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성곤 현 KBS아나운서실 방송위원 겸 방송통신심의원회 방송언어특별위원회 위원.
강성곤 현 KBS아나운서실 방송위원 겸 방송통신심의원회 방송언어특별위원회 위원.

①되게
영어‘very’에 해당하는 우리 부사는 매우 다양하다. ‘매우, 무척, 퍽, 사뭇, 썩, 꽤, 제법, 대단히, 정말, 참, 상당히’ 등등. 이것을 맥락과 상황에 맞게 잘 가려 쓰면 그것만으로도 세련된 우리말 화자로 인정받을 만하다. 그런데 유독 ‘되게’가 특히 젊은 층을 중심으로 지배적으로 쓰인다. 언중의 자연스러운 선택 차원에서는 인정해야 하는 것이겠지만 그것이 그저 대충 편한 것만을 좇는 세태를 따른 것이라면 방송진행자는 솔선수범해 가려 써야 옳다. ‘되게’의 범람은 단연코 우리의 거친 말글살이의 반영이다. 가장 조악하고 비루한 ‘very'가 바로 ’되게‘다.

“거기 실제로 가보니 분위기가 사뭇 달랐습니다.”
“연습을 많이 하더니 이제는 제법 잘 하는 구나”
“친구 어머니 영정을 보고 나니 무척 슬펐습니다.”
“우리 사회에는 매우 다양한 계층이 있습니다.”
“예기치 못한 상황에 맞닥뜨려 퍽 당황 했을거야.”
“그렇게 입으니 썩 잘 어울리는구나.”

위의 예문에 ‘되게’를 무턱대고 넣을 것인가? 말맛이 전혀 다르며 큰 틀에서 서툰 화법이다. 같은 맥락에서 ‘많이’도 문제다. 아무 때나 그저 쉽게 ‘많이’를 쓴다. “내일은 많이 덥지 않겠습니다.”는 도대체 어느 정도 덥단 말인가? ‘too'를 무턱대고 ’많이‘로 옮기니 벌어지는 결과다. “내일은 그다지 덥지 않겠습니다.”가 세련된 표현이다. 이제부터라도 고칠 일이다. 

②굉장히
‘굉장하다’의 ‘굉장’은 한자로 ‘宏壯’이다. ‘넓고 크고 굳세고 웅장하다’라는 의미로 쓰임이 제한적이다. 그러니까 규모나 성질 면에서 크고 많고 높고 무겁고 엄청날 때만‘굉장하다’를 쓰는 것이 옳다. 부사 ‘굉장히’를 쓸 때도 같은 맥락이다. 그런데 습관적으로 ‘very’대용으로 너무 많이 오용되고 있다.
“굉장히 예쁘다” “굉장히 귀엽다” “굉장히 조그맣다” “굉장히 짜증난다” “굉장히 기쁘다” “굉장히 슬프다” “굉장히 미묘하다” “굉장히 감격스럽다” 등은 어색하고 이상하다.

③직접
이것은 남용(濫用)이 문제다. “제가 여기 직접 나왔는데요.” 안 그러면 누굴 대신 보낼 요량이었나? 그저 습관이라면 자기 과시다. 방송 멘트에도 쓸데없이 많이 들어간다. “지금부터 LG와 두산, 두산 대 LG의 경기를 직접 중계방송 해드리겠습니다.” 간접 중계방송은 기억에 없다. ‘직접’의 폐해는 발음에도 영향을 준다. 이른바 ‘도치 현상’이라는 것으로 ‘집적[집쩍]’으로 오발음(誤發音)하는 경우가 의외로 많다. 안 쓰면 더 좋을 일을 오발음의 위험을 안으면서까지 굳이 쓸 것인가? 

강성곤 KBS 아나운서는 1985년 KBS입사, 정부언론외래어공동심의위위원, 미디어언어연구소 전문위원, 국립국어원 국어문화학교 강사를 역임했으며 건국대, 숙명여대, 중앙대, 한양대 겸임교수로 출강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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