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
  • 유성문(먼빛)
  • 승인 2019.05.16 13:48
  • 댓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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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로와 마로니에공원

지금도 마로니에는 피고 있겠지
눈물 속에 봄비가 흘러내리듯
임자 잃은 술잔에 어리는 그 얼굴
아 청춘도 사랑도 다 마셔버렸네
그 길에 마로니에 잎이 지던 날
루루루루 루루루 루루루루 루루루 루루
지금도 마로니에는 피고 있겠지
-박건 노래 ‘그 사람 이름은 잊었지만’

마로니에 꽃이 피었다. 하지만 마음은 이미 콩밭에 가있는 청춘들은 그걸 모른다. 하긴 알 필요도 없으리라. 청춘은 벌써 꽃보다 더 활짝 피어있으니. 대학로를 상징하는 마로니에공원은 1975년 서울대학교 문리대와 법대가 관악캠퍼스로 이전하면서 그 부지에 조성되었다. 종로5가역에서 혜화동로터리까지의 구간이 ‘대학로’로 불린 것도 서울대 동숭동캠퍼스가 원래 이곳에 있었기 때문. 

왼쪽/과거 서울대 문리대 캠퍼스 안에 큰 나무가 서있었는데, 이 나무가 마로니에라고 알려져 지금의 ‘마로니에공원’이라는 이름까지 붙었지만 실제로는 경성제국대학 시절 일본인 교수가 심은 일본칠엽수라고 한다. 지금 공원에 있는 나무들도 대부분 일본칠엽수로, 진짜 마로니에는 3그루 정도뿐이라고. 오른쪽/서울대학교병원 안에 있는 옛 대한의원은 현재 병원 연구소와 의학박물관 기능을 겸하고 있다. 마로니에공원 맞은편에 위치한 서울대 연건캠퍼스에는 의과대학, 치과대학, 간호대학, 서울대학교병원 등이 남아 경성제대로부터 이어져온 학교의 역사를 지키고 있다.
왼쪽/과거 서울대 문리대 캠퍼스 안에 큰 나무가 서있었는데, 이 나무가 마로니에라고 알려져 지금의 ‘마로니에공원’이라는 이름까지 붙었지만 실제로는 경성제국대학 시절 일본인 교수가 심은 일본칠엽수라고 한다. 지금 공원에 있는 나무들도 대부분 일본칠엽수로, 진짜 마로니에는 3그루 정도뿐이라고. 오른쪽/서울대학교병원 안에 있는 옛 대한의원은 현재 병원 연구소와 의학박물관 기능을 겸하고 있다. 마로니에공원 맞은편에 위치한 서울대 연건캠퍼스에는 의과대학, 치과대학, 간호대학, 서울대학교병원 등이 남아 경성제대로부터 이어져온 학교의 역사를 지키고 있다.

당시 대학로는 왕복 4차로에 동숭동 쪽으로 개천이 있었다. 북악산의 남쪽 사면을 흘러내려와 청계천에 합류하는 흥덕동천. 서울대 문리대 학생들은 그 작은 하천을 ‘세느강’으로, 문리대 본관 쪽으로 연결된 다리를 ‘미라보다리’라 부르면서 ‘미라보다리로 세느강을 건넌다’고 운치 있게 이야기하곤 했다. 하지만 시절은 낭만보단 엄혹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청춘도 사랑도 다 마셔버려야 할 정도로.

‘대학로의 터줏대감’인 김철민-윤효상 콤비의 버스킹(2001년). 1989년부터 시작해서 30년째 계속되고 있는 거리공연이다. 그들은 ‘재야의 고수’ ‘대한민국 버스킹의 원조’로도 불린다. 1985년 문화거리로 지정된 대학로는 주말 차량통행을 금지시켜 차 없는 거리에서 갖가지 문화공연을 열어 ‘젊음과 낭만의 장소’로 만들고자 했으나, 지나친 음주행위와 각종 사고로 인해 1989년 차량통행 금지조치가 없어졌다. 하지만 이후로도 마로니에공원 등을 중심으로 거리공연과 무대리허설이 끊임없이 펼쳐지면서 대학로는 이내 ‘버스킹의 명소’로 자리 잡았다.
‘대학로의 터줏대감’인 김철민-윤효상 콤비의 버스킹(2001년). 1989년부터 시작해서 30년째 계속되고 있는 거리공연이다. 그들은 ‘재야의 고수’ ‘대한민국 버스킹의 원조’로도 불린다. 1985년 문화거리로 지정된 대학로는 주말 차량통행을 금지시켜 차 없는 거리에서 갖가지 문화공연을 열어 ‘젊음과 낭만의 장소’로 만들고자 했으나, 지나친 음주행위와 각종 사고로 인해 1989년 차량통행 금지조치가 없어졌다. 하지만 이후로도 마로니에공원 등을 중심으로 거리공연과 무대리허설이 끊임없이 펼쳐지면서 대학로는 이내 ‘버스킹의 명소’로 자리 잡았다.

