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임 2주년 대담서 속도 조절론 견해 밝혀

문재인 대통령이 9일 최저임금위원회가 '최저임금을 2020년까지 1만원으로 올린다'는 정부 공약에 얽매일 필요가 없다고 밝힌 것은 사실상 최저임금 인상 속도 조절에 무게를 실어준 것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문 대통령은 취임 2주년을 맞아 이날 밤 청와대 상춘재에서 한 KBS 특집 대담 '대통령에게 묻는다'에서 내년도 최저임금 인상 폭에 관한 질문에 "최저임금위원회에서 결정하게 돼 있는 것이어서 대통령이 무슨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긴 어렵다고 생각한다"며 "그러나 분명한 것은 그때 공약이 2020년까지 1만원이었다고 해서 그 공약에 얽매여 무조건 그 속도대로 인상돼야 한다, 그런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최저임금위원회는 지난 8일 운영위원회를 열어 내년도 최저임금 심의 일정을 논의했다. 본격적인 심의 절차에 들어간 것이다. 문 대통령의 발언은 독립 기구인 최저임금위 심의에 영향을 미칠 수도 있는 수위의 발언은 자제하면서도 2020년까지 최저임금 1만원을 달성한다는 공약이 '가이드라인'으로 작용해서는 안 된다는 점을 강조한 것으로 풀이된다.

문 대통령은 "지난번 대선 과정에 저를 비롯한 여러 후보들의 '2020년까지 최저임금 1만원 인상' 공약이 최저임금 결정에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한다"며 "그래서 그 점에 대해선 대통령도 함께 책임을 져야 하는 것이라고 본다"고 말하기도 했다.

문 대통령은 최저임금위가 올해 적용할 최저임금을 시간당 8천350원으로 인상한 작년 7월 "2020년까지 최저임금 1만원 목표는 사실상 어려워졌다"며 공약을 못 지키게 된 것을 공식적으로 사과한 바 있다. 현재 8천350원인 최저임금을 공약대로 내년에 1만원으로 올린다면 인상률이 19.8%가 돼야 하는데 이는 사실상 불가능한 상황이다.

문 대통령이 2020년까지 최저임금 1만원을 달성한다는 공약에 얽매일 필요가 없다고 강조한 것은 최저임금위가 최저임금 인상 속도 조절을 할 여지를 넓혀준 것으로 볼 수 있다. 최저임금위가 내년도 최저임금도 큰 폭으로 올릴 것으로 보는 사람은 이미 많지 않은 상황이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두 자릿수 인상은 기대하기 어렵다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을 비롯한 정부 주요 인사들도 최저임금 인상 속도 조절 필요성을 여러 차례 제기했다.

문 대통령이 최저임금에 대한 사회·경제의 수용성을 강조한 것 또한 최저임금 인상 속도 조절과 관련이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문 대통령은 "2년에 걸쳐서 최저임금이 가파르게 인상됐고 그것이 또 긍정적인 작용이 많은 반면에 한편으로 부담을 주는 부분들도 적지 않다고 판단한다면 최저임금위원회가 그런 점을 감안해서 우리 사회, 우리 경제가 수용할 수 있는 적정선으로 판단하지 않을까 그렇게 기대한다"고 밝혔다.

이런 발언은 정부가 최저임금 심의에 경제 상황을 반영하는 것을 포함한 최저임금 결정체계 개편을 추진하는 것과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다. 최저임금 심의에 경제 상황을 반영하기로 한 데는 경제에 부담을 줄 정도로 최저임금을 인상해서는 안 된다는 판단이 깔려 있다. 최저임금 결정체계 개편 방안은 국회의 최저임금법 개정 지연으로 내년도 최저임금 심의에는 사실상 적용할 수 없게 된 상황이다.

문 대통령은 최저임금의 사회 수용성에 관한 질문에 "법 제도로서 최저임금 결정 제도의 이원화, 두 단계에 걸쳐 결정하도록 개정안을 낸 것인데 그것이 국회에서 처리가 되지 않아서 아쉽지만, 현행 제도로 가더라도 최저임금위원회가 그런 취지를 존중하지 않을까 기대한다"고 답했다.

한편 최저임금 인상 속도 조절을 위해 정부가 추진했던 임금결정체계 개편이 어려워지면서 결국 내년 최저임금 심의 과정에도 반영하지 못하게 됐다. 류장수 최저임금위원회 위원장을 비롯한 공익위원들도 기존에 밝힌 사퇴 의사를 번복하지 않아 사실상 최저임금에 대한 정부 정책도 실패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이런 상황에서 노동계는 최저임금을 올해보다도 19.8% 올린 1만원을 요구할 예정이라 최저임금 심의 과정에서 진통이 불가피해 보인다. 류 위원장은 9일 기자간담회를 통해 "최저임금 개편안을 내년 최저임금 결정 과정에 반영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며 "예전 방식으로 심의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문재인정부 출범 직후 결정된 2018년 최저임금은 7530원으로 전년 대비 16.4% 급등했다. 이어 2019년 최저임금도 10.9% 오른 8350원에 달해 사회·경제적으로 부작용이 심화되고 있다는 평가다. 특히 사상 최악의 고용 참사 상황을 더욱 악화시켰다는 분석도 이어지고 있다. 정부 역시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에 제동을 걸기 위해 지난해 말부터 최저임금 결정체계 개편에 나섰다.

