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ㆍ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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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쁜 사람들도/ 굳센 사람들도/ 바람과 같던 사람들도/ 집에 돌아오면 아버지가 된다// 어린 것들을 위하여/ 난로에 불을 피우고/ 그네에 작은 못을 박는 아버지가 된다// 저녁 바람에 문을 닫고/ 낙엽을 줍는 아버지가 된다// 세상이 시끄러우면/ 줄에 앉은 참새의 마음으로/ 아버지는 어린 것들의 앞날을 생각한다/ 어린 것들은 아버지의 나라다 - 아버지의 동포(同胞)다// 아버지의 눈에는 눈물이 보이지 않으나/ 아버지가 마시는 술에는 항상/ 보이지 않는 눈물이 절반이다/ 아버지는 가장 외로운 사람이다/ 아버지는 비록 영웅이 될 수도 있지만// 폭탄을 만드는 사람도/ 감옥을 지키던 사람도/ 술가게의 문을 닫는 사람도/ 집에 돌아오면 아버지가 된다/ 아버지의 때는 항상 씻김을 받는다/ 어린 것들이 간직한 그 깨끗한 피로…’(김현승 ‘아버지의 마음’)

우리들의 아버지는 항상 바쁘고, 굳세고, 바람 같고, 눈물을 감추어야 하는 존재였다. 아버지의 존재 이유는 그저 아버지란 사실 하나로 족했다. 그래서 이 세상에서 가장 외로운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면서 언제부터인지 아버지가 작아지기 시작했다.

어깨 위를 짓누르는 삶의 무게는 갈수록 버거워졌고, 가족들과의 대화 결핍으로 소외감을 호소하는 아버지가 차츰 늘어나고 있다. 더군다나 불청객으로 다가온 경기 불황은 우리 아버지들의 일자리마저 서둘러 앗아가고 있어 그 위상은 더욱 추락할 수밖에 없는 것이 오늘의 현실이다.

여성가족부에서 실시한 가족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청소년 자녀와의 의사소통이 아버지보다 어머니가 더 긴밀하며, 가족 관계가 어머니와 자녀 중심으로 이루어지므로 퇴직 이후 아버지의 가정 내 소외현상이 매우 우려된다고 나타났다. 아버지의 자리가 점점 좁아지고 있다는 얘기다.

과거 우리의 아버지들은 그저 늘 근엄하고, 자식들 뒤를 지켜준 든든한 병풍 같은 분이었다. 이른바 ‘아버지의 자리’라는 게 있었다. 온돌문화로 말하자면 아랫목은 아버지만의 공간이었다. 그런데 요즘 우리 아버지들의 자리가 서서히 사라지고 있는 것이다.

김정현은 소설 ‘아버지의 편지’에서 아버지의 마음을 이렇게 읊었다. “세상 아비들의 마음은 다르지 않은 듯싶다. 아비가 되는 그 순간부터 자신의 삶을 반추하며 자식에게만은 한(恨)을 대물림하지 말아야지, 스스로 꿈을 접는 설움도 겪게 하지 말아야지, 남들에게 손가락질 받게 될 일은 목숨을 걸고라도 막아야지. 아비들은 어쩔 수 없는 죄인이다.”  

아버지는 타고난 숙명이 있었다. 삶의 무게와 외로움을 인내와 침묵 속에 가두면서도 때가 되면 제 살을 뜯어내 새끼에게 주는 가시고기의 부성애를 발현해야만 했다. 누가 뭐래도 아버지야말로 가정의 중요한 버팀목이요, 뒷동산의 바위 같은 존재였다. 한집안의 울타리를 굳건히 지켜내야 했다. 그러기에 작가는, 완벽한 아버지의 길보다는 ‘죄인의 길’을 갈 수밖에 없다는 표현을 한 것일까. 

예나 지금이나, 부자나 가난한 사람이나 자식을 끔찍이 사랑한다는 점에서 아버지의 마음은 한결같다. 아버지의 사랑은 그림자처럼 보이지 않을 때가 많기에 대부분의 아버지는 숙명적으로 ‘가족의 그림자’ 같은 책임을 짊어지고 살아왔다. 그래서 아버지의 역할은 매우 중요했다. 가족을 먹여 살리고, 안전을 책임지는 보호자로서의 역할 뿐만 아니라 ‘부부간의 사랑’을 통해 화목한 가정도 만들어야 했던 것이다. 

그러나 사회의 큰 문제로 등장한 학교폭력의 근본 원인이 아버지의 권위 상실과 아버지의 부재(不在)가 빚은 결과라는 분석이 매스컴을 통해 종종 흘러나오고 있다. 또한 가정 내에서 아버지의 소외현상도 심각한 수준이라고 한다. 가정의 중요성을 감안할 때 아버지의 부재현상이 확산되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을 것이다. 가정의 균열은 곧 사회 붕괴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의 미래를 짊어지고 나갈 아이들을 책임질 가장은 아버지들이다. 아이들에게 아버지는 세상을 향한 푸른 신호등이 되어 주어야 한다. 우리 아버지들이 세월이 흘러도 변함없는 ‘아버지의 자리’를 지킬 수 있도록 우리 모두 깊은 관심을 기울여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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