마로니에공원 맞은편에 자리한 학림다방은 동숭동캠퍼스 시절 ‘문리대 제25강의실’이란 별명까지 얻을 정도로 인기가 있었지만, 이 다방은 또 다른 사연으로 인해 오래 기억되는 곳이기도 하다. 바로 1981년 군사쿠데타로 실권을 장악한 신군부세력이 민주화운동을 탄압하기 위해 학생운동조직 등을 반국가단체로 몰아 처벌한 이른바 ‘학림사건’-. 당시 ‘전민학련’이라는 대학생단체가 학림다방에서 첫 모임을 가진 데서 유래한 이름으로, 이태복 전 보건복지부장관 등 24명이 ‘전민학련’과 ‘전민노련’을 결성한 혐의로 강제 연행되고, 모진 고문 끝에 억지자백을 받아내는 등 불법행위가 자행된 그 시대 대표적인 공안사건이었다. 

학림다방은 1956년 문을 연 꽤 오래된 다방으로, 서울미래유산으로 지정되었다.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에서 도민준이 애용하던 다방으로 나와 더욱 유명해지면서 이 옛날식 다방은 평소 빈자리를 찾기 어려운 경우가 잦으며, 같은 대학로 내에 분점도 있다. “학림은 아직도 여전히 60년대 언저리의 남루한 모더니즘 혹은 위악적인 낭만주의와 지사적 저항의 70년대쯤 어디에선가 서성거리고 있다. …학림은 지금 매끄럽고 반들반들한 ‘현재’의 시간 위에 ‘과거’를 끊임없이 되살려 붙잡아 매두려는 위태로운 게임을 하고 있다.” -학림다방 서울미래유산 안내판에서
학림다방은 1956년 문을 연 꽤 오래된 다방으로, 서울미래유산으로 지정되었다.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에서 도민준이 애용하던 다방으로 나와 더욱 유명해지면서 이 옛날식 다방은 평소 빈자리를 찾기 어려운 경우가 잦으며, 같은 대학로 내에 분점도 있다. “학림은 아직도 여전히 60년대 언저리의 남루한 모더니즘 혹은 위악적인 낭만주의와 지사적 저항의 70년대쯤 어디에선가 서성거리고 있다. …학림은 지금 매끄럽고 반들반들한 ‘현재’의 시간 위에 ‘과거’를 끊임없이 되살려 붙잡아 매두려는 위태로운 게임을 하고 있다.” -학림다방 서울미래유산 안내판에서

‘학전’이라는 이름은 대학로의 또 다른 한 시절을 대변한다. 설립자 ‘김민기’라는 이름이 주는 내력과 무게는 차치하고라도, 1991년 처음 문을 연 이후 학전은 대학로를 대표하는 소극장이자 라이브공연의 산실이었다. 당시 학전은 ‘서태지와 아이들’로 상징되는 ‘새로운 세대’의 거센 열풍 속에 설자리를 잃어버린 포크와 록 가수들에게 무대를 제공했다. 고(故) 김광석을 비롯한 노찾사, 권진원, YB, 강산에, 노영심 등이 학전 무대에서 관객과 만날 수 있었다. 또 김민기가 연출한 록뮤지컬 ‘지하철 1호선’은 1994년부터 2008년까지 4000회 공연을 이어가며 국내 최장기 공연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학전’의 명맥을 잇고 있는 학전블루 소극장 앞에는 김광석의 ‘학전 소극장 1000회 공연(1995년 8월 11일)’을 기념하는 노래비가 세워져있다. “사람들이 너무 쉽게 포기하고 잘못된 사실에도 대충 익숙해져버리는 것 같아 안타까울 때가 많아요. 그런 사람들이 제 노래를 듣고 한번쯤 ‘아, 나도 저런 때가 있었지’ 하고 돌아보는 계기가 된다면 제 노래인생은 충분한 가치를 지닌다고 봅니다. 행복하세요.” -학전블루 김광석 노래비에서
‘학전’의 명맥을 잇고 있는 학전블루 소극장 앞에는 김광석의 ‘학전 소극장 1000회 공연(1995년 8월 11일)’을 기념하는 노래비가 세워져있다. “사람들이 너무 쉽게 포기하고 잘못된 사실에도 대충 익숙해져버리는 것 같아 안타까울 때가 많아요. 그런 사람들이 제 노래를 듣고 한번쯤 ‘아, 나도 저런 때가 있었지’ 하고 돌아보는 계기가 된다면 제 노래인생은 충분한 가치를 지닌다고 봅니다. 행복하세요.” -학전블루 김광석 노래비에서

