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일, 전국 7개 실버극장 동시에 문 닫고 제안

가정의 달 마지막 날인 5월 31일, 서울 종로 낙원상가 4층 실버영화관에서 ‘어르신에게도 평등한 문화향유권 보장’을 위한 ‘대한민국에 노인을 위한 문화는 없다’에 전국 실버극장, 정부, 그리고 어르신과 소통의 시간을 제안한다.

이번 행사에 참여하는 전국 7개 실버영화관(서울 추억을파는극장, 서울 낭만극장, 경기 안산명화극장, 인천 추억극장미림, 충청 천안낭만극장, 대구 그레이스실버영화관, 부산 인생극장)은 지속 가능한 어르신문화 생태계를 위해 지난 10일 문화체육관광부로부터 설립인가를 받아 ‘시니어벤져스사회적협동조합’으로 정식 출범했다.

시니어벤져스사회적협동조합 첫 행보로 이루어지는 ‘대한민국에 노인을 위한 문화는 없다’ 소통의 시간은 2009년 1월 개관(서울 추억을파는극장) 이래 연중무휴 어르신문화를 선도한 전국 7개 실버영화관이 하루 동안 극장 문을 동시 닫고 한자리에 모여 진행된다는 점에서 의미 있지만, 그 내막에는 존폐 위기의 처절함이 있다.

개관 이래 10년 동안 전국 누적 관객 수 350만 명을 돌파한 시니어벤져스사회적협동조합이 어르신 관객에 대한 죄송함과 부끄러움으로 이번 행사를 진행하게 된 중심에는 다름 아닌 영화진흥위원회의 어르신문화 배제와 차별의 논리가 있다. 

2009년 1월 개관한 추억을파는극장은 영화계 최초 사회적기업으로서 55세 이상 어르신 관객의 영화관람료 2천원을 지난 10년 동안 고집스럽게 이어 오며 고령사회를 맞은 대한민국에서 어르신 문화향유권 보장을 위한 사회적가치를 실현하고 있다. 시니어벤져스사회적협동조합의 다른 실버영화관도 착한 동행을 하였으며, 7개 중 6개 실버영화관이 사회적기업으로 인증받았다. 

전국 7개 영화관 모두 문체부의 등록기관이지만, 영진위와 영진위가 기준 삼은 영비법에 따르면 그렇지도 않은 모양이다. 모든 실버영화관이 영진위에서 예술영화로 인정받은 고전영화를 상영하고 있지만, 영진위는 ‘예술영화관지원사업’에서 벌써 네 차례 실버영화관 전부를 탈락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정부가 사회적가치를 위해 민관의 협력이 중요하고 활성화를 위해 부처 간 협력이 필요하다는 현 정부의 강력한 의지에 반하는 행보이기도 하다. 

탈락 사유는 각양각색이다. 고전영화관에서 독립영화를 상영하지 않아서, 예술영화전용관 운영의 분명한 의지가 보이지 않아서, 다양한 연령대의 관객 확보 노력이 보이지 않아서, 영진위가 인정하는 프로그래머가 없어서 등이다. 이 정도면 실버영화관 지원에 대한 의지 없음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는 대목이며, 불과 6개월 전인 2018년 12월, 전 정권에서 자행된 영화계 블랙리스트 관련자를 징계하며 혁신과 쇄신으로 신뢰를 회복하겠다 포부를 밝힌 영진위의 다른 행보에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

한편 영화계의 철저한 어르신문화 배제와 차별의 논리에도 불구하고, 실버영화관을 찾는 관객들의 온도는 크게 다르다. 2017년 현 정권 초기 진행된 <광화문1번가>에 많은 어르신이 전국 실버영화관의 운영과 존폐를 염려하는 글을 올렸다. 전국 7개 실버영화관 모두 정부 지원 없이 운영되는 민간기업이라는 사실을 10년 단골들은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서울에 위치한 추억을파는극장과 낭만극장의 경우, 서울시의 ‘실버영화관 지원사업’으로 필름비를 지원받고 있지만 그 외 지자체는 해당 사업이 없어 지방에 위치한 실버영화관은 매해마다 생존을 목표로 극장을 운영하고 있다.

“아무리 우리가 근로활동을 하지 않는 뒷방 늙은이 신세라지만 문화생활까지 멈춰서야 되겠나?”(이정섭, 78세) “이렇게 나와서 영화도 보고 사람도 만나고 해야 치매 안 걸려요. 나라에서 책임지겠다고는 하지만 치매 안 걸리고 건강하게 사는 게 백번 낫지! 안 그래요?”(최영란 80세) “나는 이 실버영화관들 정부 지원금 한 푼 없이 운영하는 거 알고 깜짝 놀랐어요. 10년 동안 영화표 단돈 2천 원 받고 어떻게 버텼대? 그때부터 내 출연료 자진 삭감했잖아. 송해 선생님은 재능기부 하고 계신대요.”(전원주, 81세)

‘어르신에게도 평등한 문화향유권 보장’을 위한 ‘대한민국에 노인을 위한 문화는 없다’로 소통의 시간을 갖는 시니어벤져스사회적협동조합 김종준 이사장은 “제 나이가 올해 76세입니다. 무슨 사리사욕을 채우려고 이 실버영화관을 운영하는 게 아닙니다. 다만, 대한민국 15년 후면 4명 중 1명이 노인인 초고령사회가 온다는데 누군가는 꼭 해야 할 일 아닙니까? 그저 소명으로 현장에서 일하는 사람들, 젊은 시절 좋아했던 영화 다시 보는 낙으로 사는 어른들 더는 좌절하지 않도록 도와주십시오.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사회적기업가들의 자긍심이 자괴감이 되지 않도록 공감의 시간이 필요합니다.”며 입장을 밝혔다. 

민간 차원에서 먼저 ‘어르신의 문화향유권 보장’에 대한 논제를 던졌다. 더는 그들을 방치해 존폐의 기로로 몰지 말고, 이제는 정부와 문체부가 나서서 해답을 제시할 때이다. ‘사람이 있는 문화’에 어르신만 제외될 수는 없다.
 

류정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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