고용노동부는 전문가 의견 수렴을 거쳐 올해 초 최저임금 결정체계를 구간설정위원회와 결정위원회로 이원화하는 방안을 내놓았다. 그러나 노동계 반발과 함께 국회 파행으로 국회 개정마저 이뤄지지 않자, 결국 내년 심의 과정에 정부안을 반영하기 어려워진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류 위원장을 비롯한 최저임금위 공익위원 8명은 정부의 최저임금 개정 의지가 확인되자 사퇴 의사를 굳혔고, 지난 3월 초 고용부에 뜻을 전달했다.

공익위원들의 집단 사의표명은 1988년 최저임금위 운영 이후 처음 있는 일이다. 공익위원들이 사퇴의사를 밝혔지만 최저임금위원은 새로 위촉될 때까지 그 직을 수행하게 돼 있다. 공익위원은 고용부 장관 제청으로 대통령이 임명한다. 고용부는 새로운 공익위원을 재선임하기까지 2~4주 걸릴 것으로 보고 있다.

류 위원장은 "지난해 말 당시 홍남기 경제부총리 후보자가 청문회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최저임금 결정체계 이원화를 추진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면서 "그런 방식에 동의하든 동의하지 않든 정부가 (기존 방식과는 다른 방식으로) 추진하면 그만두는 것이 맞다고 판단했다"고 전했다. 그는 이어 "법 개정이 된 상태가 아니긴 해도 올해 최저임금위는 위원장 등을 새롭게 구성하고 출발하는 것이 좋다고 본다"고 덧붙였다.

문제는 최저임금 개편안과 최저임금위가 표류하는 사이 심의할 수 있는 기간이 이제 두 달밖에 남지 않게 됐다는 점이다. 최저임금법에 따르면 고용부 장관은 매년 3월 31일까지 최저임금위에 심의를 요청해 8월 5일 전 내년도 최저임금을 결정해야 한다. 최저임금위는 고용부 장관에게 심의 요청을 받은 후 90일 이내에 최저임금을 정해야 한다. 즉 최저임금위가 6월 말 이전 아무리 늦어도 7월까지는 결정해야 하는 셈이다.

그러나 최저임금위가 첫 회의를 하긴 했지만, 공익위원들이 모두 사퇴하기로 했고 정부는 새로운 위원장을 포함한 위원들을 새로 꾸려야 한다. 정상적으로 새로운 위원들이 구성되더라도 사실상 첫 심의는 5월 말이 돼야 열릴 수 있는 것이다. 다만 류 위원장은 "지난해에도 5월 17일에 위촉돼 전원회의를 연 것은 7월 초였고, 2017년에도 6월 중순께 첫 회의를 했다"며 새로운 위원을 구성해도 큰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이런 상황에서 민주노총은 지난 3월 내년 최저임금을 1만원으로 요구하기로 했다. 올해보다도 무려 19.8%나 인상된 것이다. 민주노총 측은 "최저임금 수준이 1인 가구생계비의 70% 수준에 불과하며, 3인 가구생계비를 기준으로 하면 40%에도 미치지 못한다"고 주장했다. 반면 경영계는 동결을 요구할 전망이다. 정부는 최저임금 결정체계 개정 지연과 최저임금위 공익위원 구성 등에 대한 입장을 정해 이재갑 고용부 장관이 직접 다음주 초 발표할 예정이다. 

한편 전국경제인연합회 산하 한국경제연구원은 최저임금을 업종별로 차등 적용하면 4년간 일자리 46만 4천개를 보존할 수 있다고 밝혔다. 한경연은 '최저임금 차등화의 경제적 효과' 보고서에서 최저임금이 2021년까지 1만 원으로 인상되면 4년간 모두 62만 9천명의 고용감소가 나타날 것으로 분석했다. 

그러나 생산성이 낮고 최저임금 영향율이 높은 업종을 대상으로 최저임금을 차등 적용할 경우 고용감소는 4년간 16만 5000명에 그쳐 총 46만 4000개의 일자리를 보존할 수 있을 것으로 추정했다. 한경연은 또 주휴수당을 단계적으로 폐지하면 2021년까지 7만7천개의 일자리가 덜 감소할 수 있는 것으로 추정했다. 또 모든 업종에 동일하게 최저임금을 1만원까지 인상하면 소비자물가는 1.78% 인상되고 GDP는 1.08% 감소할 것으로 분석했다. 

 

최기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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