. '식물 국회'를 감수하고서라도 패스트트랙을 올린 이유는 문재인 정부의 핵심 공약인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공수처) 설치 법안을 통과시키기 위함이었다.  

선거제 개혁과 공수처 설치 법안 등을 본회의에서 최종적으로 처리를 위해서는 전체 의석의 과반이 필요하다. 현재 의석 수를 기준으로 보면, 여야 4당의 의석 수는 176석(민주당 128.바른미래당 28.민주평화당 14.정의당 6석)으로 과반이 훌쩍 넘지만, 바른미래당 의원 절반 가까이가 패스트트랙을 반대하고 있다. 또 민주당이나 평화당 내부에서도 선거제 개혁에 따른 지역구 축소 움직임에 내심 반발하고 있기 때문에 이 또한 변수가 될 수 있다.  

이 원내대표로서는 유동성이 큰 상황에서 선거제 개혁과 공수처 법안들이 본회의 문턱을 넘을 수 있도록 과반수의 표를 확보하는 게 필요하다. 이 원내대표는 패스트트랙 상황을 축구 경기에 비유하면서 "패널티 지역에서 프리킥을 얻어 놓은 것이어서 어떻게 작전을 잘 짜서 마지막 골로 연결시킬 것인가가 우리에게 남겨진 과제"라고 말했다.  

한 가지 원내대표의 딜레마는 내년 4월에 열리는 21대 국회의원 선거에 있다. 총선이 다가올수록 각 정당은 서로 대립각을 세우면서 지지층을 결집시키기 마련이다. 현재 패스트트랙을 중심으로 민주당과 한국당이 극한 대치를 이어가면서 양측의 지지율이 모두 상승하는 상황. 이런 가운데 자칫 한국당에 한 발 양보하는 듯한 움직임을 보일 경우, 민주당 지지층이 돌아서는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 이 때문에 한국당 없이 여야 4당이 공조를 유지하면서 국회을 끌고 갈 수도 있을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이 원내대표는 "민생보다 더 좋은 명분으로 국회를 정상화하고 정치를 복원할 방법은 없다고 생각한다"며 "다른 한편으로는 (대화의) 창구를 열어서 패스트트랙 과정에서 생긴 갈등을 어떻게 치유할 것인가 정성껏 해법을 찾는 노력을 하겠다"고 했다.  

이 원내대표가 풀어야 할 마지막 숙제는 역시 총선 승리다. 여기에 바로 그의 딜레마가 있다. 여야 모두 총선을 앞두고 있기 때문에 웬만해선 물러서지 않을 것이다. 이 원내대표가 '통합'을 취임 일성으로 내걸었지만 그것을 실현하기란 쉽지 않다. 파트너인 나경원 원대대표로서도 총선을 앞두고 지지층을 결집해내는 것이 급선무이기 때문이다. 그러기 위해선 원내보다 장외 투쟁이 더 효과적일 수 있다. 

이 원내대표로서도 총선 승리를 위해선 지지층의 결집이 필요하다. 앞서의 두 가지 숙제를 '민주당 식대로' 강경하게 원칙적으로 해결해야 표가 모인다. 바로 이런 점 때문에 이 원내대표가 '같이 살 길을 찾아보자'고 외치는 것도 어찌보면 수사에 불과할 수 있다. 통합과 상생을 외치기엔 총선이라는 너무도 거대한 걸림돌이 가로놓여 있다. 하지만 막힌 정국은 일단 뚫어내야 한다. 이 원내대표는 과연 어떤 묘수를 가지고 이 판을 뛰어넘을까.

 

윤정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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