아무래도 지금의 대학로를 대학로이게 하는 것은 ‘대한민국 연극의 메카’로서다. 1981년 마로니에공원 옆에 문예회관(현 아르코예술극장)이 들어선 이후 샘터파랑새극장(1984년), 동숭아트센터(1987) 등이 잇따라 문을 열고, 그때까지 공연의 본고장이었던 신촌 일대의 소극장과 극단들이 비싼 임대료를 피해 속속 이 일대로 이전해오면서 대학로는 명실 공히 한국 연극의 중심으로 떠올랐다. 현재 대학로 일대에 산재한 소극장만도 130여개. 하지만 2000년대 들어 기획사 중심의 오픈 런(기한을 정하지 않은) 공연이 성행하면서 연출가 중심의  순수 창작무대들이 다시 혜화동과 이화동 일대로 밀려나는 현상이 빚어지고 있기도 하다.  

대학로 한 극장 분장실에서(2007년). 당시 이 극장에서는 극단 고리의 연극 ‘상이(箱李)’가 공연되고 있었다. ‘박제가 되어버린 천재’ 이상(李箱)의 삶과 문학세계를 다룬 작품에 출연한 두 주연배우의 분장실 거울 속에 비친 모습은 그들이기도 하고, 그들이 아닌 듯도 했다. ‘거울때문에나는거울속의나를만져보지를못하는구료마는/ 거울이아니었던들내가어찌거울속의나를만나보기라도했겠소// 나는지금거울을안가졌소마는거울속에는늘거울속의내가있소’ -이상 ‘거울’ 중에서
대학로 한 극장 분장실에서(2007년). 당시 이 극장에서는 극단 고리의 연극 ‘상이(箱李)’가 공연되고 있었다. ‘박제가 되어버린 천재’ 이상(李箱)의 삶과 문학세계를 다룬 작품에 출연한 두 주연배우의 분장실 거울 속에 비친 모습은 그들이기도 하고, 그들이 아닌 듯도 했다. ‘거울때문에나는거울속의나를만져보지를못하는구료마는/ 거울이아니었던들내가어찌거울속의나를만나보기라도했겠소// 나는지금거울을안가졌소마는거울속에는늘거울속의내가있소’ -이상 ‘거울’ 중에서

대학로의 종점, 혜화동로터리에 접어들 때쯤 동성고등학교를 만난다. 112년의 역사를 지닌 이 학교 교문 옆에는 100주년기념관과 함께 ‘4·19의 횃불 바로 여기에서’라는 기념비가 서있다. 4·19혁명 당시 동성고등학교 학생들은 서울대 문리대생들과 함께 시위대의 맨 앞장에 섰다. 그리고 그 무렵 동숭동캠퍼스에서 대학 학창시절을 보낸 시인 김광규는 후에 ‘4·19가 나던 해 세밑/ 우리는 오후 다섯 시에 만나/ 반갑게 악수를 나누고/ 불도 없는 차가운 방에 앉아/ 열띤 토론을 벌였다’로 시작되는 시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를 남겼다. 

천주교 서울대교구에서 운영하는 동성고등학교는 ‘진리와 사랑’을 교육이념으로 내세우고 있다. 대학로를 찾던 날, 마침 동성고등학교 교정에서는 ‘동성인의 화합축제’가 열리고 있었다. 수십년 만에 반백이 되어 다시 만난 동창들은 반갑게 서로 인사를 나누고, 일정을 모두 마친 뒤 각자 기념품을 손에 들고 헤어졌다. 그리고 그들이 떠나간 대학로에서는 ‘비정규직 철폐를 위한 민주노총 결의대회’의 함성소리가 울려 퍼지고 있었다. 이제 진리는 가뭇없고 사랑은 희미해졌는가.
천주교 서울대교구에서 운영하는 동성고등학교는 ‘진리와 사랑’을 교육이념으로 내세우고 있다. 대학로를 찾던 날, 마침 동성고등학교 교정에서는 ‘동성인의 화합축제’가 열리고 있었다. 수십년 만에 반백이 되어 다시 만난 동창들은 반갑게 서로 인사를 나누고, 일정을 모두 마친 뒤 각자 기념품을 손에 들고 헤어졌다. 그리고 그들이 떠나간 대학로에서는 ‘비정규직 철폐를 위한 민주노총 결의대회’의 함성소리가 울려 퍼지고 있었다. 이제 진리는 가뭇없고 사랑은 희미해졌는가.

