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버문학의 훈풍을 기대하며
실버문학의 훈풍을 기대하며
  • 김부조
  • 승인 2019.05.10 09:5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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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ㆍ칼럼니스트
시인ㆍ칼럼니스트

‘있잖아/ 불행하다고/ 한숨짓지 마// 햇살과 산들바람은/ 한쪽 편만 들지 않아// 꿈은/ 평등하게 꿀 수 있는 거야// 나도 괴로운 일/ 많았지만/ 살아 있어 좋았어// 너도 약해지지 마’(시바타 도요의 시 ‘약해지지 마’)

지난 2013년, 98세에 처녀시집『약해지지 마(くじけないで)』로 데뷔한 세계 최고령 시인 시바타 도요(柴田トヨ)가 타계했다. 일본 도치기현 우쓰노미야시의 한 양로원에서 숙환으로 숨진 그의 나이는 101세였다.

90세부터 시를 쓰기 시작한 그는, 산케이 신문 ‘아침의 시’ 코너에 우연히 자신의 시가 소개되면서 주목을 받게 됐다. 이 코너 담당자는 솔직하고 따스한 그의 시에 반해 출판을 적극 권했고, 이 시집은 무려 150만 부 이상 팔리는 베스트셀러가 됐다. 쉬운 말로 따뜻한 위로를 담아 낸 그의 시는 일본뿐 아니라 한국 독자들의 마음도 촉촉이 적셨다. 초등학교 졸업이 학력의 전부였지만 살아가며 깨달은 생의 이치를 진솔하게 표현해 독자들을 감동시켰다. 특히 동일본대지진으로 실의에 빠진 일본인들에게 치유와 긍정의 힘을 불어넣어 준 존재가 됐다는 높은 평가를 받기도 했다.

일본에서 자리 잡았던 이른바 ‘실버문학’의 바람은 한국 문단에서도 이미 일기 시작했다. 이 단어가 딱히 어디서 나왔는지는 모르겠지만, 고령 사회로 나아가며 실버산업이 각광받는 가운데 탄생한 단어로 보인다. 신춘문예 당선자들의 평균 연령이 갈수록 높아지며 40~50대는 물론 60대 당선자도 심심찮게 나타나는 것이 현실이다. 문학은 대표적인 ‘올드 장르’로서 나이 든 창작자에게도 접근 가능성이 비교적 높은 분야인 까닭에, 실버문학이라는 것이 단순히 생겨난 용어만은 아닐 수도 있다. 

한국 문단에서는 2008년, 소설가 박완서가『친절한 복희씨』로 실버문학의 새 지평을 열었다는 평을 내놓고 있다. 마흔 살에 문단에 데뷔한 그는 여든에 숨을 거두기까지 쉼 없이 글밭을 일궜다. 은퇴한 60~70대 노인들의 다양한 삶의 풍경을 담은 이 소설집은 출간 4개월 만에 20만부 이상 팔리는 폭발적 인기를 누렸다. 평론가 김병익이 ‘노인이기에 가능한 원숙한 세계 인식, 삶에 대한 중후한 감수성’이라 평한 실버문학이었지만, 30~40대를 중심으로 다양한 연령층에서 읽혔다. 

그는 노년의 글쓰기를 하산(下山)에 비유하면서 “내리막길을 품위 있게 내려오고 싶지만 그게 쉬운 일이 아니다”고 말했다. “신인 시절엔 쫓기는 심정으로 ‘허가받은 거짓말’을 지어냈었다”고 뒤돌아보기도 했다. 평소, “헤밍웨이의 소설『노인과 바다』는 노인들만 읽으라는 법이 있나요”라며 당당하게 노인들 이야기를 쓴 그가, 젊은 독자까지 사로잡았던 힘의 비결은 ‘언어의 동시대성’에 있었다. 

소설가 이문열은 “작가의 정년을 여든으로 봐야 한다”고 주장한 적이 있다. 소설가 박경리는『토지』를 완간한 뒤에도 일흔일곱 살까지 새 소설을 썼다. 그는 여든둘에 세상을 뜨기 두 달 전 시 세 편을 문예지에 발표하고 어느 일간신문과 마지막 인터뷰를 하며 “감각과 감수성은 젊은이들과 똑같다. 밤마다 너무 많은 생각이 떠오른다”고 했다. 빅토르 위고는 예순에 소설『레미제라블』을 펴내 인생 황혼기를 황금빛으로 물들였다. 톨스토이는 일흔이 넘어서야『부활』을 내놓았고 괴테는 여든둘에『파우스트』를 완성했다. 화창한 봄날의 화려함처럼 우리 실버문학도들의 눈부신 활약도 한껏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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