돌돌 말은 달력을 신중하게 옆에 끼고
오랜 방황 끝에 되돌아 온 곳
우리의 옛사랑이 피 흘린 곳에
낯선 건물들 수상하게 들어섰고
플라타너스 가로수들은 여전히 제 자리에 서서
아직도 남아있는 몇 개의 마른 잎 흔들며
우리의 고개를 떨구게 했다
부끄럽지 않은가
부끄럽지 않은가
바람의 속삭임 귓전으로 흘리며
우리는 짐짓 중년기의 건강을 이야기했고
또 한 발짝 깊숙이 늪으로 발을 옮겼다
-김광규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 말미

√ 학전블루 소극장에서는 현재 ‘Again, 학전 콘서트’가 열리고 있다. 지난 3월 29일 전인권밴드의 공연으로 시작된 콘서트는 5월 17~19일 ‘김광석 다시 부르기’ 공연을 끝으로 막을 내린다. 

√ 또 대학로 일원에서는 ‘제40회 서울연극제’가 열리고 있기도 하다. 서울연극협회가 주최하는 이번 연극제에는 소속 극단이 참가하는 연극공연과, ‘시민과 배우가 함께하는 희곡읽기’ ‘학술제&토크콘서트’ 등이 펼쳐진다. 오는 6월 2일까지. 6월 1~25일에는 한국연극협회가 주관하는 ‘대한민국연극제 in 서울’이 연이어 열린다. ‘대한민국연극제’는 올해로 37회째.  

-샛길로 : 짚풀생활사박물관과 필리핀마켓

혜화동로터리 부근에 있는 짚풀생활사박물관은 짚과 풀로 짜고 엮은 다양한 생활용구들을 모아 전시하는 박물관이다. 신동엽 시인의 부인인 인병선이 1993년 설립하여 관장을 맡아왔으나, 현재는 건강이 좋지 않아 아들인 신좌섭이 관장으로 있다. 짚풀 관련서적 발간, 짚신 등을 비롯한 짚과 풀로 만드는 체험학습 등도 운영하고 있다. ‘금강’ ‘껍데기는 가라’ 등 동학농민혁명과 4·19혁명 등을 노래한 시인과의 인연이 닿아있는 공간이 혜화동로터리에 자리한 것은 나름 의미가 깊다.  

매주 일요일마다 혜화동로터리 주변에서는 이색시장이 열린다. 한국에 사는 필리핀인들이 모여 여는 길거리장터, 이른바 ‘필리핀마켓’이다. 천주교 신자가 대부분인 필리핀인들은 매주 일요일 따갈로그어 미사를 따로 갖는 혜화동성당을 찾아 미사를 드리는 경우가 많았는데, 그 과정에서 자연스레 필리핀인들을 위한 길거리장터가 생겨난 것. 주로 필리핀에서 가져온 식료품이나 통조림 등을 판매하는데, 필리핀 사람들은 고향의 음식을 맛보고 사람들을 만나 얘기를 나누기 위해서라도 이곳을 많이 찾는다.

여행작가 유성문은 길에서 길의 내력을 들춰왔다. 그 길에서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를 새겨왔다. 그 내력과 사연은 먼빛이 되어 다시 그를 길로 내세운다. ‘길에서 길을 묻다’(경향신문), ‘사람의 길’(주간경향) 등 오랫동안 길과 사람 이야기를 써왔다. 문학관기행 <문향을 따라가다>(어문각)를 펴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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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강지서(위영) 2019-05-27 09:48:06
솔직히 미안하지만 대학로에 대한 기억이 별로 없다. 80년대 윤석화의 신의 아그네스를 본 기억 이외는..
그 대신 광화문 당주동 추억은 많다. 얼마 전 신문을 보니 서울대 병원 일대를 창동으로 옮기고 다시 개발한다고 한다. 우리도 유럽처럼 몇 백년된 건물이나 거리를 보존해야지 항상 개발논리에 따라 자꾸만 옛것을 부셔 버리고 새로 만드는 것은 지향해야 할 때이다. 어느 정도 사회발전이 된 상태에서 옛 것을 보존하는 지혜도 필요하다. 옛 것의 문화적 가치는 금전으로 평가만 할 수 없는 소중한 문화와 역사와 전통이 살아 숨쉬기 때문이다.
유성문 작가가 옛 시절의 혜화동 학민 다방, 학전등 문화를 소개해 주어 감사하다.

이혜숙 2019-05-18 11:40:58
세월이 흐르면서 덧입혀진 거리의 모습만을 보는 이들에게 그 거리에 담겨진 옛 모습을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기대됩니다

아로미 2019-05-18 11:34:5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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